"꽃은 다시 피었는데 아이들은 돌아오질 않네요"

머니투데이 안산(경기)=박소연 기자 | 2015.04.16 05:17

[세월호 1주기]아들 떠나 보낸 뒤의 일상…故이다운군 아버지

고(故) 이다운군이 지난해 4월10일 찍은 벚꽃사진(왼)과 올해 4월 초 다운군 아버지가 찍은 벚꽃사진(오). 아버지는 이 사진을 찍고 "꽃은 다시 피었는데 아이들은 안 돌아오네요"라고 말했다. /사진=이다운군 아버지 제공

"꽃은 다시 피었는데 아이들은 안 돌아오네요."

봄이 오니 가슴을 더 후벼판다.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다. 고(故) 이다운군 아버지는 요즘따라 아들이 수학여행 떠나기 닷새 전, 그러니까 지난해 4월10일 핸드폰에 찍어놓고 간 벚꽃사진을 더 자주 들여다본다. 한동안 마음을 추슬렀는데 4월이 되니 거짓말처럼 다시 살이 빠진다.

"한 7개월 동안 뭘 못 먹었지. 물 먹어도 토하고 밥 먹어도 토하고. 지금 많이 나아진 거야. 새해 들어서 정신차리고 앞으로 잘살자 그랬는데… 어느 정도 살이 붙었다가 봄 되니까 4월에 또 빠지더라고. 내 몸이 기억하는 거야."

1년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살은 10kg 넘게 빠지고 허리는 27인치가 됐다. 그리움 때문이다. 그러던 올해 초 어느 날, 갑자기 양치질을 하던 중 칫솔모가 뒤로 빠지는 걸 느꼈다. 7개월 동안 잇몸이 내려앉는 줄도 몰랐다. 치과에 가보니 너무 안 먹어 잇몸이 벌어졌다고 했다. 앞니 4개를 빼고 임플란트를 했다.

"씹어도 마음으로 씹는 게 아니라 거죽으로 씹는 거야. 음식을 맛으로 먹는 그런 게 없으니까. 뭐만 먹으면 생각나고…"

다운이가 떠난 집은 1년째 시간이 멈췄다. 다운이가 있을 땐 쌀 20kg이 한 달이면 사라졌는데, 지난해 7월에 뜯은 쌀은 11월까지 갔다. 이사온 지 15일 만에 돌아오지 못할 여행을 떠난 아들. 다운이와 함께 쌓아둔 이삿짐은 아직 풀지 못했다.

아버지의 일상은 변했다. 오전 5~6시면 일어나던 아버지는 요즘 7시에야 겨우 일어난다. 하던 일은 잠시 접었다. 다슬이(다운군 여동생·18)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오면 장을 보거나 동사무소 가서 볼일을 본다. 다운이가 보고 싶으면 평택에 있는 서호추모공원에 간다. 특별한 용건 없이 다운이 사진을 보며 눈빛으로 얘기하다가 온다. 아버지는 그게 "부자간의 무언(無言)의 대화"라고 했다.

아버지는 새해부터 밥도 먹고 술도 줄이고 치과도 다니며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한 재활의 노력을 했다. 하지만 습관처럼 찾아오는 그리움은 어쩔 수가 없다. 아직도 저녁 7시가 되면 다운이가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똑똑." "누구?" "이다운." "잘 모르겠는데?" "아들." 그렇게 현관문을 열어주면 다운이는 요리하고 있는 아버지에게 달려와 부둥켜안고 아버지 등을 두드리고 장난치며 뽀뽀를 했었다. 아직도 뒤에서 허리를 감는 촉감이 느껴져 놀라곤 한다.

"유달리 애교가 많았어. 자기 엄마 집나가고 나서 어느 날 내 옆에 오더니 하는 소리가, '애인 겸 아들 겸 친구 겸 해주겠다' 하더라고. 그다음부터 내 옆에서 같이 자는 거야. 한 8~9개월을 그랬지."


부자는 둘도 없는 단짝이었다. 금요일이면 할머니 몰래 집을 빠져나와 곱창을 먹고 평일 학교 끝나면 다슬이를 데리고 세 식구가 편의점에 가 삼각김밥이랑 콜라를 사먹던 게 삶의 낙이었다. 부자는 한때 머리도 똑같이 염색하고 다녀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다 동네 어르신에게 뒤통수를 맞은 일도 있다.

가수가 꿈이었던 고(故) 이다운군이 생전 아버지와 즐겨찾던 곱창집에서 기타를 치며 '벚꽃엔딩'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이다운군 아버지 제공

지난달 다운이 생일을 앞두고는 웃지 못 할 일이 있었다. "어머니가 동태찌개 끓여줄 테니 무를 사오라고 하시더라고. 근데 사오라는 무는 안 사고 '뿌셔 뿌셔'(부셔먹는 라면) 한 박스를 사서 지나가는 애들한테 나눠준 거야. 비 쫄딱 맞으면서. 왜 주냐고 하면 '다운이 생일이다. 축하해주면 고맙겠다…' 집에 왔더니 어머니가 무는 왜 안 사왔냐셔. 완전 잊어버린 거지."

다운이가 떠나고 1년. 아버지에겐 많은 새로운 인연이 생겼다. 가수 신용재씨의 도움으로 다운이의 생전 노래가 발매돼 많은 이들의 추모를 받았다. 다운이 노래를 듣고 추모공원을 찾아오고 지금도 매일 사이버추모관에 애도의 글을 올리는 친구 한 명은 '의붓딸'을 삼기도 했다.

반면 다운이의 유튜브 영상에 이유 없이 욕을 써놓는 사람들도 생겼다. "지나가는 개가 죽어도 슬퍼할 텐데 잘 죽었네 하는 애들이 많다니까. 대체 어떤 마음으로 사는지 걔들 잡아다가 심리를 물어보고 싶어."

오로지 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1년을 하얗게 태우는 동안 세상엔 많은 일이 일어났다. 아직도 실종자 9명을 찾지 못했으며 인양 문제로, 배보상 문제로 연일 시끄럽다. 아버지는 광화문 집회나 유가족 모임에 나가지 않는다. 뉴스도 꺼버린 지 오래다. 하지만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혼자 놀러가다 죽었으면 좀 힘들다가 지금쯤 잊었을지도 몰라. 근데 지금 그런 상황이 아니잖아. 분향소도 있고 똑같은 부모들이 300명 넘게 있고. 아직 해결 안된 것들이 있으니 자꾸 엮이고. 동네 나가면 다운아빠인지 다 알고."

아버지의 꿈은 소박하다. 아무도 '세월호'를 모르는 곳에 가서 다슬이랑 어머니랑 텃밭에 고추랑 상추를 심고 마음 편히 사는 것이다. 하지만 정든 동네를 떠나는 것도 쉽지는 않다.

"엊그제 꿈에서도 다운이가 문 열고 안방에 들어와 부둥켜안더라고. 얼마나 놀랐는지. 요 근래 다시 혼란스러워 진짜. 봄이 지나면 좀 나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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