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에 푹 빠진 여고생들, "필기 가리던 애들이…"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 2015.01.27 05:29

[We-conomics Korea]④ 동덕여고 공유경제단 "참고서·우산도 공유, 용돈 아껴요"

편집자주 | 제러미 리프킨의 주장처럼 '소유'의 시대는 끝난 걸까. 소유보다 공유가 익숙한 '위제너레이션(We Generation)'이 등장했다. 우버의 불법 서비스 논란을 지켜보며 공유경제가 기존 시장경제를 잠식한다는 우려와 함께 시장 초기의 통과의례라는 시각도 공존한다. 어느 쪽이든 법과 제도를 논하기 전 이미 젊은이들에게 공유는 라이프 스타일 혹은 창업 기회로 자리잡았다. 아직 걸음마 단계인 국내에서 공유경제가 '빛'으로 자리잡기 위한 대안을 모색해본다.

동덕여고의 공유경제단의 정혜정 선생님(하단 왼쪽)과 학생들. 모바일앱에 공유커뮤니티를 만들어 안 쓰는 참고서 등 다양한 물품을 공유하고 있다.
"선생님, 공유경제 하러 왔어요."

얼핏 듣기엔 알쏭달쏭한 이 말은 동덕여고 공유경제단끼리 하는 '인사'다. 처음엔 경제·경영 동아리로 시작했다 기왕이면 함께 쓰는 가치를 배워보자며 시작한지 만 2년째. 초창기만 해도 공유경제가 뭐냐며 갸우뚱하던 아이들은 그새 많이 변했다.

"급식 남는게 많은데 같이 먹을 수 없을까요?" "선생님이 반마다 알려주시는게 조금씩 다른데 필기도 공유하고 싶어요." 틈만 나면 '공유'할 것이 없을지 찾는 아이들의 말이다. 몇 장 풀고 말던 참고서, 비올 때마다 샀던 우산, 매번 잃어버렸던 슬리퍼 등은 이미 공유하는 게 생활화 된지 오래다.

'내 것'이란 소유 개념만 있던 동덕여고 학생들에게 처음 '공유'의 재미를 알려준 이가 경제와 사회문화를 가르치는 정혜정(여·35) 선생님이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서울시의 '공유경제' 광고를 본 정 씨는 아이들에게도 가르쳐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 씨는 "책상에서 공부만 할 게 아니라 공유경제를 배우며 사회 문제를 인식하고 스스로 해결하게 해보자는 취지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공유경제단'이란 이름으로 시작해 모인 학생들이 총 24명. 공유경제의 정의부터 시도하는 사례 하나하나 모두 정 씨와 학생들이 스스로 정해나가기로 했다. 부족한 게 있을 때마다 정 씨는 서울시와 공유기업 등에 무작정 연락해 지원해 달라 요청했다. 학생들의 열정이 부족하다며 꾸지람을 하기도 했다.

동덕여고 공유경제단이 마련한 '포인트 마켓'. 필요 없는 물품을 공유하면 포인트를 받고, 이 포인트로 누군가 공유한 다른 물품을 얻을 수 있다.
평상시 문제로 여겼던 작은 것들부터 '공유'를 통해 해결키로 했다. 첫 공유 대상은 우산·슬리퍼·교복리본 3가지였다. 정 씨는 "슬리퍼를 안 가져올 때마다 3000원씩, 비올 때 우산은 편의점에서 5000원씩 학생들이 사곤 했다"며 "매번 사는 것이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 공유하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초기 비용을 모아 우산과 슬리퍼, 교복리본을 산 공유경제단은 이를 학생들과 함께 쓰기로 했다. 상징적인 의미로 대여료와 연체료 300원만 받았다. 학생들은 큰 호응을 보이며 공유에 기꺼이 참여했다. 일상용품의 부재를 해결하며 용돈도 아낄 수 있게 됐다. 빌린 후 다시 반납할 때는 자신의 물품도 기부해 물량이 5배 이상 늘었다.


좀 더 다양한 물품을 공유하고자 했던 학생들은 공유기업 '프리윌'과 협력해 공유커뮤니티를 만들었다. 가장 많이 내놓는 물품이 '참고서'다. 기존에는 대다수 학생들이 학기 또는 학년이 지날 때마다 많이 안 쓴 참고서라도 그냥 버리는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공유커뮤니티가 생기며 버려져왔던 참고서들이 필요한 학생에게 쓰이는 선순환이 시작됐다. 호응도 좋아 500명이 넘는 학생들이 200건에 가까운 물품을 공유 중이다.

정 씨는 "학교 미화원 할머니가 쓰시는 커피포트가 고장난 걸 본 학생들이 안타까워하며 공유커뮤니티에 올려 다른 학생의 커피포트를 받는 걸 보고 감동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다 쓴 참고서도 동덕여고 학생들이 공유하는 주요 품목 중 하나이다.
정 씨의 학급에선 '재능 공유'도 시작했다. 학생들끼리 멘토를 지정해 국어 잘하는 학생은 중국어를, 중국어를 잘하는 학생은 영어를 알려주는 식이다. 생활기록부에 잘 써준다고 농담하며 시작했지만, 이제는 아이들이 나서서 서로 도와줄 만큼 뜻 깊은 공유 중 하나가 됐다.

공유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은 '함께 문제를 해결코자 하는 것'이라고 정 씨는 설명했다. 정 씨는 "급식잔반을 남기던 학생들이 '남은 잔반도 공유하고 싶다'는 얘기를 한다"며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갖게 된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공동체의식을 갖게 된 것도 '공유'의 좋은 교육 중 하나다. 공유경제단의 학생들은 다른 반과 필기를 공유하고 싶다거나 고3이 공부하기 위해 필요한 2G폰 등을 공유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쏟아낸다. 필기를 가리고 안 보여준다는 여느 여고 교실과는 조금은 다른 풍경이다.

올해부터는 학생들이 안 쓰는 교복도 공유할 예정이다. 정 씨는 "작아져서 안 맞거나 졸업하고 버리는 교복을 모으는 파티를 열어볼 생각"이라며 "더 재밌고 즐겁게 만들어 많은 학생들이 공유에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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