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바우어'는 되는데…배트맨이 조커를 죽이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딱TV 김준만  | 2014.07.27 07:30

[딱TV]'착한 영웅 vs 나쁜 영웅'…그들의 선택

편집자주 | '밀리터리 덕후' 김준만 - 할리우드 영화와 록 음악에 푹 빠져 사는 ‘피터팬 증후군’ 중증 환자입니다. 밀리터리와 영화 관련 글을 인터넷 공간에서 여러분과 함께 나누는 것이 樂입니다.

마지막 순간 악당에게까지 자비를 베푸는 영화의 주인공들을 보면 왠지 뒷맛이 개운치 않다. 매번 감옥에 보낼 때마다 탈출하는 악당들과 끝없이 싸움을 반복하는 배트맨처럼 말이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당의 목숨을 빼앗는 '나쁜 영웅' 잭 바우어에게 끌리는 지도 모른다.


최근 미드 '24'의 시즌 9가 완결됐습니다. 이번 시즌도 주인공 잭 바우어의 눈부신 활약은 시청자들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습니다. (항상 24개의 에피소드로 이어졌던 '24'는 안타깝게도 이번 시즌에서 12개의 에피소드로 끝났습니다)

마지막 화를 보다 문득 잭 바우어와 '배트맨'을 비교하면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39년 밥 케인(Bob Kane)과 빌 핑거(Bill Finger) 두 사람에 의해 창조된 이후 75년 동안 사랑을 받은 배트맨. 전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킨 드라마 '24'의 '인간 병기' 잭 바우어. 두 캐릭터는 '정의의 사자'지만, 각자의 행동 원칙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1. 배트맨의 딜레마


↑ 1939년 5월, 디텍티브 코믹스에 최초로 등장한 배트맨


올해는 배트맨 탄생 75주년입니다. 배트맨은 초능력을 지닌 슈퍼 히어로와 달리 초능력을 가지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각종 무술을 익혔고, 첨단 과학 기술을 적용한 장비를 사용하죠. 뛰어난 전술과 추리력을 바탕으로 적과 싸웁니다.

훗날 '저스티스 리그'에서 슈퍼맨과 함께 리더로서 활동하고 슈퍼맨과 종종 팀워크를 이루기도 합니다. 물론 천하의 슈퍼맨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만 말이죠.

배트맨은 1939년 DC코믹스 출판사가 판매했던 시리즈물 '디텍티브 코믹스(Detective Comics)'의 주인공 중 한 명으로 처음 등장했습니다. 여기서 배트맨은 뜻밖에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인기에 힘입어 이듬해에는 아예 '배트맨'이라는 제목으로 만화책의 주인공이 됩니다.

바로 이 시리즈에서 첫 번째 등장하는 악당이 조커입니다.

배트맨의 수많은 적 중 조커를 대신할 자는 없을 것입니다. 심지어 팀 버튼의 배트맨(Batman, 1989)에서 조커(잭 니콜슨)를 첫 상대로 등장시킨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배트맨 영화 시리즈 중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 2008)'에서도 또다시 조커(故 히스 레저)가 나타납니다.





배트맨은 만화나 영화에서 수도 없이 조커를 고담 경찰에 넘깁니다. 경찰은 그때마다 조커를 알캄 정신병원(Arkham Asylum : 고담시에 있는 미친 범죄자들을 위한 수용시설)에 가두죠. 하지만 조커는 이곳을 별 어려움 없이 탈출합니다.

탈출한 조커는 온갖 범죄를 저지릅니다. 시민과 경찰에게 피해를 주고 살인까지 저지르곤 합니다. 결국, 배트맨은 조커와 지긋지긋하게 만납니다.

조커 외에도 배트맨의 적들(캣우먼, 펭귄, 미스터 프리즈, 리들러 등) 역시 알캄 정신병원에 수감되지만 반복해서 탈출합니다. 이들은 엄청난 사건을 일으키고, 무능력한 고담 경찰은 사건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배트맨은 왜 이런 악랄한 적들을 죽이지 않는 걸까요? 그들을 죽인다면 수많은 고담 시민은 구원받을 텐데 말입니다.

'살인 금지' 원칙은 배트맨뿐만 아니라 슈퍼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배트맨이나 슈퍼맨이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화책 주인공에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부모들과 만화 검열 기관은 어린이를 상대로 하는 히어로가 적을 죽인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굳어진 원칙은 바뀔 수 없었던 것이죠.

처음 배트맨은 검은 가면과 망토가 너무 어둡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밝은 파란색으로 칠해지기도 했습니다. 1960년대 말 TV 시리즈의 배트맨 역시 만화 분위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지극히 유치한 주인공 정도의 이미지로 그려졌죠.


↑ 밝은 톤의 파란색 마스크와 망토의 배트맨, 그보다 더 밝은 주황색과 노란색으로 이뤄진 로빈의 코스츔


이렇게 배트맨은 수많은 적을 몇 주 혹은 몇 달 간격으로 다시 만납니다. 조커와의 숙명적인 대결은 끝도 없이 반복됩니다. 조커를 비롯한 고정 캐릭터 외에도 훨씬 더 많은 단발성 악역 캐릭터(갱단, 외계인, 괴물 등)가 등장해 만화 팬을 만족하게 합니다.

1989년, 팀 버튼에 의해 배트맨은 최초로 스크린에 등장했습니다. 첫 작품이 흥행에 성공하자 지속해서 속편이 제작됐습니다. 처음 두 편의 배트맨 실사판은 팀 버튼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풍겼습니다.

배트맨(마이클 키튼)은 그 이전의 우스꽝스러운 TV 시리즈의 배트맨이나 만화책 속 캐릭터와 분명히 달랐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만화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현실에 가깝게 접근한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세 번째 실사판부터 팀 버튼과 영화사와의 불화로 팀 버튼이 하차하고 조엘 슈마허가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기껏 팀 버튼이 만든 배트맨의 개성적인 캐릭터는 과거 TV 시리즈의 어린이용 캐릭터로 퇴보해 버렸습니다.

배트맨 역으로 발 킬머와 조지 클루니 그리고 악역 캐릭터로 아놀드 슈워제네거, 우마 서먼, 짐 캐리, 토미 리 존스 등 당대 최고의 스타 배우들이 캐스팅됐습니다. 하지만 영화팬은 이 배트맨 실사판에 대해 냉정했습니다.


↑ 슈퍼 히어로 영화를 넘어 할리우드 영화 중 최고의 작품으로 찬사받은 '다크 나이트'


2005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 의해 배트맨 3부작은 리부트 됐습니다. 스크린에서 묘사된 어떤 배트맨보다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줬죠. 3개의 작품을 같은 감독이 연이어 만들도록 보장받았다는 사실은 연기자와 감독에게 장점으로 작용했습니다.

배트맨역의 크리스천 베일은 긴 호흡으로 캐릭터를 분석해 개연성 있는 연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놀란 감독은 '부모의 죽음 → 배트맨의 방황 → 배트맨 활동 시작 → 라스 알 굴(리암 니슨)과 대결 → 조커와 대결 → 베인(톰 하디)과 대결'로 이어지는 대서사시를 만들 수 있었죠.

놀란 감독의 배트맨 역시 악당을 죽이진 못했습니다. 미련하리만치 살인하지 않는 원칙을 고수하는 '정의로운 히어로'라고도 할 수 있죠. 하지만 관객들은 그런 배트맨의 모습에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절대 살인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깨진다면 배트맨은 더는 '정의의 사자'일 수 없고, 또 한 명의 범죄자로 추락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배트맨의 딜레마입니다.



△ 다크 나이트(2008)에서 배트맨과 조커의 자동차 추격장면



"만화는 단지 만화일 뿐!"

'정의의 사도', '권선징악'의 배트맨에 열광했던 과거의 팬과 달리 21세기 관객은 배트맨의 다른 모습을 원했습니다. '살아 숨 쉬는 캐릭터'로서의 배트맨에 익숙해지면서 배트맨의 행동과 사고에 충분한 설명을 요구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런 관객의 요구에 대충 넘어가려는 영화는 팬의 외면을 받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실패작이 니콜라스 케이지의 '고스트 라이더(Ghost Rider, 2007)'와 벤 애플렉의 '데어데블(Daredevil, 2003)', '엑스맨 탄생: 울버린(X-Men Origins: Wolverine, 2009)' 등 입니다.

주연배우의 인기나 전작의 흥행에 힘입어 만들어졌던 작품이지만, 캐릭터의 충분한 설명과 현실적인 스토리 텔링의 부족으로 혹평을 면치 못했습니다.


↑ 엉성한 스토리로 혹평을 받은 '고스트 라이더'. 2011년 무모하게 속편을 만들어 다시 한번 실패했습니다.


↑ 반면에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는 한계가 있더라도 캐릭터에 나름 현실성을 부여했습니다. '고뇌하고 번민하는 슈퍼 히어로'를 보여주려고 무척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 덕분인지 나쁘지 않은 평가와 함께 흥행 성공으로 마블 프랜차이즈 영화의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놀란 감독의 3부작에서 배트맨의 '살인 금지' 딜레마는 다소 어정쩡한 방법으로 해소됐습니다.

'배트맨 비긴즈(Batman Begins, 2005)'에서 라스 알 굴은 기차 충돌로, '다크 나이트'에서 투 페이스(아론 엑하트)는 추락으로(조커는 죽지 않습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The Dark Knight Rises, 2012)'에서 베인은 캣우먼(앤 해서웨이)의 총격으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배트맨이 직접 살해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이들은 제거됩니다. 놀란 감독은 아무도 살인하지 않고는 이야기의 현실감을 부여하기 힘들다는 판단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2.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잭 바우어


△ 미드 '24' 시즌 9 - Live Another Day 예고편




주인공 잭 바우어는 과거 특수 임무를 수행했던 군인이었습니다. 그는 한 마디로 인간 병기입니다. 민간인이 된 후에도 미국 정부 소속 대테러 대응 조직인 CTU(Counter Terrorist Unit)에 근무하죠.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잭 바우어는 자신과 자신의 가족 뿐만 아니라 미국 대통령을 향한 암살, 핵무기 위협 등 위기 상황에 놓였습니다. 그때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을 무찔렀습니다.

수없이 닥쳐오는 위기 상황에서 그는 적을, 심지어 자기 동료를 살인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드라마는 정교하게 짜여진 스토리로 그의 행동을 정당화합니다.

드라마가 시청자에게 "잭 바우어의 대응 외에 다른 선택이 있습니까? 있느냐고요!" 라고 다그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 영화 '더티 해리(Dirty Harry, 1971)' 주인공 해리 캘러헌은 범죄자와 대결에서 방아쇠를 당기는 것을 전혀 주저하지 않는 강성의 형사로 등장합니다. 어쩌면 잭 바우어는 더티 해리가 진화된 캐릭터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과거 영화나 TV 시리즈의 주인공들은 악인을 굴복시키고 그의 이마에 권총을 들이댄 채 분노에 떨곤 합니다. "나는 너와 같은 인간쓰레기가 아니야!" 라면서 경찰에게 악인을 인계하죠. 그리고 나선 멋있게 돌아서는 주인공. 이런 장면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멋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개운치 않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잭 바우어는 이런 상황에서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깁니다. 시청자들은 자비 없이 악당을 응징하는 잭을 보면서 통쾌함을 느끼죠. 착한 캐릭터보다 무고한 시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나쁜 짓을 저지르는' 잭 바우어에 더 감정이입을 하곤 합니다. 각종 범죄와 테러가 끊임없는 세상을 사는 관객에게 설득력 있을 법 합니다.


△ 사족

↑ '배트맨 V 슈퍼맨 : 돈 오브 저스티스'. 2016년 개봉 예정


슈퍼맨 리부트 작품인 '맨 오브 스틸(Man of Steel, 2013)'의 속편으로 '배트맨 VS 슈퍼맨'이 개봉될 예정입니다. '300(2007)', '왓치맨(Watchmen, 2009)', '맨 오브 스틸' 등 컬러가 뚜렷한 작품을 만드는 잭 스나이더가 감독을 맡았습니다.

슈퍼맨과 배트맨(벤 애플렉)뿐만 아니라 원더우먼(갤 가돗)까지 영화에 등장합니다. 하지만 서둘러 저스티스 리그를 구성하려는 모습이 왠지 위태해 보입니다. 배트맨과 원더우먼을 제대로 된 사전 설명도 없이 슈퍼맨 옆에 세워 놓고 자연스럽게 보이길 원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위험한 발상이 아닐까 걱정입니다.

마블 측에서 어벤져스를 제작하기 전에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헐크, 블랙 위도우 등 최소한 한편 이상의 영화에서 배경 스토리를 나름 성의있게 설명하고, 어벤져스 영화화를 시작했던 것과 비교될 뿐입니다.


☞ 본 기사는 딱TV (www.ddaktv.com) 에 7월 27일 실린 기사입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베스트 클릭

  1. 1 김호중 팬클럽 기부금 거절당했다…"곤혹스러워, 50만원 반환"
  2. 2 '공황 탓 뺑소니' 김호중…두달전 "야한 생각으로 공황장애 극복"
  3. 3 "술집 갔지만 술 안 마셨다"는 김호중… 김상혁·권상우·지나 '재조명'
  4. 4 '보물이 와르르' 서울 한복판서 감탄…400살 건물 뜯어보니[르포]
  5. 5 "한국에선 스킨 다음에 이거 바른대"…아마존서 불티난 '한국 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