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력가 살해男, "시의원 친구가 시켰다" 돌변 이유가…

머니투데이 박소연 기자 | 2014.06.29 09:00

이용 당한 것에 배신감… 정치인은 혐의 부인

현직 서울시의원 김모씨(44)의 살해 교사를 받은 팽모씨(44)가 지난 3월3일 새벽 12시18분쯤 범행을 위해 강서구 내발산동의 한 빌딩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 경찰은 폭력전과도 전무한 소심한 성격의 팽씨가 친구인 김씨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과 믿음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고 있다. /사진=서울 강서경찰서 제공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내발산동 수천억대 재력가 살인사건'이 청부 살해로 밝혀지면서 살해를 교사한 현직 서울시의원 김모씨(44)와 범행을 실행한 팽모씨(44)의 관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두 사람은 7년지기 동갑내기 친구로서 팽씨가 김씨에게 7000만원 빚을 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채무관계만으로는 동종 전과도 없는 팽씨가 이 같이 잔혹한 범행을 저지른 경위가 납득되지 않는다. 경찰은 김씨를 향한 팽씨의 '무조건적인 애정과 믿음'이 이 같은 비극을 초래했다고 보고 있다.

◇'자랑스런 정치인 친구' 위해서라면…

경찰에 따르면 팽씨는 2007년 국회의원 보좌관 일을 하는 둘째 형의 소개로 김씨를 알게 됐다. 고졸 학력으로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팽씨에게 시의원까지 된 김씨는 자신이 갖지 못한 학식과 사회적 지위, 권력을 지닌 '자랑스러운 친구'였다.

김씨도 평소 팽씨를 잘 챙겨왔다고 한다. 생활비로 쓰라고 용돈도 자주 챙겨주고 술도 많이 사줬다. 사업에 실패해 어려움을 겪을 때 7000만원을 선뜻 빌려주기도 했다. 팽씨의 주변인에 따르면 팽씨는 평소 김씨를 항상 자랑했으며 "김씨를 위해서는 모든 걸 해줄 수 있다"고 말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김씨는 팽씨에게 "요즘도 청부하는 사람들이 있나?"라고 물었다. 팽씨는 "글쎄 있겠지"라고 대답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2012년 12월 말 경기 부천시 상동의 한 식당에서 김씨는 "빌려준 돈 7000만원을 받지 않을 테니 송모씨(67)를 살해해 달라"고 말했다.

김씨는 "송씨가 악랄하게 돈을 번 재산가"라며 "내가 5억여원을 빌린 후 압박을 받고 있다. 차용증도 훔쳐와 달라"고 말했다.

아끼는 친구의 부탁에 팽씨는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일면식도, 악감정도 없는 송씨를 바로 살해할 수는 없었다. 팽씨는 폭행 전과가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김씨는 송씨의 소재지와 출퇴근 시간과 이동 동선 등의 정보를 팽씨에게 소상히 전달하고 실행을 압박했다. 팽씨는 망설였다. 팽씨는 최초로 살해 부탁을 받은 이후 1년 3개월 동안 김씨가 압박을 가할 때마다 50여차례 인천부터 내발산동 송씨 사무실까지 찾아와 주위를 맴돌며 김씨에게 '노력의 흔적'을 보였다.

김씨는 올해 초 "더 이상은 못 기다린다"며 송씨에게 최후의 통첩을 보냈다. 1월엔 팽씨에게 손도끼와 전기충격기를 직접 줬다. 김씨는 "송씨가 돈을 당장 안 갚으면 이번 지방선거에 못 나가게 하겠다며 날 협박한다"며 "이번이 마지막이다. 네가 못 하겠으면 내가 죽이겠다"고 말했다. 팽씨는 "네 손에 피 묻히지 말라"며 범행을 결심하게 된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제가 한 번 때리겠습니다."

결국 지난 3월3일 새벽 12시40분쯤 팽씨는 강서구 내발산동의 빌딩 3층 화장실에 숨어있다 관리사무실로 들어가는 송씨를 따라가 흉기를 20여차례 휘둘러 살해했다. 1년 3개월 동안 수없이 상상해온 일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팽씨는 김씨의 지시에 따라 치밀하게 도주했다. 택시를 수차례 갈아타고 인천 옥련동의 사우나 근처에 도착해 옷을 갈아입고 사우나에 들어갔다. 이후 다시 택시를 갈아타고 청량산으로 이동해 전기충격기 등 범행도구를 불태워 뿌렸다.

범행 후 김씨는 "잠시 선거 끝날 때까지 중국에 가 있으라"고 했다. 팽씨는 "아내와 자식의 생계를 책임져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범행 3일 뒤인 3월6일 중국으로 출국했다.

한편 경찰은 사건 직후부터 주변 CC(폐쇄회로)TV와 택시 GPS 등을 추적해 지난 3월18일 팽씨를 범인으로 특정했고, 중국 공안과 공조한 끝에 5월22일 팽씨를 중국 심양에서 체포했다.

이때까지도 김씨를 맹신했던 팽씨는 '잡히면 죽는다'고 했던 사전 약속에 따라 중국 구치소에서 수차례 자살 시도를 했다. 공안이 팽씨에게 족쇄를 채웠을 정도였다.

◇"너 들어오면 나 죽는다" 배신감에…정치인 "범행 일체 부인"

그러던 중 김씨는 팽씨의 구속 소식을 알고 전화를 해왔다. 김씨는 오랜 도피와 수감생활로 지쳐있는 팽씨에게 걱정 한마디 없이 '탈옥하든 죽든 하라'고 압박했다. '너 들어오면 나 죽는다'는 말만 반복했다.

팽씨는 그제서야 김씨가 자신을 친구로 여기지 않고 철저히 이용했단 사실을 깨달았다. '배신감'이 치밀었다. 심경의 변화가 생겼다. 아내와의 통화에서 '나 혼자 한 일'이라며 청부 사실을 숨겨온 팽씨는 '당신이 그럴 리 없다'며 설득하는 아내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결국 팽씨는 한국에 돌아와 모든 죗값을 치르기로 했다.

지난 24일 오후 1시5분쯤 경찰은 중국 심양 현지에서 팽씨를 인도받아 기내에서 체포영장을 집행하고 국내로 압송했다. 같은 날 김씨도 체포됐다. 팽씨가 자신의 심경 변화를 김씨에게 숨겨 김씨의 도주를 막았기에 가능했다.

김씨는 범행 일체를 부인하고 있다. 김씨는 "팽씨가 내게 빌려간 돈을 갚으라고 독촉받자 돈을 훔치기 위해 송씨를 살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송씨 사무실에서 발견한 김씨의 5억2000만원 차용증, 팽씨가 중국으로 도주한 후 김씨가 팽씨 지인 명의로 돈을 보낸 사실, 범행 전후 대포폰과 공중전화 통화내역 등으로 김씨를 살인교사범으로 특정하고 구속했다.

경찰 관계자는 "팽씨 주변 사람들이 모두 팽씨의 범행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할 정도로 팽씨는 소심하고 평범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7000만원 채무관계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그보다는 김씨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과 믿음이 팽씨의 범행에 더 결정적인 동기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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