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에서 감탄으로… '지혜의 숲'이 주는 '오감의 만족'

머니투데이 파주=이언주 기자 | 2014.06.25 05:11

[르포] 파주 열린 도서관 '지혜의숲' 가보니… 365일 24시간 깨어있는 '책의 숲'이더라

'지혜의 숲1'은 국내 학자와 전문가들이 기증한 책이 소장된 공간으로 문학·역사·철학·사회과학·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문학 도서를 만날 수 있다. 오전 10시 문을 열자 이용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지난 23일 오전 10시 경기도 파주시 문발동 파주출판도시.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와 지식연수원 '지지향' 로비에 마련된 도서관 '지혜의 숲'이 개관시간에 맞춰 문을 열자, 삼삼오오 방문객들이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평일임에도 20~50대 주부, 엄마와 함께 온 어린이, 간혹 보이는 외국인들까지 50여 명이 입소문과 눈소문을 타고 한꺼번에 몰려든 것.

"어머, 1970년 신동아 잡지를 발견했어요." 한 40대 여성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입을 떼자, "책 사이에 이 메모 좀 봐봐, 재밌는데?"하는 어느 30대 여성의 수다도 이어졌다. 책에 깃든 신기한 장면과 오랜 사연까지 훑던 주부들의 시선이 동시에 멈춘 곳은 8m 높이로 세워진 서가. "저 꼭대기 책은 어떻게 꺼내 보나요? 책은 또 어떻게 찾아요?"

'지혜의 숲'이 가장 자랑하는 이 서가에 순간 발걸음을 멈춘 주부들. 뭐가 그리 즐겁고 궁금한 게 많은지, 둘러보던 사람들은 '권독사'라는 이름표를 목에 건 자원봉사자를 찾아 질문하기 바빴다.

석경징 교수의 기증도서 코너에서 만난 도서. 우연히 책 사이에 끼워진 메모나 편지를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사진=이언주 기자
◇ 고급스럽거나, 고즈넉하거나

서가는 기증도서 50만여 권 중 20만 권 정도로 먼저 꾸려졌다. 유통사와 출판사를 비롯해 석경징(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 유진태(재일 역사학자), 유초하(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한경구(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홍진경(미술사학자) 등 학자 30여 명이 기증한 책들이 우선 배치됐다.

책들은 기증자들의 일상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묻어있었다. 뭔가를 적어둔 메모나 편지, 오랜 달력, 잡지 등 부속물이 책과 함께 딸려와 보는 이에게 또 다른 기쁨을 주기도 한다. 이곳은 1·2·3구역으로 구성된 '지혜의 숲'의 1구역에 해당한다.

2·3구역은 출판사 기증도서 코너로 한국 대표 출판사들이 지금까지 펴낸 책들을 출판사별로 모았다. 각 출판사의 역사와 특징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어린이 책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아래 칸에 두었다. 3구역은 '지지향' 로비에 꾸며졌으며 24시간 개방한다. 1·2 구역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운영한다. 연중무휴 문 여는 이 도서관은 우선 한 구역만 24시간 운영하면서 이용자들의 반응을 보겠다는 것이다.

이날 야외 테라스에선 한 사람이 열심히 소리 내어 동화책을 읽고, 다른 한 사람은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 마치 동화구연대회의 한 장면 같다. '어린이도서연구회' 인천지부 회원들이라는 여성 4인방은 중·고등학생 자녀들을 등교시키고 인천에서 막 건너온 참이었다.


파주에 매력을 느껴 자주 온다는 김현숙 회원은 "도서관이 이렇게 고급스럽고 한적할 줄 몰랐다"며 "엄마들이 아이들 데리고 와서 같이 책 읽으며 교육하기에 이만큼 좋은 곳이 없을 것 같다"고 감탄했다. 또 "앞으로 '작가와의 만남'이라든가 대중성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될 것"이라며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구상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린이도서연구회 회원들이 '지혜의 숲'을 방문해 동화책을 골라 놓고, 어린이 권장도서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다. 서가 디자인은 훈민정음을 모티브로 했다. 뒤편에 'ㄱ'(기역) 모양이 보인다.
고급스럽고 편안한 분위기의 '지혜의 숲'은 클래식음악이 잔잔하게 흐른다. /사진=김현숙 어린이도서연구회 회원
◇ 기계냄새보다 땀냄새… 성숙한 시민의식의 원류를 찾아서

'지혜의 숲'이 다른 도서관과 크게 다른 점은 무얼까. 우선 이곳에는 도서검색용 PC가 없다. 전자책도 없을 뿐 아니라, 출입구에 도난방지 시스템이 장착돼 있지 않다. 온전히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하는 셈이다.

정병규 책임연구원은 "지식의 보고이자 아카이브 형태로, 직접 눈으로 보고 책을 꺼내 만지고 읽도록 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우세했다"며 "지혜의 숲 자체가 성숙된 시민의식을 함께 키워가자는 의미도 있기 때문에 이용자들을 믿고 운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CCTV도 있고, 무엇보다 서가마다 권독사들이 책을 지키고 있다. 꼭 찾고 싶은 책이 있을 때도 권독사에게 문의하면 된다. 이용자들이 자주 하는 질문이 "저 높은 곳에 책은 어떻게 꺼내보느냐"다.

가장 높은 서가는 8m로 모두 16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10단까지는 트레일러를 이용해서 올라가 꺼낼 수 있고, 권독사들의 도움을 받아 이용자가 직접 올라가서 볼 수도 있다. 11단 이상은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채 꽂혀있는 경우도 있고, 같은 책이 여러 권일 경우 한권만 아래쪽에 두고 나머지는 위로 올려두기도 했다. 또는 기증자가 열람보다는 '소장'을 부탁한 경우 위쪽에 배치했다.

'글이 피어나는 곳'이라는 뜻의 지명 '문발동'에는 수십 만 권의 책과 함께 '지혜의 숲'이 자라나고 있었다. 지난 19일 개관 이후 주말 3일간 이 곳을 찾은 방문객만 4만 명이 넘었다. 오는 9월 30일까지는 '책 속으로, 김혜련의 병풍놀이'라는 제목으로 김혜련 작가의 회화와 설치작품이 서가와 어우러져 전시된다.

'지혜의 숲' 공간에 김혜련 작가의 작품이 어우러진 모습. 개관 프로젝트로 열리고 있는 '책 속으로, 김혜련의 병풍놀이'전시가 9월30일까지 이어진다. /사진제공=출판도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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