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우리는 로마가 가장 먼저 보고 싶었기에 이렇게 잡았을 뿐이다. 역으로 그들은 파리가 가장 보고 싶었다고 한다. 이것도 세대 차인가 생각하고 있는데, 그 여성이 이런 얘기를 한다.
“역사가 진행된 대로 여행하시는 거네요. 그 일정도 의미가 있어 보이는데요?”
역사적으로 문화의 중심축은 그리스의 정신을 계승한 로마, 르네상스의 피렌체, 그리고 이어서 파리로 이동해 갔다. 예술을 장려했던 메디치 가문,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모셔간 프랑스는 이러한 흐름을 보여준다. 본래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우리의 여행은 역사의 순서대로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유럽은 문명의 발전을 시대별로 음미해 보는 재미가 있다.
다양한 삶의 방식
다양한 삶의 방식을 관찰하는 것도 흥미롭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5대 도시만 해도 그 색깔이 천차만별이다. 산업의 중심 밀라노, 물의 도시 베네치아, 르네상스가 꽃피웠던 피렌체, 고대 유적이 남아 있는 로마, 아름다운 해변을 자랑하는 나폴리. 로마 제국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음에도 전혀 다른 분위기다. 심지어는 생김새와 체격 조건도 다르다고 한다.
1인당 국민소득만 해도 상공업이 발달한 밀라노는 농업 위주의 남부 지역과 큰 차이가 난다.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항구로 알려졌던 나폴리 지역은 로마 시절부터 부자들의 별장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경제력과 거주 환경이 많이 낙후되어 있다. 지중해를 끼고 도는 아말피 해안 도로는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할 곳’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아주 멋지다. 그러나 남부 지역의 관광업은 한철 장사라고 할 정도로 겨울에는 빈집이 많다.
음악 시간에 즐겨 부르던 ‘돌아오라 소렌토로’. 이 노래에는 고향을 떠나는 남부 이탈리아 사람들의 이별 사연이 담겨 있다. 소렌토와 나폴리 항구는 이민선이 떠나가는 항구였던 것이다.
이탈리아 음식이라고 하면 으레 파스타나 피자가 떠오른다. 실제로 미국에서 친구들과 이탈리아 식당에 가서 스테이크를 주문했더니, “왜 이탈리아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먹지?”라며 이상해한다. 그들도 잘 모르고 하는 얘기다. 피렌체의 추천 요리는 스테이크다. 커다란 접시에 한가득 나온 티본(T-bone) 스테이크의 양을 보고서 깜짝 놀랐다. 그 맛을 보고는 또 한 번 놀랐다. 이 지역에서는 소를 자연 속에서 방목해 길러서 육질이 좋다고 한다. 가죽 제품이 피렌체에서 많이 나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구찌(Gucci)와 페라가모(Ferragamo)와 같은 명품에 고향답다.
물론 이탈리아는 오랜 세월 동안 여러 국가로 나뉘어 있다가 뒤늦게 통일이 되었기에, 지역별로 차이가 크다. 또한, 불균형과 다툼의 과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로마 문명과 르네상스의 발상지답게 본래 개성이 존중되는 환경 탓은 아닐까?
여행이 인생의 전환 계기가 되었던 어느 기업가
미국에서 벤처 기업으로 크게 성공한 친구가 있다. 대대로 의사 집안에서 이 친구만 홀로 엔지니어의 길을 가더니, 결국 사업의 꿈을 이루었다. 그는 대학교 때 3개월 동안 유럽 무전여행을 한 것을 인생의 계기로 꼽는다. 밑바닥부터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고, 여러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혼자 많은 생각을 한 것이 훗날 사업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해 주었다.
단순히 명승지를 보기 위해, 사진을 찍어서 자랑하기 위해서 여행 가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에서 아름다운 사진과 정보는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TV에서 고급 품질의 영상으로 더 상세하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직접 떠난 여행은 문화를 몸소 체험하고, 역사의 체취를 느끼고, 삶의 다양한 모습을 발견하게 한다. 무엇보다 며칠이나마 그 속에 빠져들게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지역 문화, 경제 여건, 삶의 방식에 따라 차이가 있을 뿐이다.
다양성은 국제화 시대의 키워드이기도 하다. 바야흐로 다원화 시대다. 산업화 시대에는 일사불란한 조직력과 효율성이 중요했지만, IT의 발달 때문에 중심은 조직에서 개인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조직의 시너지를 일으켜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다양성과 개성이 발휘되는 환경이 중요하다.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면 무슨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오겠는가?
여행은 이러한 다양성을 직접 보고 체험할 기회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지 23년. 생각해 보니 모든 것을 잊고 일 아닌 여행에만 몰입했었던 적이 없었다. 이번 기회에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잠시 접어 두고 쉼 없이 달려온 트랙에서 잠시 벗어나 보았다. 자유롭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보낸 시간은 참으로 소중했다. 모처럼 값진 휴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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