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선의 유럽여행기]예술과 과학의 멋진 협연 '최후의 만찬'

머니투데이 김홍선  | 2014.03.01 05:22

<9>'천지창조'가 주는 감동, 그 속에 녹아 있는 문화과학 융합의 힘

편집자주 | 필자는 23년간 IT 분야에서 엔지니어로, 벤처 기업가로, 전문경영인으로서 종사한 IT 전문가다. '누가 미래를 가질 것인가?'라는 저서도 출간했다. 그는 최근 7년간 몸 담았던 안랩의 CEO를 그만 두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인생의 2막을 준비하면서 그는 최근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유럽여행이야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고, 또 전문가들의 여행기도 많다. IT 경영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여행의 단상은 어떨까. 바쁜 일상으로 출장 외에 여유있는 여행을 꿈꿀 수 없는 CEO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쯤으로 시리즈를 연재한다. 여행경로는 로마에서 시작해 나폴리-피렌체-베니스-밀라노-파리까지. 20일간의 여정이다.

최후의 만찬 전시장소 /사진=김홍선
밀라노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번화한 패션의 중심지이고 공업도시다. 다른 지역에 비해 국민소득도 상당히 높다. 그러나 로마나 피렌체, 베네치아와 달리 유적은 많지 않다. 고급 쇼핑가는 발달하여 있으나 덜 클래식하다. 그래서, 이탈리아에서 과거로의 여행에 흠뻑 젖었던 사람들은 다소 실망하기도 한다.

그런데, 밀라노에서 미리 예약과 선결재를 해 놓고 충분히 시간을 잡아서 가야만 하는 곳이 있다. 그것도 단 하나의 그림을 위해서다. 바로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있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이다.

우리도 전화 예약으로 어렵게 받은 시간을 놓치면 안 되기 때문에, 넉넉잡고 1시간 일찍 도착했다. 단 15분의 이 그림과의 만남을 위해서다. 매 15분 단위로 정해진 인원들이 입장하게 된다. “이미 여러 미술책을 통해 익히 보아 온 그림인데, 특별히 다를 게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럴수록 꼭 보고 싶다는 간절함이 있었다.

드디어 벽화가 있는 방(본래 수도원 식당)으로 들어섰다. 오른쪽 벽에 커다란 벽화가 보인다. 순간 나도 모르게 숨이 막히는 듯한 감동에 휩싸이면서 그림에 빠져들었다. 그림 속의 인물들이 살아서 앉아있는 듯하다. 제자들의 동작 하나하나의 의미를 미리 공부하고 가서인지, 정적인 그림 안에서 생동감이 느껴졌다. 마치 내가 이 만찬에 같이 앉아 있는 듯한 착각도 든다. 얼마나 인상이 강렬했던지, 두 달이 다 된 지금도 뇌리에 남아있다.

예술 복원의 기술

피렌체공방 - 복원예술장소 /사진=김홍선
사실 ‘최후의 만찬’은 복원 과정에 대해 화제와 논쟁이 끊이지 않았던 작품이다. 다빈치가 사용한 템페라 방식은 풍부한 색조를 표현할 수 있지만, 훼손되기 쉬운 단점이 있어서, 이미 오래전부터 균열이 생겼다고 한다. 결국, 지금 보고 있는 그림은 원본 작품과는 차이가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직접 본 소감으로는 다빈치의 예술적 터치와 의도는 크게 훼손되지 않았다.

물론 나는 비전문가이지만, 아무렴 어떤가? 나의 개인적 감정이 중요한 것 아닌가? 우리 그룹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고, 다음 그룹은 러시아에서 온 단체였다. 원본 작품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왜 수많은 관람객이 예약까지 하면서 멀리서 오겠는가?

그만큼 복원 기술이 치밀하고 철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품의 진정성과 예술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얼마나 과학적 분석에 심혈을 기울였는지 상상이 간다. 이 위대한 작품의 복원을 위한 전문가들의 열정에 경의를 표한다.

우피치미술관에서 메디치가로 연결된 다리 /사진=김홍선
피렌체에서 우피치 미술관을 나오는 길에 공방(工房)처럼 보이는 스튜디오가 눈에 띄었다. 예술품을 복원하는 곳이라고 한다. 안내자가 발표한 바로는 이 장소는 몇백 년 전에도 이런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이 작업은 지속적이고 영구하다는 얘기다. 한편으로는 복원 품질을 계속 끌어올리고자 끊임없이 새로운 과학적인 기법과 기술을 연구한다.

유럽에서 예술 복원 전문가는 전문성이 중시되는 직업이다. 전문학교에서 철저한 이수와 훈련을 통해 육성된다. 과학적 지식과 경험이 풍부해야 하며, 역사와 예술에 대한 높은 소양이 요구된다. 여기에 소명감을 가진다면 더할 나위 없다. 한 마디로 예술과 과학을 융합하는 창조형 인재다.


루브르박물관 입구 /사진=김홍선
루브르 박물관에 갔을 때 계단에서 손잡고 내려오는 귀여운 아이들과 마주친 적이 있다. 유치원생으로 보인다. 어린 나이에도 세계적인 예술품을 접하는 모습이 일견 부러웠다. 다른 미술관에서도 단체로 온 청소년들을 많이 마주쳤다. 어느 그림 앞에서는 아예 학생들이 바닥에 앉아 있고, 교사가 그림을 가리키면서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바라보고 적느라 여념이 없는 그들의 진지한 학습 태도에 눈길이 갔다.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 시절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인 예술품을 접하면서, 그들은 나름대로 예술적 감흥에 젖을 것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자신의 미래를 발견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과학에 소질이 있고 예술품에 관심이 있다면, 복원 예술의 경력을 추구할 수도 있다. 이미 검증된 학교 과정이 있고, 그곳을 나오면 일자리도 있다. 중요한 문화유산이니 후원자도 풍부할 것이고, 예술품은 영원하니 평생을 할 수 있는 직업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찾는 세계인을 기쁘게 하니 보람이 크다.

예술의 가치를 키우는 과학의 힘

예술은 과학이 뒷받침될 때 더욱 빛이 난다. 문화 콘텐츠를 키우는데 이견이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역할은 인문학자나 예술가만의 임무는 아니다. 오히려 철저하게 과학을 접목하고, 그런 융합적 연구를 활성화하는 데서 방향을 찾아야 한다. 물론 한국은 세계적 유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유럽과 비교해서 여러 면에서 부족하다. 그러나 그럴수록 치밀한 전략과 추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1982년 미켈란젤로의 ‘천지 창조’의 복원을 위해 선뜻 지원한 곳은 일본의 NHK였다. 이로 인해 유럽에서 일본의 문화적 위상은 크게 좋아졌다.

최근 인문학 붐이 불고 있다. 그러나 인문학이 일부 인기 교양 강좌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과학과 기술에 기반을 둬서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내야 한다. 문화유산은 다양한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과학적 전문성은 문화유산의 가치를 끌어올린다.

융합은 추상적인 단어가 아니라, 우리의 먹고사는 문제다. 예술과 과학을 접목하는 것은 창조형 융합으로, 고부가가치이며, 세계화이다. 또한 안정성이 보장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고급 일자리가 창출된다. 한편 IT는 융합의 플랫폼을 형성하고 다양한 전문가 그룹의 소통을 원활하게 해 준다. 이러한 역할에 IT를 제대로 활용해야 진정한 IT 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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