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수도교 근처에서 골프치는 할아버지 /사진=김홍선
“역시 로마의 목욕탕은 스케일도 다르구나!”라고 생각을 하면서 그 곳을 지나쳤다.
버스는 로마 시내의 현대적 건물과 유적지를 번갈아 지나치면서 나아갔다. 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아무 거리낌 없어 보인다. 2,000년 전 삶의 공간과 현대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가 한 공간에 어우러진게 이국적이다. 보통 유적이라고 하면 멀리 떨어져서 울타리가 쳐있는 단절된 공간이지 않은가? 그런데, 이곳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한 공간에서 숨을 쉬고 있다.
로마수도교 근처에서 본 양떼들 /사진=김홍선
궁전 구석에 있는 명장의 작품
베끼오 궁전 건물 앞면 모서리에 있는 미켈란젤로 작품 /사진=김홍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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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작품인지 아세요?”
그게 유명한 예술가의 작품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에 모두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 있었다.
“누가 장난삼아 새긴 것 같지요? 그런데, 놀라지 마세요.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랍니다.”
습작으로 한 것인지, 아니면 부탁을 받고 한 것인지 모르지만 그 궁전의 모서리에 분명히 작품이 새겨져 있다. 하긴 그 옛날 이 작은 도시에서 미켈란젤로의 손길이 닿은 곳이 한 두 가지였겠는가? 어쨌든 유명 화가의 작품이 무심코 지나치는 길 가에 있다는 자체가 놀라움이었다. 이 작품을 보면서 마치 미켈란젤로가 옆집 아저씨 같은 친근감마저 느껴졌다.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과거의 위인이 작은 돌 위에 조각해 놓은 작품을 통해 우리와 얘기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와 같이 이탈리아에서는 유적 주위를 멋있게 치장하기 보다, 유적을 우리의 삶과 어울리게 해 주는 자연스러움이 돋보였다. 사실 우리 나라에도 좋은 유적이 많다. 그러나, 그 속에서 재미있는 스토리를 만들어 내고, 주위와 어울리게 하는 방법은 더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분은 우리의 여행 문화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우리는 찾아서 보는 것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치 숙제를 하듯이 이곳 저곳 인증샷 찍는 의무감에 쫓긴다.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면서까지 사진을 찍으려는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단테의 생가 (피렌체) /사진=김홍선
비싼 돈 주고 여행 갔는데 하나라도 더 보고, 기록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카메라나 동영상, SNS와 같은 디지털 기술은 ‘망각을 사라지게 만드는’ 기록 문화를 만들었다. 게다가 IT는 대중화되어서 돈도 들지 않고, 기술적 어려움도 없다. 누구든지 저렴하게 디지털 문화를 즐기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눈으로 보기 보다 하나라도 카메라에 담기에 바쁘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하면 어떨까? 때로는 그런 분주함에서 벗어나서 아날로그 스타일로 즐기는 편이 낫다. 미술 작품을 보면서 그 속에 빠져 들고, 과거 인물들이 돌아다녔을 지역을 밟으며 그 시절로 가 보고. 직접 보고 느끼는 체험은 오히려 오랜 기간 생생하게 남아 있다. 카메라의 대중화로 사진 한 장의 가치는 크게 떨어진 반면, 기억 속에 남은 사진은 값을 매길 수 없다.
과거와 현재의 삶의 공간을 아우르는 것도 ‘융합’이다. 누구에게 자랑하기 위해 화려하게 포장된 문화 콘텐츠는 격이 낮다. 그냥 친구처럼 편하게 얘기하고, 과거의 숨결을 현재의 삶에 불어넣을 수 있는 환경이 훨씬 자연스럽다. 그리고, 이를 음미하는 여행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수백 년 전과 같은 모습을 가진 보석 판매점 (피렌체) /사진=김홍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