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진 대사 찡한 얘기, 할매 손맛 같은 연극

머니투데이 이언주 기자 | 2014.02.14 09:30

[이언주 기자의 공연 박스오피스] 연극 '나와 할아버지'··· 대본이 "솰아있네!~"

연극 '나와 할아버지'는 대본의 힘과 배우들의 연기력이 빛나는 작품이다. 할머니 역의 정선아(왼쪽)는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재치 넘치는 멀티 역할로 극의 흐름에 탄력을 준다. 손자 역의 오의식(오른쪽) 역시 흡입력 있는 연기로 관객들을 흠뻑 몰입하게 했다. /사진제공=스토리피
'나와 할아버지'. 이 담담한 제목은 둘 사이에 무슨 사연이 있을까 괜히 궁금하게 만든다. 발랄하게 감성을 자극하며 눈에 띄는 제목이 아니라서 더 그런지도 모른다. 연출가 민준호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이 연극은 오랜만에 솔직하고 담백한 무대를 맛보게 한다.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언어를 잘 살려낸 대본은 바로 내 이야기고 우리들의 삶이기에 공감을 한껏 불러일으킨다.

"아프시니까 운동을 하셔야 된다니까요."(손자)
"그러니까··· 아니, 아픈데 어떻게 운동을 해? 앉아 있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할머니)
"할머니 고스톱 치실 때는 잘 앉아 계시잖아요."(손자)
"그나마 고스톱이라도 치니까 앉아있지, 그거라도 안치면 누워있어야 돼."(할머니)

나이를 들면 도로 애가 된다고 했던가. 옥신각신 주고받는 대화 중 고집부리며 떼를 쓰는 할머니의 모습이 영락없이 어린아이다. 그런 할머니와 손자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어쩐지 낯설지가 않다. 누구나 할아버지 할머니와 대화를 하다가 재밌었거나 혹은 가슴을 쳤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했던 얘기를 열 번쯤 하고 또 하는 동안 관객들은 빵빵 터진다. 톡톡 쏘아붙이며 언성을 높이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대화도 부부싸움이라기 보단 소꿉놀이 같다. 어느새 무대와 객석은 호흡을 함께하며 '진짜 사는 이야기'에 푹 빠진다.

손자 준희는 멋진 멜로드라마를 쓰고 싶은 공연대본작가다. 그런데 그의 선생은 다른 주문을 한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관찰하고 대화도 녹음해서 써보라는 것이다. 할머니가 쓰러지는 바람에 결국 할아버지만 관찰하기 시작한 준희는 할아버지의 음성을 녹음하며 할아버지의 과거 이야기를 듣는다. 힘든 시대를 살며 잊혀 지지 않는 추억을 가진 할아버지와 그 기억을 좇아가는 손자,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액자 속 사진 너머에 숨기며 살아가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어우러진다.


무대는 간소하고 조명도 은은하다. 자동차가 되기도 했다가 할머니의 서랍, 병원 침대로 변하는 수레 위에 박스만 놓여있을 뿐이다. 그래서 배우들의 연기와 날것 그대로의 언어가 고스란히 살아있다. 이 연극의 맛은 찰진 대사다. 실제로 녹음한 할아버지 말투를 그대로 가져다 쓰면서 '마음'을 담아냈기에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귀에 착착 감긴다.

'우리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도 그러셨겠지!'하며 무릎을 치며 웃기도 하고, 끝내 코끝이 찡해지기도 한다. 누구에게도 피해주지 않으려는 마음, 애끓는 가슴을 묻어둔 채 이 세월을 살아야만 했던 어르신들의 큰마음. 하지만 어느덧 표현방식은 고집과 어리광으로 바뀌어버린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을 살포시 매만져보게 된다. 극장을 나오는 길, 외할머니가 끓여주신 구수한 아욱국 한 그릇이 생각난다. 마음이 맑아지고 건강해지는 연극이다.

◇연극 '나와 할아버지'=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오는 4월 20일까지. 작·연출 민준호, 출연 김승욱·오용·진선규·이희준·홍우진·정선아·양경원·이석·손지윤·오의식. 티켓 전석 3만5000원. 예매 인터파크 1544-1555. 문의1600-8523.

'이렇게나 할아버지 같을 수가!' 할아버지 역의 진선규(가운데)는 고집은 세지만 뜨거운 가슴과 아련한 추억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사진제공=스토리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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