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무사고 A씨 "딱 한번 박은 차가 벤츠, 보험료가…"

머니투데이 권화순 기자 | 2014.01.24 05:30

[25년만의 대수술 자동차보험-上] 점수제 대신 건수제로

편집자주 | 자동차 등록대수가 2000만 대를 향해가면서 자동차 보험료 산정의 기본이 되는 할인할증제도도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할인할증제도는 도입된지 25년이 흘렀지만 사고 정도에 따라 보험료를 책정하는 기본 골격은 그대로다. '인명 피해 줄이기'는 큰 성과를 봤지만 교통사고 횟수가 증가하며 경미한 교통사고가 자동차보험의 건전성을 해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변화하는 환경에 발맞춰 건수를 중심으로 할인할증제도를 개편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는 안전운전 문화를 정착하는 데도 보탬이 될 것이란 기대다. 이 같은 변화가 보험 가입자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이며 나아가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을지 살펴본다.

#"벤츠를 골라서 사고를 낸 것도 아닌데 외제차라고 어쩐지 위축이 되고, 차 수리비에 또 놀라고.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마저 드네요." 아반떼 운전자인 A씨는 15년 무사고 운전자다. 그런데 얼마 전 출근길에 그만 사고를 내고 말았다. '아차' 하는 사이에 신호등이 바뀐 걸 보지 못해 앞차를 추돌한 것이다. 하필이면 중소기업 사장이 타고 있던 벤츠였다. 범퍼를 포함한 뒷부분이 부서지면서 수리비가 300만원이 나왔고, 여기에 벤츠 운전자가 5일 동안 대차를 했던 비용(렌트비) 200만원이 추가됐다. 반면 A씨의 차는 100% 과실이 적용됐어도 수리비는 20만 원에 불과했다. '딱 한 번의 사고'였는데 피해금액이 컸던 바람에 이듬해 보험료도 크게 뛰었다. 할증된 보험료는 무려 3년간이나 유지된다고 했다.

자동차보험료 산정 기준이 되는 할인할증체계가 25년여 만에 '대수술'에 들어간다. 사고의 경중을 따지는 점수제 대신, 건수를 따지는 건수제를 도입하는 게 주요 골자다. 건수제가 도입되면 교통사고 건수가 많을수록 더 많은 보험료가 부과된다. 대신 무사고 운전자들의 보험료 부담은 줄어든다. 등급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평균 4% 정도의 보험료가 인하될 전망이다.

◇차보험 가입자간 보험료 형평성 제고=
국내에 점수제가 도입된 것은 1989년이다. 당시에는 교통사고에서 '사고의 정도'가 문제였다. 사망 등 '중한' 대인사고가 많았던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가벼운 교통사고가 더 많아졌다.

사고 1건 당 크든 작든 똑같은 점수가 적용되는 것이 언뜻 보기에는 불합리해 보이지만, 차보험 가입자간 보험료 형평성 측면에서 볼 때 그렇지 않다는 지적이다. 일단 현재의 자동차보험체계는 사고를 자주 내는 사람에게 이에 상응하는 보험료 부담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한 번' 대형사고를 내는 사람보다 사고를 자주 내는 사람의 보험사고 발생 위험률이 더 높을 수밖에 없는데도 한 번의 대형사고에 더 큰 패널티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의 할인할증 체계는 상당히 복잡해 보험가입자들이 자신의 보험료가 어떤 방식으로 산정되며, 사고가 났을 경우 어떻게 바뀌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 현재의 체계는 사고내용과 원인별 점수가 각각 정해져 있고, 이를 합산해 등급을 매긴다. 또 같은 종류의 사고내용일지라도 '정도'에 따라 점수가 차등 적용된다.

예컨대 대인사고는 부상등급(1~14급)에 따라 1점에서 4점까지가 있는데 사망사고는 4점이다. 또 가벼운 접촉사고는 0.5점이고 보험가입자가 정한 50만~200만 원의 할증기준을 넘어서면 1점이 매겨진다.

◇벤츠 받은 A씨, 건수제로 보험료 계산하면=
벤츠사고를 낸 A씨의 경우, 피해자가 9급 부상사고를 당했기 때문에 대인사고 2점이 부과된다. 여기에 물적 사고 1점이 추가된다. 범퍼 교체비 300만원, 렌트비 200만원을 합쳐 500만원의 비용이 나왔는데 이는 할증기준 최고치인 200만 원을 한참 넘은 규모다. 수리비가 많이 나오는 외제차 사고라 벌점도 같이 높아진 셈이다.

이에 따라 A씨는 총 3점의 벌점을 받았다. 현재 그의 등급이 16등급이므로 내년 보험료 갱신 시 3점이 부과돼 13등급으로 떨어지게 된다. 60만729원이던 보험료는 내년부터 2017년까지 3년간 72만7348원으로 올라간다. 이 3년 동안 꾸준히 무사고를 유지해야, 2018년 겨우 14등급(보험료 68만2612원)이 될 수 있다.

건수제로 바뀔 경우는 계산이 훨씬 간단하다. 일단 인적사고인지, 물적사고인지를 따지지 않고 비용 규모도 상관이 없다. 사고 건수에 비례해 3배수로 점수가 부과된다. A씨는 1번의 교통사고를 냈으므로 벌점은 3점이다. 이에 따라 내년에 등급이 16등급에서 13등급으로 떨어져 70만6120원의 보험료를 내야한다.

하지만 1년만 무사고를 유지하면 보험료는 바로 떨어져 2016년에는 14등급(66만1192원)이 된다. 또 2017년(61만8007원), 2018년(58만1977원)에도 매년 순차적으로 보험료가 인하된다.

◇전체 80% 무사고車, 보험료 4% 내린다=
건수제는 이처럼 가입자가 자신의 보험료를 쉽게 계산할 수 있기 때문에 교통사고를 예방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사고건수에 비례해 보험료가 오르고, 또 얼마나 오를지 짐작이 가능하기 때문에 안전운전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건수제는 '보험 가입자가 자신의 위험수준에 맞는 보험료를 내야한다'는 대원칙에도 부합한다는 설명이다. 장래 사고발생 위험이 높아진데 대한 보험료를 더 부담토록 한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전년도 무사고자는 올해 사고를 낼 확률이 16.1%지만 경미한 사고(0.5점 사고)를 낸 사람은 이 확률이 22.5%로 올라간다. 전년도 사고가 잦았던 사람이 또 사고를 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특히 대형사고(4점 사고)를 낸 사람 중 20.9%는 이듬해에 또 사고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은 사고가 잦았더라도 벌점이 '0.5점'에서 그쳤던 사람은 보험료 할증이 되지 않고 3년간 할인이 유예된다. 사고 위험도는 높지만 위험도에 상응하는 보험료를 내고 있지 않은 셈이다. 반면 건수제에서는 3등급이 떨어져 보험료가 할증된다. 물론 이들도 무사고를 1년 유지하면 바로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반면 위험수준이 낮은 무사고자의 보험료는 인하요인이 생긴다. 국내 무사고 차량은 전체의 79.9%(2012회계연도 기준, 1383만여대)를 차지할 정도로 대다수다. 건수제로 개편되면 이들 대다수 보험가입자의 보험료는 평균 4% 절감될 것이란 분석이다.

그동안은 사고를 많이 낸 사람이 더 냈어야 하는 이 4%를 사고위험이 낮은 다른 가입자들이 나눠 부담하고 있었던 셈이다. 평균 보험료 65만9000원, 기본등급 16등급을 가정하면 무사고 운전자들이 덜 낼 수 있는 보험료는 총 3646억 원에 달한다.

◇보험료 총량은 불변..무사고 운전자도 보험사도 득(得)=
일각에서는 이번 제도 개선을 통해 보험사들이 우회적으로 보험료를 더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자동차보험 영업적자가 수년째 누적되다보니 받게 되는 오해다. 하지만 사고 위험이 높은 사람에게 더 받는 보험료(3646억원)만큼 무사고자의 보험료가 인하되기 때문에 전체 보험료 규모에 변동은 없다는 설명이다.

다만 사고예방 효과를 통해 장기적으로 물적 사고 위주의 교통사고가 감소될 것으로 기대되므로 보험사 입장에서도 합리적이다. 그만큼 보험사들이 지급하는 보험금도 줄어들 여지가 있어서다.

'자비처리'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보험 가입자가 자신의 등급이 악화될 것을 우려해 경미한 사고(소액사고)에 대해 보험 처리를 하지 않고 자비로 처리할 것이란 우려다. 하지만 이는 현행 점수제에서도 발생하는 문제다. 건수제는 교통사고 경중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할증이 되기 때문에 자비처리 여지가 더 크다.

금융당국은 건수제가 단순 접촉 사고 등에 대해 과도한 패널티를 부과할 수 있다는 지적을 감안, 경미한 물적 사고의 할증폭을 3등급이 아닌 1~2단계로 낮추는 방안도 고려중이다.

건수제 하에서 장기무사고자 등 보험료 할인이 많은 다수 보험가입자는 보험처리를 해도 보험료 할증부담이 크지는 않다. 실제로 앞서 A씨를 예로 들면 4년간 총 납입 보험료가 314만9273원으로 점수제(346만5385원)에 비해 31만6112원을 적게 내게 된다.

할증이 많이 붙는 1~7등급 보험가입자는 50만원 이하 소액사고는 자비처리를 하는 것이 보험료 할증을 받는 것보다 더 유리할 수 있다. 이들의 소액사고는 전체 보험처리건의 0.7%(2만7804건)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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