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이죠"

머니투데이 이언주 기자 | 2013.12.18 06:05

[아주 특별한 문화人] 3. 정승호 무대디자이너

편집자주 | 문화계의 저변이 확대되고 새로운 문화콘텐츠가 등장하면서 직업군도 다양해졌다. 공연·미술·음악·출판 등 각 분야의 이색업종에 몸 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이들이 느끼는 '특별한' 일의 매력에 대해 들어본다.

정승호 무대디자이너의 한 가지 꿈은 자신의 무대가 해외에 라이선스로 팔려 로열티를 받는 것. 그는
"좋은 무대란 관객들에게 설렘을 주고, 스스로 상상할 여지를 주는 무대가 아닐까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전혀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곳, 무대. 이곳에서는 무한한 상상이 가능하고 배우와 객석 사이에 일종의 약속도 있다. 이 특별한 공간을 만드는 '무대디자이너' 가운데 최근 연극·뮤지컬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 중인 정승호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교수에게 무대제작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제가 생각한 것을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이 숨 쉴 수 있는 여지를 두는 무대가 좋은 무대라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에게 무대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것.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새 작품을 만들어 가기에 관객들에게도 그런 기대감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상상력을 자극하는 '무대'라는 공간은 배우들에게 영감을 주고, 연기의 몰입을 돕는다. 공연을 종합예술로 완성시키는 장치로써의 역할을 할 뿐 만아니라 무대 자체만으로도 특별한 예술적 가치를 지니기도 한다. 입체적이고 감각적인 무대는 그 잔상이 오래 남기도 하는데 그럴 때 우리는 무대디자이너의 이름을 찾아보곤 한다.

뮤지컬 '레베카'를 비롯해 '황태자 루돌프' '번지점프를 하다' '캐치미 이프 유캔' '남한산성' '내 마음의 풍금' 등 수많은 히트작품에는 그의 아이디어와 손길이 묻어있다. 현재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햄릿'과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베르테르'의 무대도 정 교수의 손을 거쳤다. 둘은 전혀 다른 느낌의 다른 무대이지만 "무대 정말 좋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뮤지컬 '베르테르'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사람 키만한 해바라기들이 무대 가득 서 있다가 한꺼번에 쓰러진다. 그 순간 관객들의 마음도 후드득 내려앉으며 '쿵'하는 감동이 밀려든다. 어떤 작업 끝에 이런 무대와 연출이 가능했을까. 정교수는 평소 어떤 상상을 하고 어디서 영감을 얻는지 궁금하다.


"대본 분석이 가장 우선입니다. 시대와 장소, 인물에 대한 것들이 기본적으로 대본 속에 있으니까요. 그 다음에는 자료를 모으죠. 예를 들어 '모차르트'를 할 때는 그 시대에 관한 시각 자료를 모으기도 하고, 모차르트의 일대기를 읽고 관련 다큐멘터리도 봅니다.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자료를 계속 모아서 분석을 하는 거죠. 그런 와중에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연출가와 토론을 하다보면 영감이 떠오르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번 베르테르의 해바라기는 연출가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샤롯데에 대한 베르테르의 사랑을 해바라기에 비유한 것. 정 교수는 "어느 날 새벽 연출에게 카톡이 왔어요. 마지막 장면에 해바라기가 심어졌으면 좋겠다고요.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서 '아 그럼 해바라기들이 저절로 쓰러지게 하자'는 생각이 제게 떠올랐고, 연출과 상의 끝에 그 장면이 나오게 된 거죠."

연출가와 무대디자이너가 이처럼 소위 '궁합'이 잘 맞으면 얼마나 좋겠냐만, 서로의 의견이 충돌할 때도 분명히 있고, 추구하는 바가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최종 작품이 나왔을 때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며 "결국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게 목표라면 서로로 영역을 구분 짓기 보단 존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대본분석이 끝나면 장면별로 자신만의 스케치를 하고, 그것을 공간에서 어떻게 구현할지 상상하며 모형을 만든다. 모형을 가지고 연출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확실히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생각을 발전시키기 쉽다는 것이다.

무대디자이너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뭔지 묻자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인내죠"라며 웃는다. 그리고는 '대화를 잘 할 수 있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모든 예술가들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났다는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공연계에서는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줄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죠. 네, 저는 그걸 '용기'라고 표현합니다. 공연은 결코 혼자서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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