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 원점 재검토, 박대통령의 '원점'은 어디?

머니투데이 김준형 경제부장 | 2013.08.12 14:16

[광화문]조세정의보다 '효율성' 중시…총체적 로드맵 함께 제시해야

이집트문명의 수수께기를 풀어준 로제타스톤은 프톨레마이우스 5세의 세금 감면을 칭송하는 내용을 적은 것이다. 인류 최초의 문자인 수메르 설형문자가 적힌 점토판에서도 백성을 가혹한 세정에서 구한 왕의 이야기가 나온다.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 로마군을 물리친 '비밀병기'는 자식 대에까지 세금을 면제해주겠다는 약속이었다.
대지주들에 대한 잦은 세금 탕감과 상속세 폐지는 로마의 몰락을 부추겼다.
프랑스 대혁명, 미국 독립전쟁 등 수많은 세계사적 사건의 뒤편에는 대부분 세금을 둘러싼 갈등이 존재했다.
세금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가 하면 지렁이도 꿈틀거리게 만들기도 했던 것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이후 처음 나온 이번 세법개정안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춤추는 고래'보다는 '꿈틀거린 지렁이'쪽이었다. '월급쟁이 증세' '중산층 증세'라는 역풍을 맞은 새 정부의 세법개정안은 급기야 12일 박근혜 대통령의 '원점 재검토' 지시로 새 국면을 맞게 됐다.

인류 역사 수천년간 세금을 둘러싼 갈등은 한마디로 '내가 낼 돈을 어떻게 하면 남에게 물리게 할 것인가'의 문제였다.('역사속 세금이야기'-문점식 저)
누군가는 돈을 내야 하는데 자기 주머니에서는 내기 싫어하는 만큼 갈등이 없을 수 없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어제 "우리가 하고 있는게 뭐 잘못됐나요? 잘못된 세제 방향을 정상화시키고 과거 어떤 정부보다 확실하게 지하경제를 양성화 하려고 하는데...한편에서 대기업들은 기업 활동 힘들게 한다고 불만이고..."라고 토로했다.

사실 정부로서는 억울할 것이다.
이번 세제 개편안의 핵심은 부자에게 유리한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는 내용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해온 '정상화' 시리즈 중, '세금 정상화'를 위해선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다. 종교인 과세처럼 이전 정부에서 해결 못한 숙제도 도입 일정을 확정했다.

야당은 '세금폭탄'이라고 말하지만 연봉 3450만원 근로자가 1인당 더 내야 할 세금이 16만원도 안된다는 것도 '팩트'이다. 세액공제 전환만을 놓고 보면 상대적으로 서민증세보다는 부자증세에 가깝다.

하지만 사람은 폭탄뿐 아니라 조그만 총탄에도 죽는다. '세금폭탄'이 아니라 '세금총탄'만으로도 납세자들의 가슴에 상처를 남기고 신뢰의 붕괴를 낳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한 푼이라도 월급을 더 내놓게 되는 입장에서는 '증세 없는 복지'라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 된다. "세율을 높이는 의미의 증세는 아니다"는 나성린 새누리당 정책위 부의장의 말은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안했다.'식의 안 하니만 못한 말이었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밝힌 조세의 4가지 원칙 중 첫째는 "세금은 국민의 지불능력에 따라 부과돼야 한다"였다. 돈을 더 많이 버는, 다시 말해 지불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더 걷는 게 조세정의이다. 살림살이가 빠듯한 사람들에게 "쟤는 너보다 더 많이 내니까 너도 조금만 더 내"라고 말해봤자 위안이 되지 않는다.


조세부담도 부담이지만 정부의 첫 세제개편안이 월급쟁이들의 소득세를 맨 먼저 타깃으로 했다는 점도 고질적인 '과세편의주의'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다.
소득세와 더불어 4대 세목을 구성하고 있는 법인세 소비세 재산세 분야는 대부분 '중장기 과제'에 포함돼 구체적인 법안을 내놓지 못했다. 따지고 보면 이들 세목은 소득세제 개편보다 훨씬 영향도 크고 정치 경제적으로도 민감한 문제다.

3단계로 나뉘어진 법인세를 정상화(단일화)하겠다는 중장기 과제는, 다시 말하자면 현재 최고 세율(22%)인 대기업(과세표준 200억원 이상)들의 세금을 낮추든지, 10%인 중소기업(과표 2억원 이하)의 세금을 높이든지, 아니면 둘다 높이거나 낮춰야 하는 문제이다. 어느 하나 쉬운게 없다. 소비세의 핵심인 부가세를 올리는 건 정권의 운명을 각오하고 해야 할 문제이다.

현오석 부총리는 "(법인세 문제는)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소득공제 개편은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됐길래 이같은 반발이 이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정치적으로 어려운 숙제는 정권초기 힘이 넘칠때 밀어부쳐야 그나마 될까 말까 하다는걸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중장기 과제'로 넘어간 법인세 등 세제개편은 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이 들릴 수밖에 없다. "만만한 월급쟁이 유리지갑만 털어간다"는 불만은 이 대목에서 나올수밖에 없다.

세법개정안이 불러올 논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현 부총리는 개정안 발표문에서 "혜택이 일부 줄어들게 되는 분들은 세법 개정안을 지지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좀 더 넓은 안목으로 이해해주시고 협조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재검토 되는 세법개정안은 국민들이 '더 넓은 안목'을 가질 수 있도록 소득세 뿐 아니라 세목 전반에 걸친 '로드맵'이 함께 제시돼야 한다. 호소는 그 다음 문제였다.

정부는 늘 세금을 '걷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오류에 빠져들기 쉽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세법은 '과세도구'가 아니라 국민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마지막 장치"라는 걸 잊는 순간 민심은 폭발하게 된다.

이번 개정안의 밑그림을 그린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지난달 공청회에서 조세정의보다는 "징세 효율성 제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했을 때부터 '월급쟁이 증세'의 불씨는 예고돼 있었다.
원점에서 재검토하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에서 '원점'은 바로 그곳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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