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체인지업] 한국프로야구는 '핑크빛' 미래를 포기하는가

머니투데이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 2013.08.10 10:02
↑지난 5월13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리는 '2013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와 마이애미 말린스의 경기를 앞두고 미국 어머니의 날을 맞이해 경기에 사용할 분홍색 공과 배트가 그라운드에 놓여있다. ⓒ 사진제공=OSEN
지난 5월12일(현지 시각) 미(美) 서부 LA 다저스타디움에서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올시즌 LA 다저스의 선발 투수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류현진(26)도 그날의 기쁨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이날은 5월 둘째주 일요일로 미국의 어머니의 날(Mother’s Day)이었다. 전날인 11일 마이애미 말린스전에서 시즌 4승째를 올렸던 그는 경기 후 “사실은 오늘이 어머니 생신이다. 기쁜 날 승리를 선물하게 돼 가슴 뿌듯하다.”고 밝혔다.

그리고 다음 날 미국에서 처음으로 ‘어머니의 날’을 맞이했다. 류현진은 어머니 손을 잡고 야구장을 찾아 시구 행사에서 어머니가 던진 공을 직접 받았다.

그의 왼쪽에 맷 켐프, 오른 쪽에 잭 그레인키가 앉았으며 모두 7명의 LA 다저스 선수들이 어머니의 전력투구를 받는 가슴 뭉클한 장면이 연출됐다. 류현진도 자신의 현재를 있게 한 ‘어머니의 헌신’을 다시 한번 가슴에 되새긴 순간이었다.

‘어머니의 날’을 색(色)’으로 표현하면 어떤 색깔일까. 이날 LA 다저스 선수들은 핑크(pink)색으로 제작된 배트, 스파이크, 손목 보호대 등을 하고 경기에 나섰다. 미 전역의 메이저리그 구장에서 많은 선수들이 핑크색 글러브를 끼고 출장했다. 핑크 배트는 어머니의 날 추신수도 사용한 적이 있다.

지난 2월28일(이하 한국 시각) 대만 타이중 인터콘티넨탈 구장에서 201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 대표팀과 대만 실업팀의 연습 경기가 열렸다. 이날 삼성의 좌완 차우찬이 핑크 색 글러브를 끼고 등판해 화제가 됐다. 물론 대만 팀에서 어떤 타자들도 그의 글러브 색을 문제 삼지 않았다.

핑크색은 환하고 밝다. 화사하다. 여성적인 색이다. 그래서 전세계에서 펼쳐지고 있는 ‘유방암 예방 캠페인(breast cancer awareness campaign)’에도 ‘핑크 리본’이 상징적으로 사용된다. 커피 체인들까지 앞 다투어 핑크 리본이 그려진 텀블러를 상품화 해 판매 금액의 일부를 유방암 예방 캠페인에 기부하고 있다.


현재 야구를 하는 어느 국가에도 핑크 색을 특별히 금지하는 리그는 없다. 일본, 대만, 메이저리그는 물론이다. 오히려 야구 팬들은 스타 선수들이 사용하는 핑크 색 글러브에 매료돼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문의할 정도로 관심이 커져 가고 있다. 여성 팬들에게 환상적인 글러브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한국프로야구에서 시대조류(時代潮流)를 역행하는 조치가 취해졌다. 한국프로야구가 600만, 700만 관중을 돌파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여성 팬들의 급증에 있음은 누구나 인정한다. 핑크는 여성 팬들 고유의 색이다.

8월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삼성-LG전에서 삼성 투수 윤성환이 핑크색 글러브를 끼고 투구를 하는데 LG 타자들이 어필을 했다. 이유는 ‘야구 공의 색과 혼동돼 타격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었다.


당시 주심은 어필을 받아 들이지 않고 진행한 뒤 경기 후 한국야구위원회(KBO) 심판위원회에 최종 판단을 맡겼다. 심판위원회는 논의 끝에 ‘앞으로 핑크 글러브 사용을 금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심판위원회는 ‘밝은 핑크색이 타격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LG 타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야구 규칙에 투수 글러브의 색에 관해서는 ‘회색 또는 흰색을 사용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핑크색은 안 된다는 조항이 없다. ‘밝은’ 핑크 색이라고 해서 문제가 되기는 어렵다.

만약 향후에도 어떤 선수가 핑크 빛 글러브를 끼고 나오고 이를 심판이 제지했을 때 ‘안 된다는 근거가 담긴 규정을 보여주세요’라고 요청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심판위원회의 유권 해석이라고 강제할 수 있을까? 물론 애매한 부분에 대해서는 심판이 재량권을 가진다.

그러나 한국프로야구에서 핑크색은 여성 야구팬들에게 민감한 부분이고 전체 야구 발전 차원에서 신중하게 결정돼야 할 사안이다. 이 중대한 문제를 심판위원회의 유권 해석으로 최종 판정하고 실행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미 핑크색 글러브는 야구의 머천다이징으로 인기 상품화 돼 있다.

핑크색 글러브가 왜 타격에 방해가 되는지 궁금하다. 핑크색 글러브에 대해 어필을 한 것은 LG 타자들이 사실상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다. LG가 아닌 다른 8개 구단 타자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이 전에도 그런 논란이 치열하게 있었는지 궁금하다.

심판위원회는 LG의 어필에 즉시 반응해 ‘금지’로 결정했다. 유권해석(有權解析)이라는데 심판위원회에 규칙을 확대 해석할 권리가 있다고 해도 과연 무엇을 해석했는지 알 수 없다. 핑크색을 규칙에 금지된 흰색 또는 회색에 가까운 것으로 직권해석(職權解釋)했다는 것인가.

조지 소로스와 함께 퀀텀펀드를 설립한 월가의 전설적인 투자자, 짐 로저스가 추천한 주식 투자 지침서 ‘역발상 투자(CONTRARIAN INVESTING)’에 이런 글이 있다. ‘핑크빛 미래를 버리고 잿빛 현재를 사라.’

한국프로야구가 핑크색을 포기하는 것은 여성 팬들과 핑크 빛 미래를 버리고 잿빛 현재를 사는 것과 같다. 한국프로야구는 주식 시장이 아니다. 전체 차원에서 다시 논의해주기를 간곡히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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