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체인지업]성관계 표준계약서와 스포츠 스타

머니투데이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 2013.07.13 11:57
한국 사회에 2013년 7월은 아주 흥미로운 계약서가 등장한 시기로 기록될 것 같다. 온라인 상에 느닷없이 ‘성 관계 표준 계약서’라는 것이 올라 와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일부 언론에서 이를 기사화 해 알려졌는데 도대체 내용이 무엇인가 읽어보았던 분들은 황당해 하며 낯도 붉혔을 것이다.

과연 이런 ‘성관계 표준 계약서’를 쓰는 사람들이 있을까? 계약서를 쓰면 향후 분쟁이 발생할 때 법정에서 유효한 증거 자료가 될 것인가.

9년 전이었다. 2004년 새해 벽두에 미국 시장에 기발한 ‘신(新)제품’이 출시돼 판매됐다. 성 문제는 인류 역사의 시작부터 있었다고 하니 과연 그것이 정말 신제품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런데 하나도 아닌 두 회사가 ‘Forms of Endearment’라는 양식을 만들어 판매를 시작했다.

셜리 매클레인, 잭 니컬슨, 데브라 윙거 등이 주연한 영화 ‘Terms of Endearment’를 우리 말로 ‘애정의 조건’으로 번역했음을 고려하면 ‘Forms of Endearment’는 ‘애정의 양식 혹은 서식’이 된다.

내용을 더 들여다보면 이것은 사실상 ‘섹스 동의서’였다. 2013년 우리 사회에 등장한 ‘성 관계 표준 계약서’가 ‘당사자들인 남녀가 합의 하에 성 관계를 가졌고 어떤 경우에도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동의서인데 2004년에 출시된 미국 판 ‘섹스 동의서’ 역시 사실상 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차이점은 탄생 배경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금년 들어 친고죄 폐지 등을 비롯해 성폭력에 관한 처벌 규정이 강화되면서 묘한 ‘성관계 표준 계약서’가 온라인에 등장했다.

반면 미국에 신제품으로 출시된 ‘섹스 동의서’는 오프라인에서 그 서식을 구매하는 것으로 성폭력 관련 처벌 때문만이 아니라 부와 명예를 갖춘 스포츠 스타들을 상대로 한 소송 등에 대비하기 위한 방식으로 개발(?) 된 것이다.

광고 카피 문구도 확실하다. 서식 판매에 나선 회사는 ‘스포츠 스타와 섹스를 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일단 여기에 서명을 하십시오.(Want to have sex with an athlete? Just sign here.)’라고 광고를 했다.

미국 시장에서 섹스 동의서가 상품으로까지 출시된 배경에는 2003년 7월3일 미 프로농구(NBA) LA 레이커스의 최고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에게 성폭행 혐의로 구속 영장이 발부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콜로라도주 이글 카운티 법정에 자진 출두한 코비 브라이언트는 2만5,000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

그를 고소한 19세 백인 금발 미녀는 성행위 도중 자신은 중단을 요구했는데 코비 브라이언트가 강제로 계속 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코비 브라이언트는 합의 하에 관계를 가졌다고 밝혔다.

고소인은 강간(rape)을 당했다며 병원 진단서까지 제출해 코비 브라이언트 측은 동의 하에 관계를 가졌다는 것을 법정에서 증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던 것이다. 물론 증명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실 당시 그 사건을 보는 지배적인 견해는 고소인이 코비 브라이언트가 형사 처벌을 받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유부남인 그로부터 거액의 합의금을 받아내려고 벌인 일이라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기발한 사업 발상을 해낸 사람들이 있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하던 성 치료 전문가 아바 캐덜과 사건이 벌어진 콜로라도 소재 프로텍트 콘돔 회사의 사주인 넬슨 베인스였다.

그들은 당사자들이 동의 또는 합의 하에 성 관계를 가진다는 내용을 담은 ‘섹스 전에 쓰는 동의서(pre-sex agreement forms)’ 표준 양식을 만들어냈다. 물론 전문 변호사에 의뢰를 해 법정 사용이 가능하도록 치밀하게 작성했다.

섹스 동의서는 여자가 작성하는 것이었다. 그 내용에는 자신의 나이가 18세 이상이고 마약을 하지 않았고, 성 관계를 하는 것에 동의하며 향 후 법률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이 들어 있다.

신제품의 마케팅 대상은 남자 스포츠 스타들이었다. 넬슨 베인스는 콘돔 2개에 섹스 동의서를 포함시켜 7달러 99센트(약 1만원)에 팔았다.

당시 미국 사회에서 스포츠계를 중심으로 섹스 동의서에 대한 논란은 컸다. 흥미로웠던 것은 스포츠 스타들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많은 선수들이 섹스 동의서를 사용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소송을 당하는 것에 대한 준비를 해놓고 싶다는 뜻이 강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섹스 동의서를 받아도 법정에서 효력을 발휘할 지는 미지수였다. 프로 복서 마이크 타이슨을 강간 혐의로 기소했던 검사는 ‘우월적 지위에 있는 남자의 일방적인 강요를 받고 여자가 불리한 상황에서 작성한 동의서이기에 법적으로 증거 능력이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물론 섹스 동의서를 출시한 회사 측에서는 ‘코비 브라이언트가 그러한 동의서를 받아 놓았다면 기소 자체를 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상품성을 강조했다.

2004년 당시 코비 브라이언트 사건은 그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소한 여성에게 사과하고 고소인이 소송을 취하하면서 종결됐다. 그러나 다들 상당한 합의금을 지불했을 것이라고 보았다.

2004년 미국의 섹스 동의서는 엄청난 부(富)를 가진 스포츠 스타들을 대상으로 한 미국식 자본주의의 산물로 간주됐다. 그런데 2013년 우리 한국 사회에 등장한 ‘성 관계 표준 계약서’는 도무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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