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드디어 오랫동안 기다린 그 날의 아침이 밝았다. 이 날을 위해 장장 7개월을 기다렸다. 바로 베로나의 원형경기장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를 보는 날이 온 것이다.
‘아이다’는 에티오피아 공주 아이다와 이집트 장군 라다메스의 아름답고도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이곳에서만 2000여회 공연된 베로나 페스티벌의 대표작이다.
국내에서도 올해 베르디 탄생 200주년,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 100주년을 맞아 이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 팀이 직접 내한하는 100억짜리 초대형 야외오페라 '아이다'가 오는 10월 잠실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열린다고 한다.
정말 보고 싶었던 공연이기도 해서 3번째로 비싼 98유로의 티켓을 구입했다. 좌석번호가 지정된 의자가 있는 자리였다. 그래서 자리를 잡기위해 너무 일찍 가지 않고 시작 30분 전에 도착했다.
티켓에 나온 자리를 찾아 앉았다. 멋있게 정장을 잘 차려입은 사람들은 유럽의 많은 극장에서 보았지만 이곳 베로나 오페라 축제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야외임에도 불구하고 정장 입은 남성은 물론 아름다운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여성들도 의외로 많이 보였다. 역시! 진정 멋있게 오페라를 즐길 줄 아는구나! 유럽의 오페라 문화를 보여주는 듯했다. 이들은 막과 막 사이 쉬는 시간엔 샴페인을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 날도 역시 진행 스태프들이 관객들에게 초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지난번 글에서 이야기한데로 아레나 야외극장에서는 공연 시작 전 관객들이 모두 촛불을 켜고 지휘자와 공연자에게 경의를 표하는 멋진 전통이 있다.
☞ '밤9시 별빛아래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시작되고' 참조
나도 전날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보면서 이미 경험해본 일이지만 그래도 아레나 안의 1만5000명의 관중들이 일제히 촛불을 들고 지휘자와 공연자에게 경의를 표하는 촛불의식은 정말 장관이었다.
본래 이 원형경기장은 3만명 정도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지만 원형경기장 보존을 위해 한번에 1만5000명 정도의 입장만 허용하고 있다.
고풍스러운 대리석으로 지어진 이 야외극장에서 페스티벌이 열리면 매년 여름 세계 각지에서 100만 명이상의 관객이 몰려든다. 이곳은 전설적인 디바 마리아 칼라스의 데뷔무대였으며, ‘3대 테너’인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등이 거쳐 간 곳이기도 하다.
드디어 밤이 깊어가고 주위는 칠흑같이 어두워지면서 반대로 무대는 더욱 빛을 발하며 밝아지고 오페라가 시작 되었다. 두근두근... 설레임에 가슴이 쿵쾅 거린다.
공연이 시작되고 두가지에 놀랐다. 200여명이 넘게 한 무대에 등장해도 전혀 좁다고 느껴지지 않는 장대하고 광활한 무대와 그 무대를 십분 활용한 세트, 그리고 야외임을 전혀 의식할 수 없는 빼어난 음향이다.
1세기에 세워진 유럽에서 세번째로 큰 원형경기장인 이곳은 놀라운 로마 건축술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야외이지만 마이크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여느 현대의 실내공연장 못지않게 오케스트라와 성악가들의 소리가 제일 뒤 객석까지 생생하게 들린다.
이 큰 아레나를 꽉차게 멋진 무대로 만든 예술 감독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아이다>는 중앙무대만 아니라 원형극장을 형성하고 있는 돌계단까지 다 세트로 사용했다.
2막 중간,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아이다> 볼거리의 최고봉인 '대행진'은 감동과 감탄 그 자체였다. 무대 위까지 배치한 금관악기들을 더해서 오케스트라의 소리는 더욱 풍부해졌고 어린 무희들과 어른 무희까지 200명이 넘는 아티스트가 한 무대에 올라 많은 종류의 춤을 보여주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아레나에서는 모든 오페라의 대본인 리브레토(Libretto)를 구입할 수 있다.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이렇게 4개국어로 되어있는데 옆에 앉은 관객 중 중고생정도로 보이는 10대 청소년이 계속 그 대본을 보며 오페라를 감상했다.
물론 중간 중간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줄거리를 찾아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21세기에 1세기에 지은 공간에서 19세기 작곡가의 작품을 21세기 기계를 동원해서 보는, 시공간을 초월한 예술적 체험의 순간이라고나 할까.
저녁 9시에 시작한 오페라는 4시간의 공연 시간을 꽉 채워서 새벽 1시쯤 끝났다. 막마다 20분정도의 인터미션이 있지만 매우 긴 공연이었다. 하지만 그 4시간이 어찌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갔다. 가슴 떨리는 감동을 안겨준 채...
공연이 끝나면 서둘러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가던 일반적인 풍경과 달리 모든 사람들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아레나가 위치한 브레 광장에 있는 많은 레스토랑이 새벽1시가 넘어서도 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오페라를 본 사람들 중 삼삼오오 레스토랑으로 발길을 돌려 샴페인, 와인과 함께 수다 삼매경에 빠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도 <아이다>가 준 엄청난 감동의 여운에 의해 무리들과 함께 ‘어슬렁 어슬렁’ 행복한 마음으로 숙소로 향했다.
급하지 않게, 무섭지 않게, 머릿속엔 온통 아이다의 무대였던 이집트와 주인공 아이다의 감정만이 회오리치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한 사람은 4일 동안 모든 오페라를 다 보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매년 이렇게 오페라를 보러 온다고 했다. 아주 싼 티켓만 구입해서 오페라를 보는데 티켓 값이나 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음악과 무대가 주는 감동을 매번 느끼는 것만이 진정 행복한 일이라고 수줍게 말했다.
정말 지상 최고의 무대 중 하나라고 극찬을 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나 역시 기회만 된다면 매년 이곳에서 여러 오페라를 보고 싶다. 특히 올해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거장 주세페 베르디 탄생 200주년이고 1913년 시작된 이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100주년이기도 한 뜻깊은 해이다.
올해 전 세계에서 펼쳐지는 기념 공연 중 가장 주목받는 무대가 바로 베로나의 오페라의 ‘아이다’이다. 올해는 어떤 무대를 보여줄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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