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받은 나이키, 운동화에 게임기 단 이유

머니투데이 실리콘밸리=유병률 특파원 | 2013.01.07 06:01

[유병률의 체인지더월드] <29> 나이키의 진화가 한국기업들에게 시사하는 것

나이키가 지난해 출시한 '나이키 플러스 퓨얼밴드'. 나이키는 더이상 운동화 회사도, 토탈 스포츠용품 회사도 아니다. 디바이스 회사, 데이터 회사, 미디어 회사, 테크놀로지 플랫폼 회사로 진화하고 있다.
나이키의 경쟁상대는 과연 누구일까? 아디다스? 퓨마? 리복? 다 틀렸다. '애플'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한다면 이미 시대에 한참 뒤쳐진 사람이다.

실로 나이키만큼 경쟁상대가 진화한 기업도 드문듯하다. 그만큼 스스로 진화해왔다는 얘기일 터. 수년 전 나이키의 경쟁상대가 닌텐도이던 시절부터 한번 짚어보자.

닌텐도가 워낙 대세이던 때, 사람들을 소파와 침대로 몰아넣고 거실에서 운동을 시키니 나이키를 신을 일이 확 줄어들었다. 그래서 나이키도 열 받았는지 운동화에 게임기를 달아버렸다. 운동화 밑창에 센서를 달아 얼마나, 어떤 기록으로 움직이고 달렸는지, 친구들과 온라인게임을 하듯 경쟁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웹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를 통해서 말이다. 운동은 게임이 되었고, 운동화는 게임기가 되었다. '나이키 플러스'라는 나이키의 디지털시스템 이야기이다.

지난해에는 손목에 차는 '나이키 플러스 퓨얼(fuel)밴드'도 내놓았다. 걷거나 뛰는 모든 움직임이 칼로리 소모량, 운동거리, 운동시간 등으로 측정돼 밴드의 LED 화면에 표시된다. 아이폰과 동기화하면 운동량이 그래프로 나타나고, 매일매일 아니면 한 달 단위로 계획을 세워 목표치를 경신할 수도 있다. 잘했으면 축하도 해주고,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다른 이용자와 경쟁할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이제 나이키는 더 이상 운동화 회사가 아니다. 이용자들의 데이터를 이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데이터 회사이고, 센서와 전자밴드를 만들어 판매 하니까 디바이스 회사이다. 사람들간의 소통에서 또 다른 가치를 만드니까 미디어 회사이기도 하다. 물론 닌텐도에 맞장 뜨던 게임회사이기도 하고. 나이키의 CEO 마크 퍼커도 "나이키는 물리적인 것들과 디지털 세상이 합쳐지는 흥미로운 가능성들을 한 단계 발전시키려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더 이상 나이키의 경쟁상대는 닌텐도도 아니고, 아디다스는 더욱 아니다. 오히려 본격적으로 애플과 대결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다. 테크놀로지 플랫폼 회사로서 말이다.


나이키는 올 3월부터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엑셀러레이터(accelerator)를 출범시킨다. 아이디어가 있는 창업가들을 선발해 벤처회사를 만들 수 있도록 2만 달러 자금과 사무실을 제공한다. 실리콘밸리 출신 전문가들이 멘토링을 해주고, 나이키의 API(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돈과 노하우, 소스, 시장까지 다 제공할 테니 나이키의 디지털 플랫폼 '나이키 플러스'를 가득 가득 채울 혁신적인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보라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굵직한 테크놀로지 회사들의 전유물이었던 엑셀러레이터를 이제 운동화 회사가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실리콘밸리 언론들은 "나이키가 건강과 운동을 소재로 iOS를 구축하고자 한다"며 "지극히 현명한 움직임"이라고 박수를 보내고 있다. 나이키 플랫폼을 통해 더 진화된 디바이스가 나오고, 더 풍부한 소프트웨어들이 만들어지고, 더 많은 사람들간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말이다. 이는 애플과 구글, 페이스북과 아마존이 하려는 바로 그것이다.

한국에서도 기업이 다양한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것을 우리는 익히 보아왔다. 하지만 우리 기억에 주로 남는 것은 '문.어.발.' 얼마 전부터는 골목상권까지 침해한다고 비판을 받고 있다. 몇 년 만에 영세한 '구멍가게'식 자영업이 싸악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바로 지금, 나이키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것이다. 옆으로 옆으로 가다가 그 다음에 구석으로 구석으로 뻗어가서 아이들 코 묻은 돈까지 빨아들이는 문어발이 아니라, 스스로 플랫폼이 되어 위로, 더 높이, 모두 함께 더불어, 혁신적으로 커가는 나이키의 모습이 놀랍고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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