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도 귀중한 자산이다

머니투데이 박정태 경제칼럼니스트 | 2012.12.21 11:08

투자의 의미를 찾아서 <22>

늘 '조심해야지' 하면서도 실수를 저지른다. 터무니없는 실수를 몇 번씩 반복하기도 한다. 하긴 실수라는 집안은 워낙 대가족이라 설마 이런 데서도 하고 방심하면 언제든 하나쯤 부딪치기 마련이다.

주식시장에서 만나는 실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겠지만 똑똑한 투자자들이 자주 범하는 것은 아마도 시장을 앞지르려는 실수일 것이다. 시장의 방향은 정확히 판단했으나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제풀에 넘어지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월가의 공동묘지에는 옳은 판단을 했으나 그것이 너무 빨라 명을 재촉한 사람들로 넘쳐난다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머리 좋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세계적인 투자자 짐 로저스도 그랬다. '월가의 인디애나 존스'로 불리는 그 역시 젊은 시절, 그러니까 조지 소로스와 함께 퀀텀펀드를 만들어 활동하던 초창기에 뼈저린 경험을 했다.

1970년 초 로저스는 주가 하락을 내다보고 풋옵션을 매수했는데 시장은 그의 예상대로 떨어졌고 그해 5월 마침내 바닥을 치자 그는 풋옵션을 처분해 300%의 수익률을 거뒀다. 그는 스스로 천재라고 칭하며 "제2의 버나드 바루크는 바로 나!"라고 외쳤다. 그러고는 시장이 반등하기를 기다렸다. 이번에는 풋옵션 매수가 아니라 공매도를 할 참이었다.

6월 들어 랠리가 찾아왔다. 월가에서 흔히 말하는 "죽은 고양이도 한번쯤 반등하는"(dead cat bounce) 시기였다. 어느 정도 올라왔다고 생각되자 그는 신용까지 동원해 공매도에 나섰다. 그러나 두달 만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48달러에 공매도한 메모렉스 주가가 72달러까지 치솟은 것이다. 그에게는 더이상 견딜 힘이 없었다. 심리적으로도 그랬고 무엇보다 자금여력이 부족했다.

공매도를 청산한 뒤 메모렉스는 96달러까지 올랐다가 곧 곤두박질쳐 2달러까지 폭락했다. 로저스는 정확히 맞춘 셈이었다. 그의 공매도는 환상적일 정도로 정확했다. 그러나 그는 빈털터리가 됐다.

시장은 그가 정확히 맞췄는지는 따지지 않는다. 주가는 늘 생각하는 것보다 더 높이 올라가기도 하고, 그럴 것이라고 내다본 것보다 더 밑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시장에서는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


로저스는 그 뒤로 자신이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지,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 분명히 파악하지 않고서는 절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또 적정한 가격이 될 때까지는 참고 기다리는 게 상책이라는 점을 배웠다. 그렇게 하면 만에 하나 틀렸을 때라 하더라도 큰 상처를 입지 않는다.

그런데 로저스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자 투자자로서 뿐만 아니라 정치인으로도 성공한 바루크 역시 한창 때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그는 1905년 상품시장에서 커피선물을 대거 매수했는데 앞서 1901년에 브라질 상파울루 주정부가 커피 경작을 제한해 이듬해(커피나무는 파종 후 열매를 맺는데 5년이 걸린다) 수확량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커피농사는 대풍작을 기록했고 가격은 떨어졌다.

사실 바루크는 커피선물을 잘 몰랐고 허만 실켄이라는 전문가의 예상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처지였다. 그런데도 그는 보유주식까지 팔아 커피선물을 추가 매수했고 결국 손실이 100만달러에 달하자 전부 처분해야 했다. 그는 훗날 자서전에서 돈을 날린 것보다 더 쓰라렸던 것은 그동안 누구보다 정확하고 빈틈없다고 생각해온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이었다고 털어놨다.

투자자들은 자신이 바라는 결과가 일어나기를 너무나도 기대할 때 그런 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간과해버리곤 한다.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이 많은 사람일수록 수요와 공급의 법칙보다 자신이 더 똑똑하다는 확신에 사로잡힌다. 바보들은 겁이 나서 살금살금 걸어서 들어가는 곳을 전문가라는 사람은 자신 있게 성큼성큼 들어가는 것이다.

한 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해야 할 때다. 돌아보면 틀림없이 숱한 실수를 저질렀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여기서 교훈을 얻는 것이다.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알아야 다시는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저지른 실수만큼 귀중한 자산도 없다. 과거는 우리에게 남는 확실한 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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