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구글러 "한국 창업가에 지름길 안내하고 싶다"

머니투데이 실리콘밸리=유병률 특파원 | 2012.12.17 06:00

[유병률의 체인지더월드]<26> XG벤처스 데이비드 리 공동대표
구글과 파트너십 맺고 한국창업가들 육성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소통하고 공감하는 능력
아이디어 좋다 안좋다 주변에 휘둘리지 마라

데이비드 리는 한국말은 거의 못했지만 "한국 창업가들을 지름길로 안내하고 싶다"며 시종일관 진지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일찌감치 구글에 합류해 큰돈 벌고 나온 사람들이 만든 실리콘밸리의 엔젤펀드 XG벤처스의 데이비드 리(41) 공동대표.

그의 구글 입사순위는 200번 안이다. 실리콘밸리에서 구글 사번은 대한민국 학번만큼이나 강력한 경력인데, 얼마나 실리콘밸리 핵심인사를 많이 아는지, 얼마나 많이 벌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참고로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인 셰릴 샌드버그가 268번이다)
그는 2000년 구글에 입사해 아시아와 유럽 지사 설립을 주도했는데, 구글 코리아 첫 직원들을 직접 면접해 뽑았다.

2006년 구글을 나온 뒤에는 XG벤처스(XG는 ex-Googler의 이니셜)를 만들어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 초기에 투자했고, 이후 40여 개 회사에 더 투자했는데 이중 절반이 구글, 페이스북 등에 매각됐다. 그래서 미국의 비즈니스소셜네트워크인 록더포스트는 지난 4월 전설적 엔젤투자 자 론 코웨이, Y콤비네이터 설립자 폴 그래엄, 페이팔 창업자 피터 씨엘 등과 함께 그를 ‘탑50 엔젤투자자’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아무리 그가 교포 2세라 해도, 굳이 바다 건너 한국 창업가들에게까지 관심을 기울일 이유는 별로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는 최근 구글과 함께 한국의 스타트업(초기기업) 육성에 발벗고 나섰다.

지난 9일 팔로알토에서 만난 그는 자신이 올초부터 한국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K스타트업을 구글이 공식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사실은 IT전문매체인 테크크런치에 최근 보도되기도 했다. 그는 “K스타트업은 Y콤비네이터와 유사한 3개월 인큐베이팅 과정”이라며 “구글 본사가 돈을 대고, 구글 코리아가 공간을 대며, 자신은 멘토링과 인맥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리콘밸리가 한국 스타트업을 주목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최근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탈(VC)들이 한국 스타트업을 주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세콰이어캐피탈(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VC이다)은 모바일 메신저 앱인 왓츠앱(WhatsApp)에 투자하고 있는데 카카오톡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고, 페이스북 이전에 싸이월드가 있었다는 사실 역시 꿰고 있더군요. 미국은 현재, 투자자들은 많은데 좋은 회사가 적어요. 고평가되고 있는 거죠. 반면 한국 벤처의 가치는 여전히 건강한 상태이고, 한국은 이제부터 훌륭한 기업들이 출현하는 르네상스가 열릴 겁니다. 이곳 VC들도 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벤처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한국 스타트업을 도와주고 싶은 진짜 이유는 자신이 한국인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소수민족의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열등의식을 느낄 때도 많았고, 이끌어주는 멘토가 없어서 그냥 저 혼자 길을 만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려는 것은 한국의 스타트업이 정말 괜찮은 사람들을 만나서 좋은 지도를 받고, 지름길로 갈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죠. 인생은 짧기 때문에 한국 창업가들이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됩니다. 그들에게 지름길을 보여주는 것, 그게 제 사명이라는 생각입니다.”


XG벤처스를 창업한 초기 구글러들. 그레그 리(왼쪽부터), 안드레아 주렉, 피에트로 도바, 그리고 데이비드 리.

“당신은 이 사람과 3시간 동안 기분 좋게 대화를 나눌 수 있나?”
그렇다면 그는 어떤 기준으로 한국 스타트업을 선발해 지름길로 인도하려는 걸까?
“XG벤처스를 시작했을 때만해도 저 스스로 많이 편향돼 있었어요. 기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투자를 거듭할수록 이것이 핵심이 아니구나 생각하게 됐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것이죠. 팀 동료들과 그리고 투자자들과 소통하면서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시장이 변하면 제품도 변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창업자가 동료들과 소통하며 변화에 빨리 적응해야 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구글에 합류하게 된 사연을 소개했다. “15년 전쯤 한 인터넷회사에 근무할 때 여자동료가 '누군가 AOL메신저를 통해 괴롭히니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구글로 메신저명을 검색해봤더니 그 동료가 가장 친하게 지내는 여자친구의 남자친구가 범인이더군요. 구글의 위력을 실감했죠. 그러던 차에 중국에서 잠시 근무하면서 래리 페이지를 만나 한동안 어울렸습니다. 정말 마음이 잘 통했어요. 그러더니 2달 후에 구글로 오라고 제안하더군요.”

그가 이 사연을 소개한 이유는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소통할 수 있는 능력’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구글은 사람을 뽑을 때 ‘공항 테스트’라고 이름 붙인 면접방식을 사용합니다. 면접을 하는 직원들에게 ‘3시간 동안 공항에서 함께 비행기를 기다려야 하는데, 이 사람과 기분 좋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겠는가’를 평가해보라는 것이죠. 함께 일할 사람끼리 궁합이 맞아야 하고, 그런 공감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게 실패가 될지 아닐지는 해보기 전엔 아무도 모른다”
그는 앞으로 “한국에서 될 스타트업은 한국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미국시장에서 고객을 찾을 수 있는 서비스라면 미국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고객이 어디에 있느냐, 트래픽이 어디에서 주되게 발생하느냐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고, 이를 예의주시하면 전략이 나옵니다. 굳이 모든 서비스가 처음부터 영어버전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중국에서 론칭할 수도 있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제품의 고객들이 어디에 많이 집결돼 있는지를 봐야 하는 겁니다.”

그는 또 “론칭도 하기 전에 서비스가 좋다 안 좋다는 주변의 말에 너무 휘둘리지 마라”는 조언도 했다. “창업가라면 좀 고집스럽고, 이상적인 데가 있어야 합니다. 많은 창업가들이 제품을 론칭하는 것 자체를 굉장히 힘들어해요. 이러 저리 재다가 결국 아무것도 못하는 경우가 많죠. 누군가 아이디어가 끔찍하다고 해도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베타서비스라도 해보기 전에는 그것이 실패인지 아닌지는 누구도 모르는 겁니다.”

데이비드 리는 인터뷰 자리를 나오면서 “내가 가진 능력으로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은 설령 아무런 보상이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가장 보람된 일”이라고 말했다. 이 정도면 그에게 한번 지름길을 물어봐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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