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체인지업]2003년 이승엽 좌절과 2012년 류현진

머니투데이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 2012.12.15 10:05

'3600만달러 대박' 류현진, 시련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 한국인 최초로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류현진(25)이 LA다저스 유니폼을 입고있다. 류현진은 다저스에서도 한국에서 달았던 등번호 99번을 그대로 달게됐다. ⓒ 사진= 류현진 트위터
한국야구의 에이스 류현진(25)에게 2012년 겨울은 그 어느 해보다 따뜻할 것이다. 마침내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로 떠나게 됐다. 계약금 500만 달러(약 54억원) 포함 6년간 3,600만달러(약 390억원)를 보장 받는 빅딜로 단숨에 부(富)와 명예(名譽)를 거머쥐며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었다.

그런데 일본프로야구에서 복귀한 첫해인 올 시즌 소속팀 삼성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고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한 한국의 ‘국민타자’ 이승엽(36)에게는 지난 2003년 겨울이 참으로 괴롭고 긴 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2003년 페넌트레이스 마지막 경기에서 그렇게 염원했던 한 시즌 아시아 최다 홈런 신기록(56개)을 세운 그는 시즌 후 FA 선수가 되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당시 이승엽은 에이전트의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 수 있고 많은 메이저리그 팀들이 계약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그대로 믿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는 팀을 선택하고 메이저리그로 진출해 자신의 큰 꿈을 실현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꿈은 현실과 부딪히면서 조금씩 빗나갔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에게 실력을 확인시켜줄 기회였던 2004 아테네 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전(일본)에서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홈런을 치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한국은 대만에 패해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한편으로는 여러 메이저리그 팀들이 이승엽과의 계약을 추진하고 있다는 언론의 보도와는 달리 선뜻 나서는 팀이 없었다.

다급해진 쪽은 이승엽의 에이전트였다. 에이전트 측은 승부수(sales pitch)라고 생각하고 이승엽을 미국에 방문하도록 주선했다. 그래서 미국 현지에서 이승엽을 대동하고 몇몇 구단과 협상에 나섰다.

언론에서는 애너하임(현 LA 에인절스), LA 다저스, 시애틀, 볼티모어 등 여러 구단이 경쟁하고 있다는 기사가 매일 나오다시피 했지만 실제로 이렇다 할 구체적인 계약 제의는 없었다.

후보 팀들 중에서 그래도 박찬호를 영입해 성공을 거두었고 또 한국 시장에 대해 파악하고 있으며 실제로 투자 효과를 맛보았던 LA 다저스가 정식 오퍼를 했다.

↑ 2003년 아시아 홈런왕 기록을 세우고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던 이승엽. 국민타자 이승엽은 메이저리그 직행대신 일본프로야구에 진출, 8시즌을 보내고 올해 국내로 복귀했다.ⓒ사진제공 = OSEN
그러나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작성한 국민타자 이승엽에게 제시한 연봉 100만달러(약 11억원) 정도는 실망만 안겨줬다. 그리고 한국 프로야구를 마이너리그 더블 A 수준으로 평가하며 홈런 신기록의 가치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다.

결국 이승엽은 일본 프로야구 지바 롯데 마린즈가 2년에 60억원 이상을 제안하자 메이저리그 행을 접었다.

9년의 시간이 흘러 이번 겨울 류현진의 LA 다저스 행을 보면서 만일 이승엽이 당시 일본 롯데와 계약하지 않고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었더라면 현재 어떤 위치에 있었을까 궁금해졌다. 과연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었을까.


여러 전문가들의 분석과 의견이 많았지만 필자는 이승엽이 메이저리그 꿈을 접고 일본 프로야구 행을 결정한 것을 잘했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이유는 일본 선수와의 몸값 비교였다.

당시 일본 프로야구 출신인 시애틀의 이치로와 뉴욕 양키스의 마쓰이는 메이저리그에서 처음부터 큰 관심을 나타냈고 또 연봉 400-500만 달러의 몸값을 받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는데 이승엽에 대한 평가는 연봉 100만 달러 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승엽은 당시 일본 프로야구를 거쳐 2년 후 다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으나 일본에서의 선수 생활이 8년간 이어졌고 결국 2011시즌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최근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메이저리그에서 제의가 와도 절대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야구가 잘 되지 않았을 때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으면 그렇게 단호하게 거부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타자였던 이승엽이 실패했던 메이저리그 진출을 최고의 투수인 류현진이 하게 됐다. 한국프로야구 출신으로 메이저리그에 직행하는 최초의 선수가 류현진이다.

LA 다저스가 포스팅(경쟁 입찰)에서 원 소속팀 한화에 제시한 금액은 2573만7737달러33센트(약 280억원)였다.

다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LG 트윈스 소속이었던 왼손 투수 이상훈(현 고양 원더스 코치)이 1998년 3월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에서 메이저리그 구단 스카우트들을 상대로 트라이아웃을 한 후 보스턴 레드삭스 구단이 써낸 입찰 금액은 겨우 류현진의 1/40도 안되는 60만 달러(약 7억원)였다.

당시 이상훈은 한국 프로야구 정상급 좌완이었다. 필자는 현장에서 이상훈의 트라이아웃을 지켜보았는데 투구 스피드가 최고 90마일(약 145km) 정도였다. 결국 LG 구단은 60만 달러에 이상훈을 보스턴으로 보낼 수 없었고 그는 일본 주니치 행을 택했다.

류현진에게 메이저리그에서 적어도 3개 구단 이상이 2000만달러(약 220억원) 이상의 입찰 금액을 써냈다는 것은 그의 실력이 가장 높게 평가된 것이지만 베이징 올림픽 전승 금메달,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나타난 한국 야구의 눈부신 성장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제 류현진은 메이저리그에서 한국프로야구 최고 투수의 가치를 보여줘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됐다. 시련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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