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쓸데없는 기억 "내가 왕년에는…"

머니투데이 박창욱 기자 | 2012.08.25 09:11

[영화는 멘토다]5.토탈 리콜..과거의 기억보단 지금 행동과 생각이 중요

#. 폴 버호벤은 발칙한 상상력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네덜란드 출신의 감독이다. 그는 '로보캅' '토탈리콜' '원초적 본능' 등 다수의 화제작에서 기존 권위에 대한 반항 정신을 다양한 방식과 아이디어로 표현해 냈다.

로보캅에선 당시 새로운 주류로 자리잡아가던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을 묵시록적 방식으로 묘사했으며, 토탈리콜에선 국가주의에 대한 거부감을 강하게 표현했고, 원초적 본능에선 도덕적 엄숙함에 대해 냉소를 날렸다.

↑이하 영화 홈페이지.
그 가운데 90년 개봉했던 SF '토탈 리콜'이 리메이크되어 최근 다시 나왔다. 기억을 잃어버린 스파이의 활약을 소재로 한 기본 설정은 그대로 썼는데 90년작에선 배경이 화성 식민지였던 반면, 리메이크작에선 지구 내 식민지로 바뀌었다.

#. 하지만 원작과 리메이크작의 영화적 수준 차이는 아주 크다. 원작에선 동 시대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신선한 상상이 넘쳐났지만, 리메이크작은 특수효과와 액션에만 돈을 퍼부은 '그저 그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중 하나에 불과하다. 더구나 어설픈 오리엔탈리즘과 철지난 서구 제국주의라는 얼개도 좀 뜬금없다.

아무리 볼거리가 화려하다 해도 영화의 진짜 재미는 스토리 속에 담겨있다. 특히 주인공이 실제로 진짜 첩보원인지, 아니면 기억 장치에 들어가 그 속에서 꿈을 꾸는 것인지 마지막까지 헷갈리게 했던 90년작과 달리 이번 리메이크작에는 '이야기의 밀고 당기는' 맛도, 신선한 아이디어도 모두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꿈은 더 이상 꿈이 아닌 것처럼,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깨버린 SF는 더 이상 SF가 아니다.

#. 영화 속에서 기억을 잃은 주인공은 자신의 정체를 완전히 기억해내지 못한 채로 식민지의 반군들을 다시 찾아간다. 그를 예전의 동료이자 리더로 기억하는 반군들이 반갑게 맞아주자, 주인공은 "내가 누구인지도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저들은 나를 반겨준다"며 당황스러워 한다. 그러자 반군의 지도자는 주인공에게 과거의 기억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며 이렇게 말한다. "너를 결정하는 건 네가 지금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달렸어."


이 영화의 제목 '토탈 리콜'은 '완전한 기억'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완전한 기억이란 건 실제론 이 세상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억이라는 게 '그리 믿을만 한 게 못 된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학자들이 다양한 실험으로 증명해 낸 바 있다. 심리학자 대니얼 샥터는 저서 '기억의 일곱가지 죄'에서 잘못된 기억의 형태를 '일시성·방심·차폐·오귀인·피암시성·편향·집착' 등 7가지로 분류하기도 했다.

#. 기억이란 쉽게 사라지고 잊혀진다. 때론 잘 떠오르지 않은 채 입안에서만 뱅뱅 돌기도 한다. 또 어떤 때엔 출처를 혼동하기도 하고, 암시를 받으면 전혀 없었던 일도 마치 실제 겪었던 것처럼 느낀다. 사람들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기억하며, 실제와 완전히 다른 기억을 담아두기도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내 삶에 관한 기억 역시 사실은 '진짜 나'에 관한 것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과거 누렸던 영광의 기억은 진짜 영광이 아닐 수 있으며, 과거 겪었던 굴욕의 기억 역시 진짜 굴욕이 아닐 수 있다. 따라서 그런 과거의 기억에 좌우되거나 그 기억을 현재와 비교하며 살아선 안 된다. "내가 어떤 학교를 나왔는데…", "내가 어떤 회사에 있던 사람인데…", "내가 왕년에는…" 이런 생각들은 다 부질없다.

중요한 건 지금의 내 모습이고, 현재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며, 그에 따라 결정하는 선택이다. 실제 우리 삶에도 과거에 대한 기억보다는 망각이 더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소중한 사람과의 추억 말고는 오래 기억해 둬서 좋은 건 별로 없다. "자신을 망각하는 정도가 크면 클수록 내면의 세계는 넓어진다."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 히파르코스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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