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렴하게 빠르게 실패하고, 성공확률은 높인다"

머니투데이 실리콘밸리=유병률 특파원  | 2012.06.04 05:50

[유병률의 체인지더월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산실, ‘500 Startups’를 가다

실리콘밸리에는 전 세계 IT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꼭 한번 입소(入所)해보고 싶어 하는 신병훈련소가 몇 개 있다. 스타트업(초기기업) 인큐베이터인 ‘500 Startups’와 ‘Y Combinator(와이콤비네이터)’가 대표적이다. 실리콘밸리의 날고 긴다는 멘토들의 지도를 받으며, 또한 함께 입소한 동료들로부터 끊임없이 자극 받으며, 이들은 촉망 받는 실리콘밸리 기업가로 데뷔하게 된다.

포브스와 테크크런치 등 IT 관련 매체들은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선발되면 앞 다퉈 이들을 소개한다. 프로그램의 마지막 피날레 데모데이(투자자 및 미디어 대상 발표회) 직후에는 엄청난 투자와 금맥 같은 네트워크가 이들을 기다린다. 이들은 500 Startups, Y Combinator의 입학생, 졸업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기자는 지난달 31일 마운틴뷰에 위치한 500 Startups을 찾아, 그 훈련의 비결을 들어보았다.

500 Startups 사무실은 칸막이 없이 모두 트여있다. 설립자이자 실리콘밸리 슈퍼엔젤인 데이브 맥클러(가운데 노란색 티셔츠 입은 사람)도 예외없이 테이블 한쪽 구석에서 일을 하고 있다. /사진=유병률기자


◇300여평 ‘co-work space’의 비밀

구글의 헤드쿼터가 지척인 마운틴뷰의 다운타운. 500 Startups은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12층짜리 건물의 꼭대기 층 전체를 스타트업들의 공동작업공간(co-work space)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지만 그 흔한 리셉션 데스크도 없다. 서론 없이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실리콘밸리의 실용적 마인드를 반영하는 듯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 흔한 사무실 파티션들도 역시 없다. 7월17일 데모데이 무대에 오르는 26개 팀의 수십 여 명 젊은이들이 다닥다닥 붙은 테이블에서 삼삼오오 머리를 맞대고 있다. 500 Startups 설립자이자 실리콘밸리의 슈퍼엔젤인 데이브 맥클러도 예외 없이 테이블 한 모퉁이에 앉아 열심히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얼굴을 알지 못했다면 실리콘밸리 유명인사 가운데 한 사람을 그냥 지나칠 뻔했다.

300여평 사무실은 원래부터 있던 기둥과 벽 때문에 전체공간이 3~4개로 나눠져 있었지만 각 공간은 모두 트여있었다. 저 멀리 앉은 팀이 무엇 때문에 옥신각신하는지 다 들릴 정도이다. 팀이 달라도 속속들이 잘 알기 때문에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짧은 시간 비약적인 발전을 한다는 설명이다. 이것이 바로 co-work space의 위력이라는 것. 어떻게 보면 경쟁관계이지만 자신의 아이디어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드러내는 것, 그렇게 해서 돌아오는 피드백으로 자신이 성장하는 것, 바로 이것이 이 공간의 비밀 같았다.

요리를 할 수 있는 주방 앞에서도, 햇볕 좋은 마운틴뷰의 스카이라인이 한 눈에 보이는 창가 소파에서도, 그래프를 잔뜩 그려놓은 화이트보드 앞에서도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소셜네트워크 시대의 혁신은 차고나 골방이 아니라, 이런 열린 공간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었다.

지난달 31일 마침 '서비스에 담아야 할 콘텐츠'라는 주제로 강의가 열리고 있었다. 매주 화요일, 목요일에는 실리콘밸리 베테랑들이 참여하는 강의가 열린다. /사진=유병률 기자


◇저렴하게 실패하고, 성공확률은 높인다

500 Statrups은 1년에 한번 정도 30여 개 팀을 선발해 투자하지만, 투자금액은 크지 않다. 보통은 2만5000(약 3000만원)~5만달러(약 6000만원). 아무리 많아도 25만 달러(약 3억원)를 넘지 않는다. 슈퍼엔젤 데이브 맥클러가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페이팔(PayPal)의 마케팅 디렉터 출신인 그는 2002년 페이팔이 이베이에 인수되면서 많은 돈을 벌었다. 또 그가 투자하고 키운 민트닷컴(Mint.com) 빅스닷컴(Bix.com) 슬라이드쉐어(SlideShare) 티치스트리트(TeachStreet) 잼볼(Jambol) 등은 구글 야후 아마존 등 쟁쟁한 기업에 매각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소액투자가 바로 500 Statrups의 핵심전략이다. 실리콘밸리의 전통적인 벤처캐피탈들이 산더미처럼 쌓이는 사업계획서에서 고르고 골라 1년에 10여 개 정도 수십만~수백만 달러를 베팅하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다. 어떻게 보면, 어차피 스타트업의 70~80%가 실패한다고 할 때, 보다 저렴하게, 보다 더 빨리 실패하자는 취지이다. 대신 더 많은 투자건수를 통해 성공건수도 높이자는 것.

데이브 맥클러와 함께 500 Startups 공동파트너인 크리스틴 채는 “우리의 목적은 수익모델이 분명한 아주 초기단계의 기업에 소액을 투자해서 이들이 벤처단계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글 프로덕트마케팅매니저 출신인 그는 8년여 동안 구글과 유투브의 마케팅을 주도했다.

2010년 설립 이후 500 Startups을 거쳐간 회사는 모두 300여개. 트윌리오(Twilio), 와일드화이어 인터랙티브(Wildfire Interactive), 태스크래빗(TaskRabbit), 센드그리드(SendGrid), 메이커보트(MakerBot) 등 최근 인터넷과 모바일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서비스들이 모두 500 Startups 출신이다.

500 Startups의 설립자이자 실리콘밸리의 슈퍼엔젤인 데이브 맥클러
500 Startups 파트너인 크리스틴 채 전 구글 프로덕트마케팅 디렉터
500 Startups 멘토인 김창원 전 구글 블로거 프로덕트 매니저
위치기반 패션쇼핑 앱 스내페트의 사라 페이지 대표


◇멘토들의 힘


500 Startups의 진짜 매력은 데이브 맥클러를 비롯해 실리콘밸리에서 수많은 사업경험을 가진 멘토들의 헌신적인 멘토링. 이들은 3개월 동안 참가자들과 쉴새 없이 대화하고 자신의 네트워크를 연결해준다. 데이브는 “실리콘밸리에서 20여년을 보내면서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데모데이가 가까워오면 그는 사무실에서 살다시피 한다. 매일같이 새벽에 퇴근하면서 모든 팀들의 준비상황을 체크한다. 무서운 감독처럼 말이다.

현재 500 Startups의 멘토는 모두 160여명. 구글 등 대기업에 근무하거나, 직접 창업을 해서 매각한 경험이 있는 실리콘밸리의 베테랑들이다. 디자인 마케팅 기술 등 분야도 총천연색이다. 여러 명의 멘토들이 1개씩 팀을 맡아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데모데이 리허설까지 세세히 간여한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이면 멘토들과 또 이들이 초청한 유명 인사들의 강의가 열리기도 한다.

멘토들 가운데 유일한 한국인인 김창원 전 구글 블로거 프로덕트매니저는 “Y Combinator가 접수와 심사를 통해 지원자를 선발하는 반면 이 곳은 파트너와 멘토들의 네트워크를 통해서만 참가자가 결정된다”며 “최초검증을 하고 추천을 했던 멘토들이 그만큼 헌신적으로 돌보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아블라컴퍼니 대표로 있는 노정석씨와 함께 2006년 창업한 블로그서비스 태터앤컴퍼니를 2008년 한국기업으로는 최초로 구글에 매각한 뒤 구글 본사에 합류했다가 올 초 구글을 그만두고 다시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직접 요리도 할 수 있는 주방 공간.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팀은 달라도 함께 식사를 하면서 피드백을 주고 토론을 한다. /사진=유병률 기자


◇사라 페이지가 경험한 500 Startups

기자는 마침 지난해 500 Startups 프로그램을 거친 한국계 사라 페이지를 이곳에서 만나 인큐베이팅 과정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한국인 어머니와 중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지난해 데모데이 직후 실리콘밸리 투자자들로부터 140만달러(약 16억원)를 투자 받았다. 그가 만든 스내페트(Snapette)는 위치기반 패션쇼핑 모바일 앱. 가입자가 자신이 현재 위치하고 있는 곳의 근처 가게들에서 어떤 종류의 옷, 신발, 가방 등이 얼마에 판매되고 있는지 스마트폰 사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상점에 가면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지난해 8월 론칭 이후 포브스, 벤처비트 등 미국의 많은 언론이 이를 크게 소개했다. 미국의 패션전문지들은 패션 분야에서 꼭 다운받아야 할 모바일 앱으로 꼽기도 했다.

하지만 사라는 “500 Startups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창업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버드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골드만삭스 맥킨지 등에서 일했던 사라가 IT창업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우연히 날린 트위트 때문이었다. 지난해 5월 위치기반 쇼핑에 대한 자신의 아이디어를 날렸다가 이를 본 데이브 맥클러가 리트윗을 한 것. 이를 계기로 뉴욕에 있던 사라는 곧바로 마윤틴뷰로 날아와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에 합류했고, 매일 새벽 4~5시까지 매달린 끝에 아이디어를 구상한 지 7개월여 만에 정식 서비스를 내놓게 됐다.

“매주 월요일이면 데이브가 모든 팀을 불러 놓고 무섭게 다그쳤죠. ‘아직 제품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어떻게 해. 계획서만 잔뜩 만들면 무슨 소용이 있어, 빨리 실행을 하란 말이야’라고 말이죠. 그때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죠.” 하지만 이 덕분에 사라는 미국의 유명한 패션커뮤니티 관계자들을 소개받았고, 위치기반쇼핑 창업경험이 있는 멘토들로부터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사라는 또 “프로그램에 참가한 다른 팀 동료들과의 끊임없는 피드백을 빼놓을 수도 없다”며 “특히 기술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다른 팀 엔지니어들이 합류해서 도와준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인큐베이팅 기간에는 팀들끼리 엔지니어나 디자이너 등을 빌려주고 빌려오는 스왑도 빈번하다.

사라는 “골드만삭스에서는 프로젝트 하나가 끝나면 또 다른 프로젝트로, 딜 하나가 끝나면 또 다른 딜로 옮겨가는 뜨내기이지만, 스타트업은 오너십을 가지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했다. 500 Startups의 3개월간 훈련의 비밀 가운데 하나는 또한 이런 열정을 심어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리해보면, 이곳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산실이 키워내는 창업가는 고시 공부하듯 틀어박혀 수년간 청춘을 다 바치는 고립형 인재가 아니다. 오히려 빠르게 도전하고 실패해도 훌훌 털고 일어나서 다시 도전하는 인재들이다. 그런 인재를 만들기 위해 헌신하는 선배들에게도 멘토링은 큰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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