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사로잡은 '모자왕', 그의 이름은 韓商

머니투데이 평창(강원)=유영호 기자 | 2012.04.30 08:00

조병태 美플렉스핏 회장…500弗로 37년만에 年매출 1.5억弗 기업 일궈

1975년. 스물여덟 살의 한국 청년이 미국 뉴욕 땅을 밟았다. 주머니에는 단돈 500달러가 전부. 청년은 생면부지 땅에서 '끈기'와 '성실'을 앞세워 주류사회를 파고들었다.

그렇게 37년. 이제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청년' 앞에는 영광스러운 호칭이 하나 붙었다. 모자왕. 세계 스포츠 모자 시장 점유율 1위, 그리고 연매출 1억5000만 달러를 자랑하는 플렛시핏의 조병태 회장(67·사진)의 얘기다.

맨주먹으로 시작해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며 세계 모자시장을 제패한 조 회장의 성공스토리는 인내와 고난으로 대변되는 '한상(韓商)'의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다.

대구 출신인 조 회장은 동서의 초청을 받아 미국으로 이민했다. 미국에서 태권도장을 할 생각으로 태권도 사범 자격증을 준비해 갔지만 당시 가져간 돈은 브루클린 빈민가에 겨우 셋집을 얻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장미빛 '아메리카 드림'에서 깬 그는 모자 사업에서 '활로'를 찾았다. 형이 운영하던 유풍실업이란 원단회사를 종종 찾은 덕에 모자 생산 과정을 잘 알고 있던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샘플 모자 20여개를 들고 당시 미국 모자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유대상인들을 찾아 나섰다. 무작정 찾아간 유대인 상인들은 들고 간 샘플 모자를 바닥에 던지고 '이것도 모자냐'며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망신을 주기 일쑤였다.

그러나 조 회장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바이어들을 찾았고 결국 6개월 만에 주문을 받아냈다. 기쁨은 곧 큰 시련으로 모습을 바꿨다. 한국에서 생산한 가죽모자가 미국까지 오는 동안 곰팡이에 뒤덮인 것이었다. 바이어는 당장 20만 달러의 배상을 요구했다.

조 회장은 "도망칠까도 생각했지만 결국 '정면돌파'를 택했다"며 "바이어를 찾아가 '수중에 가진 게 아무것도 없지만 비겁하게 도망가지 않겠다'고 말하고 담보물로 영주권과 가족사진을 맡겼다"고 회상했다.

그의 진심을 느낀 바이어는 조 회장에서 재기의 시간을 줬다. 빚더미에 앉은 조 회장을 살린 것은 독창적인 아이디어다. 당시 모자는 앞면이 높은 크라운 스타일은 인기가 없다는 것은 정설이자 전통이었다. 그러나 그는 고정관념을 뒤집어 '프린팅 모자'를 내놓았다. 앞면을 높게 하고 그곳에 기업로고 등을 새기는 새로운 시도였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버드와이저, 말보로, GM과 포드 등이 이벤트 때마다 그의 모자를 사용했다. 프린팅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만든 '자수 모자'도 대성공을 거뒀다. 메이저리그(MLB) 구단을 시작으로 북미프로풋볼(NFL), 미국프로농구(NBA) 등 인기 스포츠 전반으로 빠르게 확대됐다.

안정기에 접어들었던 모자 사업은 1990년대 다시금 위기에 직면했다. 1990년 미국이 모자 쿼터제를 폐지하면서 값싼 중국 제품이 홍수처럼 밀려든 것이다. 그는 다시 한 번 역발상의 아이디어로 위기를 극복했다. 모자 원단을 스판덱스로 하고 둘레를 탄성이 있는 밴드로 처리해 사이즈 조정이 불필요한 모자 '플렉스핏'을 개발했다. 플렉스핏은 우수한 경쟁력을 인정받아 나이키 등에 독자 브랜드로 납품을 시작했다. 나이키가 자사 매장에서 다른 브랜드를 공인해 준 것은 듀폰의 고유 소재인 '라이크라'와 플렉스핏이 유일했다.

조 회장이 한 해에 파는 모자 수는 자그마치 3500만개, 연매출은 1억5000만달러에 달한다. 그는 "미국 인구의 40%가 플렉스핏 모자를 쓰고 다닌다"며 "한 가정에 하나씩은 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조 회장은 특히 세계한인무역협회 9대 회장을 맡으며 한상 네트워크 활성화에 불을 붙인 주역이기도 하다. 지난 1998년에는 자비로 직접 전 세계를 발로 뛰며 한상들을 조직해 한인무역인 총회 개최를 성사시키기도 했다.

조 회장은 "유대상인들과 중국 화상(華商)의 네트워크와 파워가 곧 이스라엘과 중국의 국력과 이어진다"며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세계 각지 한상들과의 기술제휴 및 합작투자 등 한상 네트워크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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