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 "1분늦는 시계보다, 고장난시계가 돼라"

머니투데이 대담=유병률 기획취재부장, 정리=최우영 이현수 기자 | 2012.01.31 05:30

대한민국 대표선배가 '88만원 세대'에게 <14>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

우석훈 박사는 "20대가 좀더 게을러져야 한다"고 말했다. "주어진 틀에서 계산해서 딱 맞춰 사는 것, 이렇게 해서는 기회도 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일도 확인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자기 욕망의 흐름에 몸을 싣는 것이 앞으로의 시대가 요구하는 것인데, 게을러져야 비로소 자신의 욕망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2007년 <88만원세대>라는 책으로 한국사회가 20대의 구조적 문제와 대면하도록 했던 우석훈 박사. 그는 이 책에서 "40대와 50대 남자가 주축이 된 세력이 10대를 인질로 잡고 20대를 착취하고 있다"며 "20대가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5년여가 지난 지금, 한국사회에는 20대를 둘러싼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여전히 많이 힘들지만, 그래도 "짱돌은 들었고, 이제는 모두가 20대 눈치를 보게 됐다"고 우박사는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굉장히 힘들 거라 생각했는데 20대가 본진(本陣)이 되는 순간이 금방 올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고 예측했다. 20대가 본진이 된다면 우 박사는 나팔수의 역할을 한 셈이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은 백지상태인 것 같다"고 규정했다. 아무것도 없어서가 아니라 새로 출발할 수 있어서 백지라는 설명이다. "몇 년 전만해도 시꺼멓게 오염된 종이 한 장뿐이었는데, 간만에 뭘 그릴지 모를 백지가 펼쳐지게 됐습니다." 지난 20일 연세대 앞 한 카페에서 우 박사로부터 20대가 백지 위에다 무엇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들어보았다.

"꿈을 가지라는 말은 재수없다. 오히려 욕망이 중요하다"
'88만원세대'라는 표현의 '저작권자'인 우 박사는 '대표선배 인터뷰 시리즈'의 애독자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게재된 13명 대표선배의 메시지에 대한 소감부터 부탁했다.

그 동안 인터뷰에서 시골의사 박경철, 영화감독 이준익, 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과 같은 선배는 "기성세대가 만든 질서에 줄서지 마라"고 이야기했고, 또 어떤 선배들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꿈을 가져라"고 조언했다.

우 박사는 그 중에서 '꿈을 가져라'는 메시지에 태클을 걸었다. "틀린 말은 아닌데, 다만 재수가 없을 뿐이죠. 한국이 더 좋아질 구석이 별로 많지 않은데, 꿈을 갖는 건 이상한 것 아닌가요?" 경제가 고속성장을 하던 개발시대 때처럼 젊은이들이 꿈을 가지고 매진한다고 해서 이룰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그는 오히려 "20대가 좀더 게을러져야 한다"며 마르크스의 사위 폴 라파르크의 책 <게으를 수 있는 권리> 이야기를 꺼냈다. 이 책은 '인류가 원래부터 노동을 찬미했던 것도 아니고, 오히려 예술과 미덕의 어머니는 게으름'이라고 말한다.

자본주의가 사람들로 하여금 '노동과 일에 대한 열정'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히게 하면서 지적인 타락을 가져왔다는 것. "'일에 최선을 다하면 너희가 복을 받을 것이다'는 논리는 오래된 기복신앙에 자본주의를 결합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드디어 잘 노는 사람들이 더 잘 사는, 마지막의 '1'을 더하는 창의성이 중요해지는 경제가 된 겁니다." 그래서 '무엇이 꼭 될 것인지'에 대한 꿈보다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욕망을 확인하는 작업이 더 중요해졌고, 자신의 욕망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더 게을러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기업 들어가는 엄마표 귀공자는 사실 바보들이다"
기성세대와 부모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바로 게으름인데, 게으름이 어떻게 자신의 욕망을 확인시켜주고, 내면을 성장시켜 줄 수 있을까?

"내가 지금 하고 싶다는 것 가운데에는 실은 조건반사적인 것이 많아요. 그런데 (조건반사적인 욕망) 그것이 다 없어지고 나면, 그래도 하고 싶은 게 남습니다. 그게 바로 진짜 하고 싶은 거죠. 하도 놀다 보면 하고 싶은 게 생긴다니까요. 열흘 동안 영화만 보는 친구들을 본 적 있어요. 만일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면 영화 쪽은 아닌 거죠.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자기 안에 어떤 화학적 변화가 생긴다, 그렇다면 진짜 영화를 하고 싶은 거에요."

그가 "빈 시간을 자꾸 만들어주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고 이야기 하는데, 상상을 하려면 여유가 있어야 됩니다. 마음의 여유와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유럽의 청소년들을 보세요. 자유롭잖아요. 최소한 굶어 죽지는 않을 거라고 국가가 약속을 해주고, 사회가 이들에게 더 많은 시간적 여유를 주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안 그러잖아요. '야, 너, 상상해봐!' 이런 식 아닙니까."


그래서 우 박사 자신도 '널널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대학에 나가 강의도 하고, 책도 쓰고, 이준익 감독과 영화도 만들고 있지만, 웬만하면 임신한 부인을 위해 밥해주고 되도록이면 집 밖에 안 나가는, 정형화되지 않은 삶을 살려고 하고 있다.

"약속도 없이, 내일의 일은 내일 생각하면서 산다고 해서, 하고 싶은 게 없을까요? 오히려 우리는 지금 누군가 통제해주지 않으면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바보들만 만들고 있는 겁니다."

그는 이런 '바보'들을 '엄마표 귀공자'라고 표현했다. "엄마표 귀공자는 대기업까진 갈 수 있어요. 하지만 맥시멈 대리까지 입니다. 우리가 지금 엘리트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바로 이렇게 만들어지고 있는 겁니다. 이게 바로 우리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인 것이죠."

"세상은 이미 서서히 바뀌고 있다"
꿈보다 욕망이고, 그래서 내가 진정 하고 싶은 것을 찾아 그 흐름에 내 몸과 마음을 맡긴다 치자. 그것이 시대의 흐름과 맞지 않다면 난 도태 아닌가?

"보세요. 1분씩 늦는 시계가 정확할까요? 아니면 고장 난 시계가 정확할까요? 1분씩 늦는 시계는 한번도 안 맞습니다. 오히려 고장 난 시계는 하루에 두 번씩은 정확하게 맞거든요. 내가 있어야 하고, 있고 싶은 자리에 있으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다 보면 선구자라고 불릴 때가 온다는 겁니다. 트렌드라는 것은 굉장히 빠르기 때문에 좇아가서는 늘 5분씩 늦게 되고, 평생 굶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자도 그렇잖아요. 특종이 술집, 골프장에서 나옵니까? 아니잖아요. 하고 싶은 것, 관심 있는 것 쓰다 보면 특종이 나오는 것 아닌가요?"

그러면서 그는 "이미 많은 젊은이들이 욕망이 이끄는 쪽, 다원적인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면서 "그래서 희망적이다"고 말했다. "지금 세상은 유니폼(uniform)한 세대였던 50대가 그렸던 것과는 다른 쪽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학자들이 20대를 못 따라 잡을 정도입니다. 이젠 '삼성이 자신의 삶'이라고 생각하는 대학생은 없는 것 같아요. '내가 삼성에 가려고 태어난 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희망이 있다는 겁니다."

그는 "매스(mass, 대중)의 시대가 도래한 것도 희망의 증거"라고 말했다. "이젠 어떤 집단도 음모를 꾸밀 수는 있지만, 그 음모를 구현할 수는 없습니다. 종편 채널을 보지 않기 위해 아예 감춰버리는 것처럼 소비도 이념적으로 하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세상이 서서히 바뀌고 있는 겁니다."

"스펙경쟁에서 벗어나서 동료의 손을 잡아야할 시대"
그래서 우 박사는 "20대도 앞으로의 시대가 요구하는 '협업'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지난 10여 년 동안 협업이라는 것을 잊고 살았죠. 스펙경쟁이 동료라는 것을 잊고 살게 했습니다. 그래서 20대가 약한 게 바로 이 대목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앞으로 만나게 될 시대에는 '누군가 일을 같이 해보자고 손에 건네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개인적 능력과 매력만으로는 안됩니다. 아무리 매력이 있어도 5분만 같이 있으면 재수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절대 안됩니다. 소프트웨어 시대에 지식행위라는 것은 혼자서는 절대 만들 수 없습니다. 앞으로의 노동은 협업 형태를 띨 수밖에 없는 거죠."

그가 강조하는 협업 능력은 지금과 같은 각자도생 스펙경쟁에서는 갖추기 어려운 법. 그래서 그는 "협업도 수없이 연습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제작과정을 한번 보세요. 혼자서 하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100여명의 스텝이 움직이는데 최소한 절반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아야 일을 계속 할 수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고, 지시하는 것보다 전체를 오거나이징하는 역할이 정말 중요합니다. 앞으로 지식사회에서는 영화제작과 같은 노동이 점점 더 많아집니다. '당신이 틀렸다'고 얘기를 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는 거죠. 그래서 상대에게 아픔을 주지 않고도 싫은 얘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을 훈련해야 합니다. 스타일이 다 다르기 때문에 서로서로 맞춰봐야 하는 겁니다."

우 박사가 5년여 전에 쓴 <88만원 세대>는 현재 몇몇 인터넷서점에서는 자기계발서로 분류된다. 그 역시 "엄마들이 중고생 자녀에게 그 책을 던지면서 '그거 보고 나면 정신 번쩍 들어서 공부 열심히 할거다'라고 말한다"고 했다. 학습효과를 높이는 자기계발서로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경쟁교육 속에서 20대가 영혼까지 황폐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많은 젊은이들이 욕망의 에너지를 사장시키지 않고 자기 일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의 결론도 "지금이야말로 20대가 새로 펼쳐진 백지를 과감하게 그려봐도 될 것 같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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