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정유사 그만 때려라

머니투데이 박종면 더벨 대표 | 2011.02.14 10:05
옛 중국 초나라 왕이 허리가 가는 여자를 좋아하자 신하들은 너도나도 가는 허리를 만들기 위해 음식을 먹지 않았다. 제나라 왕이 남자를 싫어하고 여색을 밝히자 신하들은 스스로 거세를 해 후궁을 관리하는 내시가 됐다. 권력의 생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책 '한비자'에 나오는 슬픈 얘기다.
 
지난 1일 대통령의 신년 방송좌담회에 이은 장관들의 잇단 기름값 인하 압박을 보면서 '한비자'가 생각났다. 이날 이명박 대통령은 고통분담 차원에서 유류세 인하를 검토하겠다고 하면서 정유사들에 대한 불만을 내비쳤다. "국제 유가가 내려가면 국내 기름값은 천천히 내려가는데, 반대로 국제 유가가 올라갈 때는 급속히 올라간다"는 지적이었다.
 
대통령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장관들이 나섰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 비해 우리나라의 세전 휘발유 가격이 휠씬 높다고 주장했고,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회계사 경험을 되살려 자신이 직접 원가를 계산해 보겠다고 호기를 부렸다.
 
기름값의 진실은 무엇인가. 우선 대통령이 지적한 국제 유가와 국내 기름값이 따로 논다는 이른바 기름값의 '비대칭성' 문제는 이미 몇년 전 공정위가 한 대학 경제연구소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 비대칭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난 사안이다. 그럼에도 이런 착시가 나타나는 것은 세금과 환율 때문이다. 국제 원유시장을 쥐락펴락 하는 글로벌 투기자본은 기름값 착시를 일으키는 또 하나의 요인이다.
 
윤증현 장관과 기획재정부가 지적한 "OECD 국가 평균을 100으로 봤을 때 국내 기름값은 113.2로 매우 비싸다"는 주장도 나라마다 휘발유의 품질기준이 달라 매우 신중하게 비교해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휘발유의 고급 정도를 표시하는 옥탄가가 같은 수치의 휘발유끼리 비교하면 우리나라 휘발유 가격이 OECD 평균에 비해 오히려 리터당 30원 정도 더 싸다는 게 정유업계의 주장이다.
 

최중경 장관은 자신이 직접 기름값의 원가를 계산해 보겠다고 했지만 석유제품은 같은 원료인 원유에서 휘발유 경유 등유 중유 등 다양한 제품이 동시에 생산되는 '연산품'(joint products)으로서, 연산품의 제품별 원가는 회계사가 아니라 회계사 할아버지라도 산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안다.
 
정부는 물가관리가 문제될 때마다 정유사를 찍어 기름값 인하를 압박하지만 설득력이 없다는 점을 입증할 근거는 더 있다. 무엇보다 국내 판매가격에는 포함되면서 수출가격에는 없는 관세, 수입부과금, 국내 유통비용 등을 감안해서 휘발유의 내수가와 수출가를 비교하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내수가는 리터당 613원 정도고, 수출가는 637원이어서 국내 정유사들의 폭리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영업이익률이나 순이익률 측면에서 전자 자동차 철강 등 한국의 다른 대표 업종 기업들의 8~15%에 비해 정유사들은 겨우 2~3%대로 상대적으로 크게 낮다.

대재앙 수준의 구제역과 전세대란, 글로벌 시장에서의 유가 및 곡물가격 상승, 이로 인한 물가대란과 민심이반 등 정부의 고충을 모르진 않지만 최근 정유사와 통신사, 유통업체 등에 대한 팔 비틀기는 좀 지나치다.
 
물가안정을 위해선 금리는 올리고, 환율은 내리고, 세금은 깎아줘야 하는데 이것은 못하면서 기업들만 때리고 공격하는 것은 비겁하고 속보이는 일이다. 기업이 소말리아 해적은 아니지 않은가. 그만 때리고 그만 잡아라. MB정부 출범 초기 내걸었던 '친기업'의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까진 말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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