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테스]낮잠(Siesta)의 대가(代價)

머니투데이 이성한 국제금융센터 소장 | 2011.02.01 10:30
포르투갈 남부지방에서 유래된 시에스타는 지난 수세기 동안 스페인과 그리스에도 널리 퍼져 있었다. 최근 낮잠 자는 사람은 많이 줄었지만 시에스타의 영향으로 상당수 국민은 대개 2시간을 넘어서는 긴 점심시간을 즐긴다. 이런 그들의 생산성은 유로존 최저 수준이다. 지난해 그리스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1.5%로 17개국 중 가장 낮았고, 포르투갈과 스페인도 유로존 평균을 하회했다.

그러나 역시 공짜 점심은 없었다. 2009년말 그리스의 재정적자 은폐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작된 남유럽의 재정위기는 아일랜드를 거쳐 포르투갈, 스페인으로 번지고 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재정적자와 부채를 줄이기 위해 재정긴축을 강력히 시행해야 했고, 그 피해는 결국 고스란히 시에스타를 즐기던 국민들에게 돌아갔다.

남유럽의 재정위기는 쉽게 해결되기 어려워 보인다. 위기 해결을 위해 환율 조정과 경쟁력 강화 등이 필요한데, 환율 조정은 통화동맹의 한계상 어렵고, 경쟁력 강화는 단기에 이뤄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들의 제조업 비중은 15% 내외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저기술·저부가가치 산업에 집중돼 있다.

그리스와 아일랜드에 대한 구제금융 집행 이후 현재 글로벌 금융시장의 관심은 포르투갈과 스페인으로 향하고 있다. 최근 포르투갈의 금리 수준이 7%선을 넘나들고 재정적자 축소가 큰 진척을 보이지 못하자 프랑스의 소시에떼제네랄은행은 포르투갈의 구제금융 가능성이 80%에 달한다는 전망도 내놓았다. 포르투갈이 구제금융을 받을 경우 포르투갈 대외차입의 33%를 제공하는 스페인도 그 영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남유럽 재정위기가 악화된다면 결국 우리 시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소지가 있다. 스페인이 위기를 맞으면 여타 국의 수요도 위축될 가능성이 높아 수출실적에 직접적 타격이 예상된다. 우리의 유로존 수출규모는 346억달러로 전체의 9.3%, 유럽 수출규모는 466억달러로 전체 수출의 12.8%에 달한다.


특히 우려되는 부분은 스페인을 기점으로 위기가 글로벌 금융시장으로 옮겨붙는 경우다. 과거 사례로 보아 글로벌 위기시 신흥국에 유입된 선진국 자금이 급격히 유출되는데 우리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스 구제금융이 결정된 지난해 5월 외국인들은 아시아 주식을 133억달러어치 순매도했는데 한국에서도 54억달러를 인출했다.

정부는 최근 자본유출입 관련 규제조치를 재정비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를 통해 자본유출입 모니터링 기능을 강화하고 외화차입비율 제한, 선물환포지션 한도 설정,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 환원, 거시건전성부담금 부과 조치 등을 발표했다. 이는 남유럽 사태의 불확실성 등을 감안할 때 자본유출입 변동성 축소를 위해 필요한 예방조치다.

남유럽의 사례는 우리에게 재정건전성 확보의 중요성을 일깨우게 한다. 정부가 재정통계 개편을 통해 2011년 결산시부터 발생주의 회계원칙을 적용하기로 함에 따라 정부부채(2009년 GDP의 33.8%)는 현재보다 상향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개편 이후에도 그 수준은 여타 선진국 등에 비해서는 여전히 낮을 것으로 전망된다. 위기를 겪는 PIIGS국은 정부부채가 64~140%에 달하고 유로존(84.1%) 영국(77.8%), 일본(225.9%) 미국(92.7%·IMF) 등의 경우도 우리보다 크게 높다.

글로벌 시장의 투자자들도 현재 한국의 재정상황이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닌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재정 건전성 제고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사안이다. 유로존의 재정 불안을 계기로 글로벌 투자자들이 보다 엄격하게 각국의 재정상황을 살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더불어 다른 글로벌 위기가 닥쳤을 때 이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여력을 확보해둘 필요도 있다. 우리가 재정을 튼튼히 해둬야 될 이유는 우리 내부에도 있다. 우리 사회의 인구고령화 속도와 복지수요 급증 등을 고려할 때 지금부터 미래 재정수요 등에 대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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