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강남'으로 불리는 해운대구가 증권사 초우량고객(VVIP) 마케팅의 새로운 각축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해운대구 센텀지구와 마린지구를 중심으로 고급 주택가가 형성되며 부산의 자산가들이 이 지역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원동IC를 빠져나와 부산 해운대구로 들어서니 수영강을 따라 즐비한 고층 아파트들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센텀시티 지구다.
40~80층에 달하는 아파트와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신세계백화점 센텀지구점, 벡스코(BEXCO) 등 대형 상업업무 시설이 줄지어 서 있다. 얼핏보면 서울 강남이나 경기도 분당의 고급 주거지가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센텀지구 한 가운데 위치한 부산지하철 2호선 센텀시티역 일대. 미래에셋증권과 신한금융투자 우리투자증권 삼성증권 등 총 12개의 국내 증권사 지점의 간판들이 빼곡히 자리잡고 있었다. 금융산업의 메카 여의도만큼이나 증권사 간판이 많았다.
인근의 마린시티 지구도 상황은 비슷했다. 해운대 해변과 동백섬, 아시아태평양정상회담(APEC)이 개최됐던 누리마루가 눈 앞에 내려다보이는 마린시티 지구에도 증권사 지점 총 6곳이 집중됐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치열한 자리경쟁의 결과다. 증권사들이 자리경쟁을 벌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고액자산가들이 많기 때문이다. 2000년대 후반 두 지구에 본격적으로 고급 아파트들이 들어서며 부산·경남의 자산가들이 몰려들었다.
센텀시티 한 가운데 위치한 대우트럼프월드센텀은 2003년 분양당시보다 2배 이상 값이 올랐다. 2007년 이후 해운대구 연평균 아파트값의 상승률이 서울의 3배가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그만큼 자산가들의 수요가 집중됐다는 것이다.
삼성증권의 부산·경남 지역 13개 지점을 대표하고 있는 선임지점장인 한정구 총괄지점장은 "과거 부산역과 자갈치 시장, 중앙동에 위치했던 부산 금융의 중심지가 서면을 거쳐 해운대구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각 증권사에서는 해운대구 일대의 새로운 자산가 계층에 대해 대부분 부산·경남 일대의 기업 오너나 CEO로 분석하고 있다.
한 총괄지점장은 "기존에 부산 중앙동이나 서면, 동래 등에 거주하던 부산 지역 기업인들이 최근 대부분 해운대구로 이주했다"며 "이 일대에 금융자산만 30억원 이상되는 자산가들이 수백명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달곤 HMC투자증권 부산지점장도 "부산 경남 일대에 현대·기아차 협력업체만 1만여개 이상 자리잡고 있다"며 "자산가들 가운데 50% 이상이 기업 오너이며 총 자산은 평균적으로 100억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이들은 부동산 위주로 자산을 굴리던 기존의 중소기업 사장들과 달리 '주식시장 친화적' 자산가로 증권사들은 분류하고 있었다. 부산 기업 가운데 기업공개(IPO) 등을 통해 부를 이룬 사례가 많아졌고, IT나 영화산업 같은 신산업 종사자도 들어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정구 지점장은 "태웅이나 현진소재 같이 부산·경남 일대의 기업들이 주식 시장에 상장하며 크게 성공을 한 영향으로 증시를 활용하고자 하는 니즈(수요)가 많은 자산가 계층이라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이창현 대우증권 PB센터 개설준비위원장은 "기존에 부산 지역은 노동이나 자본집약적 산업이 중심이었지만 최근 해운대구에 위치한 영상단지를 중심으로 영상관련 사업이나 IT사업체들이 입주하며 자산가들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각 증권사들은 이에 따라 해운대구 일대의 영업방식을 VVIP 마케팅 위주로 바꾸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과 공동으로 VVIP 마케팅을 진행하고 소수의 자산가 위주로 자산관리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맨투맨'식 영업이 중심이 되는 것이다.
증권사 내부 풍경도 기존 지점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시세판과 고객응대 창구 위주로 구성된 증권사 지점의 풍경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창구를 최소화하고 나머지 공간은 VVIP 고객을 위한 세련된 소형 회의실로 바뀌었다.
이창현 위원장은 "띠를 두른 직원들이 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방식으로 대표되는 홍보방식은 해운대구 일대에서는 의미를 상실해가고 있다"며 "특화된 소수의 고객층을 상대로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식으로 영업이 바뀌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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