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경제를 예측한다고?

머니투데이 성화용 부국장 | 2009.12.29 08:10
경제기자랍시고 매년 이맘때쯤 되면 점잖은 질문을 받곤 한다. “내년에는 경기가 좀 좋아질까요?” 그 때마다 애써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최대한 성의 있는 자세로 대답한다. “정말이지, 잘 모르겠어요”

상대방이 집요할 경우 허망한 대화가 더 이어진다. “내년 경제성장률 예상치가 5%라고 신문에 났던데요?” “글쎄요, 그걸 믿을 수 있어야죠 ” “그래도 전문가들은 좋아진다고 보는 거 아닌가요?” “믿을 게 못 된다니까요”

고상한 주제의 대화는 이쯤에서 상대방의 약간 언짢은 듯한 표정과 함께 중단되기 마련이다. 아마도 속으로 기자의 무식을 경멸하거나 무성의를 불쾌해 했겠지만, 이렇게 어물쩡 넘어갈 수 밖에 없는 데는 나름의 고충이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을 포함해 수많은 연구소와 단체들이 12월 초순을 전후해 경제 예측을 쏟아내고 있다. GDP성장, 민간소비, 설비투자, 수출입, 환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표의 예측치를 내놓는다. 여기에 근거논리와 전제, 조건 등을 조합해 그럴듯한 매트릭스를 만들고 근사한 설명까지 덧붙여 이른바 ‘보도자료’를 생산해 낸다.

그러나 예측과 결과를 비교해 보면 실소를 넘어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있다.
작년12월12일 한국은행은 올해의 연간 경제성장률이 2%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비슷한 시기에 주요 연구소와 금융회사 리서치조직에서 내놓은 전망치는 한국개발연구원 3.3%, 삼성경제연구소 3.2%, 현대경제연구원 3.1%, 금융연구원 3.4%, 씨티그룹 2%, 매쿼리 2%, 도이체방크1.7%, UBS -3.3%.

그렇다면 결과는? 한은이 추정한 올해 경제성장률은 0.2%. 어쩌면 그렇게 비껴갔는지, 틀려도 무지막지하게 틀렸다. 올해만 그런게 아니고 매년 그렇다. 외환위기에서 벗어나 경제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던 2002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국책·민간연구소들이 내놓은 경제성장 전망치는 3%대. 결과는 6%대로 집계됐다. 이걸 과연 ‘예측’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예측이 빗나가다 보니 경제연구소들이 매 분기, 또는 부정기적으로 내놓는 ‘수정 전망’은 이제 필수가 됐다. 올들어 경기 하강세가 두드러지자 한국은행은 지난 4월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4%로 수정했다. 다시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자 7월 -1.6%로 상향 조정했다. 다른 연구소들도 비슷하다. 어떤 연구소는 전망치에 여러 조건을 붙이기도 한다. 일종의 면피 수단이다.

예측이 틀리는 데 대한 해명 내지 변명도 ‘학문적 차원’에서 다양하다. 경제는 변수가 워낙 많은 복잡계(Complex system)다. 때로 하찮은 변수로 여겨졌던 것들이 주요 변수로 급변한다. 경제예측 자체가 변수가 돼 경제를 변화시킨다는 주장도 있다. 이른바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 가장 잘 먹힌다는 얘기다.

이렇게 틀리기 쉬운 게 경제예측이라면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답은 ‘그래도 해야한다’는 것이다. 현대의 경제 시스템은 예측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로 짜여있다. 정부와 기업이 정책을 수립하고 예산을 편성하려면 근거가 필요하다. 다만 그 과정에 정치·사회·문화적 편견이 개입하며, 이로 인해 반목과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이 또 다른 변수가 돼 예측을 틀리게 할 수도 있다.

경제예측은 이처럼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최근 국내 경제에 대한 예측은 틀려도 너무 심하게 틀린다. 정부는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 5%, 한국은행은 4.6%, 연구소들은 3.2%에서 5.5% 까지 다양한 예측을 내놓았다. 역시 내년말쯤되면 어이없는 예측에 민망해할 가능성이 높다. 연구소들의 분발을 기대해 보지만, 결국 이웃들과의 대화에서는 “경제 예측, 믿을 거 못 돼요”라고 말하는 게 정답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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