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2.0]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이진수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 2009.12.07 06:31
혁신은 경제성장에 매우 큰 기여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직전 단계에 있는 국가의 경우 그 중요성이 더욱 크다 하겠다. 지금까지는 다른 선진국들이 이미 겪은 단계를 빠른 시간 내에 따라잡는 것이 과제였다면 앞으로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우리 스스로 헤쳐나가야 할 경우가 많아 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혁신을 촉진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시도에 대해 그 성과를 단기 성공 여부로 평가하기보다 장기적인 기준에 의해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 최근 연구들의 결론이다.

즉, 혁신은 기존 접근방법과 다른 방향을 추구하는 것이어서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단기적인 성과로 새로운 시도를 평가하면 사람들은 혁신을 추구하기보다 실패 확률을 낮추기 위해 기존 방법을 점진적으로 개선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실패는 용인하고 그 성과를 장기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미국 생명과학분야의 연구성과를 고찰한 논문(Azoulay, Zivin, and Manso, 2009, 'Incentives and Creativity: Evidence from the Academic Life Science', NBER)에 따르면 연구비 지원이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프로젝트에 이루어질 때보다는 장기적이고 다소 모험적인 프로젝트에 이루어질 때 그 연구성과가 획기적인 경우가 많다.

미국 생명과학분야에서 장기적인 연구비 지원은 이미 연구능력을 입증받은 소수의 사람을 대상으로 통상 10년 이상 이루어지며 5년마다 연구성과를 평가한다. 하지만 처음 5년 간은 가시적인 성과가 없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추가로 5년간 지원은 계속되고 10년째에 가서야 성과를 보다 엄격히 평가하여 이후 지원 여부를 결정한다.

한편 단기적인 연구비 지원은 일단 3년간 이루어지는데 3년 후 구체적인 성과가 있을 때만 추가적인 지원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지원방법에 따른 연구성과를 비교하면 장기적으로 지원을 받은 연구결과들이 보다 혁신적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다른 예로는 기업의 연구·개발(R&D)을 담당하는 임원의 보수가 기업의 장기적인 성과에 의해 결정될 경우 R&D 결과가 보다 혁신적이었다는 사례를 들 수 있다. (Lerner and Wulf, 2007, 'Innovation and Incentives: Evidence from Corporate R&D') 즉, 임원의 보수가 장기성과에 기반할 경우 그 성과가 조만간 실현되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로는 크게 성공할 수 있는 R&D에 노력할 유인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점은 기업이 파산할 경우 이 기업에 자금을 제공한 채권자의 권리를 보다 잘 보호해주는 국가의 경우 기업에서 이루어지는 혁신의 정도가 오히려 낮다는 연구결과다(Acharya and Subramanian, 2009, "Bankruptcy Code and Innovation", Review of Financial Studies).

채권자의 권리를 보다 잘 보호해주는 독일이나 일본 등에서는 기업이 파산할 경우 채권자의 권리행사에 따라 기업의 활동이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채권자에 대한 보호가 상대적으로 약한 미국 등에서는 기업이 파산하더라도 경우에 따라서 기존 영업을 계속할 수 있다. 따라서 채권자에 대한 보호가 상대적으로 약한 국가에서는 기업은 큰 성과가 기대될 경우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보다 혁신적인 방법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미지의 세계로 출발하는 것에는 늘상 실패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실패할 경우 그 대가가 매우 크다면 사람들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데에 망설이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큰 성공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실패들을 슬기롭게 처리할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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