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의회의 '배신녀'

뉴욕=김준형 특파원 | 2009.10.14 14:55

[김준형의 뉴욕리포트]

메인주는 미국 동부 최북단에 자리잡고 있다.
아름다운 아카디아 국립공원과 더불어 청정해역에서 잡히는 랍스터는 메인의 상징물이자 주민들의 자랑거리이다. 메인주의 자랑이 또 하나 있다. 상원의원 올림피아 스노우(63)의원이다.

↑올림피아 스노우 미 공화당 의원(메인주)
정치적 현안을 두고 민주 공화 양당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마다 그 논쟁의 중심에는 스노우 의원이 있다. '초당적 합의'를 외쳐온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급할땐 스노우의원을 찾는다. 지난 8월 어느날 남편과 함께 휴가길에 나섰던 스노우 의원의 핸드폰이 울렸다. "건보 개혁법에 대해 이야기좀 할 수 있을까요" 오바마 대통령의 목소리였다.

한달여 뒤인 13일(현지시간) 민주당이 마련한 건강보험 개혁법안은 스노우의원의 찬성속에 재무위원회를 통과했다. 상원 본회의에서도 스노우의원이 지지한다면 통과가 가능한 상황이어서 역사적인 건보 개혁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스노우 의원은 7870억달러 경기부양 예산 표결을 포함, 54차례의 투표에서 4분의3을 당론과 반대로 표결했다. 이정도면 '고정간첩'소리를 들을만도 하다. 실제로 일부 공화당원들은 그를 '무늬만 공화당원(RINO:Republican In Name Only)'라고 부른다.
하지만 속으로 끙끙 앓을지언정 공화당 지도부나 의원들은 대놓고 비난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2006년 선거에서 공화당이 참패할 때도 무려 74% 표를 몰아 3선을 안겨준 메인주 유권자들의 지지가 있기 때문이다.
포천지는 그를 지난달 미 정가의 '파워 여성 10걸'에 포함시켰다. 타임지는 2006년 '최고 상원의원 10명'으로 그를 선정하기도 했다.

그는 무작정 당론을 따르지도 않지만 무작정 배신하지도 않는다. 13일 재무위 표결직후에도 "오늘 투표가 내일도 반복될 것으로 보지 말라"며 상하원 절충과정에서 개혁안이 보완되지 않을 경우 민주당 안에 반대표를 던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낙태나 동성애 같은 문제에서는 진보적이지만, 외교 마약 기업 조세 등에서는 매파로 분류될 정도로 강한 보수성향을 갖고 있다.


스노우 의원의 '강단'뒤에는 순탄치 않은 인생 역정이 놓여 있다.
식당을 운영하던 그리스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스노우의원은 7살에 유방암으로 엄마를 잃고, 8살에는 심장병으로 아빠마저 세상을 떠나 고아가 됐다. 독학으로 메인주 주립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기까지 스스로 판단하고, 그 판단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몸에 익혔다.

신혼초기 사고로 세상을 떠난 첫 남편 피터 스노우 전 메인주 의원, 현 남편 존 맥커맨 전 메인주지사의 후광이 없진 않았지만 36년간의 '소신'정치로 지금은 두사람보다 훨씬 유명한 정치인이 됐다. 그는 26세에 정치 입문후 한번도 선거에서 져 본적이 없다.

스노우 의원의 거침없는 운신은 한국의 여의도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만든다.
제왕적 보스를 따라, 혹은 정리정략에 따른 '당론'을 좇아 의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졸(卒)처럼 움직이고, 공천여부에 따라 정치적 생명이 결정되는 마당에 스노우같은 파워풀한 '배신녀'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단 한번의 '배신'으로도 '출당'조치로 정치적 생매장을 당할게 뻔하다.
스노우의원은 보건개혁법안에 찬성표를 던지면서 "역사가 부른다면(When history calls)..."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치인들도 임기중 한번쯤은 입에 올려볼 만한 소리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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