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 1Q84·2009

머니투데이 박종면 편집인겸 더벨 대표이사 부사장 | 2009.10.12 12:37
태국 대만 홍콩을 거쳐 인도를 다녀온 아내가 물었다. 아시아 각국의 공항 서점마다 깔려 있는 책이 뭔 줄 아느냐고.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책이라며, 그가 그 정도의 글로벌 작가인 줄은 몰랐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하루키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판권을 놓고 10여개 출판사가 경합하기도 한 신작 소설 '1Q84'는 출간되자마자 곧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또 다른 인기작 '상실의 시대'는 1989년 초판 발간 이후 20년 만에 200쇄 출판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루키 소설은 특히 20~30대 젊은 층에게 인기다. 대학생들이 즐겨 읽는 책을 조사하면 거의 앞에서 첫번째나 두번째다.
 
베스트셀러라면 기피하는 악습이 있는데, 하루키의 대표소설 몇 권을 읽은 것은 지난 추석 연휴였다. 재미있다. 읽고 난 뒤의 애잔함과 가슴 짠함도 며칠 지속됐다. 소설의 주는 재미와 감동이 이 정도라면 더 바랄 게 없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진지하지만 심각하지는 않은 삶의 태도는 하루키를 왜 '쿨'한 이미지의 작가로 평가하는지 알게 했다.
 
그렇지만 하루키의 소설은 단지 '쿨'한 것으로 끝나진 않는다. 현대사회의 집단적 광기 또는 병리, 폐쇄되고 고립된 현대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하루키의 또 다른 모습이다.
 
소설가로서 세계 문학에 대한 깊은 이해는 당연하다 치더라도 클래식과 재즈, 비틀스에 이르기까지 하루키의 음악에 대한 전문가 이상의 식견과 해석은 덤으로 얻는 보너스라고나 할까.

 
하루키의 소설이 주는 재미나 감동도 크지만 그가 실제로 살고 있는 모습이나 살아가는 자세는 소설보다 더 감동적이다. 문학과 인생에 대한 하루키의 회고록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랬다.
 
매일 평균 10㎞를 달리고, 매년 한번의 마라톤 풀코스와 한번의 트라이애슬론(철인삼종경기)에 도전하는 하루키지만 개개의 기록도, 순위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평가하는가는 모두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결승점까지 완주하는 것이며,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루키는 만약 자신의 묘비명 같은 게 있고, 그 문구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면 이렇게 써넣고 싶다고 했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고.
 
이런 고백도 한다. "바닥에 구멍이 뚫린 낡은 냄비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은 허망한 일이라고 해도 적어도 노력했다는 사실은 남는다. 효능이 있든 없든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대부분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임을 나는 경험칙으로 알고 있다."
 
그의 문학적 성취가 노력과 고통 없이 그저 얻어낸 것이 아님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런 자세로 살아가고 작품을 쓰는 작가라면 그게 한국작가가 아니고 외국작가, 일본작가라 해서 꺼릴 필요는 없다. 얼마든지 권하고 추천할 만하다.
 
맨손으로 김치를 담그고, 와인 대신 막걸리를 달라고 하는 일본 하토야마 총리 부부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또 든다. 선진국이 되고, 아시아의 변방에서 벗어나 세계의 중심에 서려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유치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더 '쿨'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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