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 만드느라 딸 내쫓은 부부의 사연

머니투데이 이경숙 기자 | 2009.04.22 13:04

[하나의 세상에 사는 우리]<6-1>22일은 지구의날..지구 살리고 일자리 만드는 비누

편집자주 | 이해관계가 달라도 우리는 서로 연결된 하나의 존재다. 각자의 의도나 의지와 관계 없이 서로의 삶에 영향을 준다. 다른 나라의 경제위기와 환경파괴는 우리나라의 시장 축소와 기후변화로 이어진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로운 해결법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머니투데이는 2009년 쿨머니 연중 캠페인 '하나의 세상에 사는 우리, 하우(How)'를 통해 지구촌 당면 과제를 해결해나가고 있는 현장을 방문해 그 노하우를 전한다.

서울시 도봉구 쌍문동의 한 3층집. 낮은 울타리 너머 안마당에 살구꽃이 한창 곱다. 회색칠을 한 벽과 흰 현관문, 피라미드 모양 지붕이 동화 속 집 같다.

집 주인인 채수선(53) 손승렬(54) 부부는 이 예쁜 집을 완공하고 1년 뒤인 지난 2006년, 미혼의 두 딸을 내쫓아 버렸다. 어머니 채수선씨가 딸들에게 말했다. "여긴 공장 차려야 한다. 나가 살아라."

당시 23세, 28세였던 두 딸은 집을 떠나 근처에 전셋집을 얻었다. 딸들이 나간 집에 '남다른 직원들'이 들어왔다. 이웃들이 수군댔다. 부부는 개의치 않았다.
↑셈크래프트의 채수선 대표(오른쪽)과 손승렬 이사.

◇와인 같은 천연비누로 특허 받아=그로부터 3년 후. 딸들을 쫓아낸 부부와 '남다른 직원들'은 허브와 한방재료로 천연비누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미용비누 조성물 및 그 제조방법'에 대한 특허도 받았다.

회사 이름은 '셈크래프트'. 지난해 2억여 원의 매출도 올렸다. 채수선 대표는 직접 개발한 비누 자랑을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연극배우 신철진씨 아세요? 2007년에 올해의 연극인상을 받은 분이예요. 이 분이 우리 곡물비누 쓰시고는 머리 빠지는 게 멈췄대요. 비행기 승무원들이 우리 미백비누를 쓰더니 클렌징폼을 안 써도 화장이 다 지워진다고 신기하다고 해요."

비결은 '숙성'이다. 셈크래프트는 만든지 최소 8주가 지난 비누만 판매한다. 그래야 자연 글리세린이 충분히 생긴단다. 채 대표는 "글리세린에는 보습기능이 있어 아토피나 피부 건조증, 가려움증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량 생산하는 일반비누엔 글리세린이 인공적으로 첨가된다. 천연재료로 만드는 셈크래프트는 숙성을 통해 글리세린이 자연스레 생겨날 때까지 기다린다. 인공향, 방부제, 합성 계면활성제도 넣지 않는다.
↑셈크래프트는 한방,허브재료로
천연비누를 만들어 특허를 받았다.
(맨 위) 포스트잇에 만든 사람과
제조일을 적어 품질을 관리한다.
(아래)

"어떤 분이 전화해서 '비누 받고 한참 지나 썼는데 끝내주더라'고 하세요. 우리 비누는 오래 묵혔다 쓸수록 좋아요."

셈크래프트 비누는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어진다. 직원들은 각자 전문 영역별로 작업을 분담하고 있다.

정만영 씨(39)는 상황버섯, 편백, 로즈마리, 식물성 오일 등 각종 재료를 최상의 상태로 관리하는 일을 한다. 김태식 씨(27)는 천연재료들을 전자저울로 신중하게 측정해 비누 원액을 만드는 일을 담당한다.


이정배 씨(29)는 잘 굳힌 비누를 일정한 크기로 잘라 제조일시를 적고 정치영 씨(32)는 8주의 숙성 기간이 지난 비누들을 포장한다. 특히 정 씨의 손놀림은 채 대표가 "손이 보이지 않는다"고 칭찬할 정도로 빠르다.

◇남다른 직원들 "함께 있으니 다르지 않아요"=1층 작업장에서 셈크래프트 직원들을 만났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일하면서 "퇴근 언제 할까" 수다 떠는 모습이 여느 공장 직원들과 다르지 않았다. 어디가 남 달라 이웃들이 수군댔을까. 채 대표의 남편인 손 이사가 설명했다.

"직원 12명 중 6명이 정신지체예요. 뇌병변 복합장애가 3명, 자폐가 2명, 정신장애가 1명이구요."

셈크래프트는 한마음복지문화원이 만든 장애인일자리 사업장이다. 채 대표는 1989년에도 친구들과 4만원을 모아 장애인들과 한지 봉투, 가방, 염주를 만들어 팔았다.

1990년대 후반에 중국 제품이 몰려오자 가격 경쟁에서 밀렸다. 장애인들의 일자리를 유지해주려면 중국산을 이길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상품이 필요했다. 채 대표가 '딸들을 내쫓은' 건 그 때문이었다.

손 이사는 묵묵히 월급으로 후방 지원을 하다 한화증권에서 이사로 퇴임한 뒤 부인 사업에 합류했다.

"(채 대표가 장애인 자활사업 시작할 때) 내가 돈 벌어서 줄테니 다른 곳에 손 내밀지 말라고 했어요. 채 대표가 신세지는 걸 못 참는 사람이에요. 하나 받으면 몇 배로 주려고 하죠."

부부는 31년 전 세방기업에서 입사 동기로 만나 결혼했다. 1970년대에 채 대표는 루이비통 가방을 들고 샤넬 옷을 입던 부잣집 딸이었다. 손 이사는 가난한 시골집 장남이고 그의 부친은 청각장애인이었다. 결혼 후 채 대표는 시아버지한테 입모양으로 구화를 가르쳤다.

"유난히 많은 죽음을 봤어요. 부자였던 할머니, 가난했던 시아버지, 장애인들....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모두 죽으면 제 몸도 못 가져가요. 아무리 귀한 사람이었어도 똑같아요."

채 대표는 하루 2~3시간을 자면서 일한다. 동아제약 화장품개발 선임연구원을 지낸 류지형 아이내추럴 대표 등 전문가들을 총동원해서 제품력 향상에 더욱 힘을 쏟고 있다.

셈크래프트의 제품 설명 어디에도 장애인이 만들었다는 문구는 전혀 들어가 있지 않다. 동정이 아니라 필요, 구걸이 아니라 품질로 소비자의 마음을 얻겠다는 의지다
.

"비누 만들어 팔면서 애들(직원들)이 전보다 당당해졌어요. 자폐인 아이도 여기 오면 자기가 먼저 딴 사람에게 말 걸어요. 우리는 돈 벌어서 더 많은 애들한테 떳떳한 일자리를 주고 싶어요."

셈크래프트의 천연비누는 온라인쇼핑몰(www.semcraft.com)에서 살 수 있다. 친환경쇼핑몰 이로운몰(www.erounmall.com)은 셈크래프트 제품의 판매수익 중 10%를 한마음복지문화원에 기부한다. 셈크래프트를 소개한 mtn 동영상 및 구매안내는 이로운블로그(eroun.blog.moneytoday.co.kr)에서도 볼 수 있다.
↑셈크래프트 임직원들.ⓒ이경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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