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키는 169.5입니다"로 얻는 덤

황인선 KT&G 북서울본부 영업부장 | 2009.04.21 12:05

[마케팅 톡톡] 169.5의 커뮤니케이션

여자 후배가 키를 묻기에 "169.5"라고 답했습니다. 그랬더니 후배가 "에이, 170이라고 하세요." 그래서 말했습니다. "170이라고 하면 뭐라고 생각할건데?" 그랬더니 히히 웃으면서 "당근 167이나 8정도로 보겠죠."

"169.5라고 하면?" "'응? 의외네'하겠죠." 더 물었습니다. "그리고 더 뭐 없어?", "뭐가요? '어! 이사람 솔직하네'라고 생각하겠죠." "오라! '169.5의 커뮤니케이션' 그거 말 된다." 이게 169.5라고 말하는 사람이 받는 보너스입니다.

내가 아니라 상대방이 알아서 더 쓰게 만드는 거 중요합니다. 많이 인용되는 사례인 미국 렌터카업체 에이비스는 "우리는 1등이 아닙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합니다"했더니 사람들은 에이비스를 2위사로 알았죠. 사실은 3위였는데.

그 후 에이비스는 실제 2위로 성장했습니다. 미국의 한 회사가 옥외광고를 했는데 그걸 본 사람들의 전화가 빗발쳐서 다시 보니 아뿔싸! 광고 문구에 철자가 하나 빠졌던 겁니다. 그걸 본 사람들이 틀렸다고 난리를 쳐서 주목효과가 엄청 올라갔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빈 공간을 스스로의 힘으로 채워 넣으려고 합니다. 게쉬탈트(형태) 심리학에서는 사람들은 몇 가지 불완전한 요소를 보고도 일정한 의미를 만들어내는 심리경향을 보인다고 주장합니다.

이어령 선생도 '젊음의 탄생'에서 '카니자(Kanizsa) 삼각형'을 예로 들면서 3개의 팩맨이 하나의 도드라진 삼각형을 만드는 착시현상을 말합니다. 실제로는 그 삼각형이 없는데도. 사람이 스스로 채워 넣는 연상의 힘인 거죠. 그런데 문제는 이런 채워 넣기가 요즘 이상한 곳으로 발달한다는 겁니다.

◇넘겨짚기의 달인들

스토리텔링이 마케팅에서 화두다 보니 너도 나도 프로작가들을 써서 사용자제작콘텐츠(UCC) 만들고 스토리텔링을 하는데 잘 안 통합니다. 왜 그럴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확실한 하나는 소비자가 스스로 채워넣을 여백을 안주기 때문입니다. 꽉 차게 잘 짜여 있어서 소비자들은 오히려 그걸 덜어내고 벗겨내려고 하죠.

죽이는 미인을 보고 '어디어디에 칼 댔을까' 벗겨내듯이. 넘겨짚는 겁니다. PR과 브랜드화 시대의 작용과 반작용인지 요즘 넘겨짚는 문화가 꽤나 만연한 것 같습니다.

- S라인이 "저 자연산인데요"하면, "돈 좀 썼겠는데"

- 서울 모터쇼 홍보기사를 보고도 "자동차가 불황인데 볼 것 있겠어"
- 몇 백억 배당을 받지 않겠다는 모 대표의 말에도 "다른 식으로 받겠지"
- UN안보리 로켓발사로 대북 강경책 운운 하면 "중국, 러시아가 짱구요?"

이런 넘겨짚기 문화로 인해 진실, 권위모드가 안 먹힙니다.

선진국의 정의가 무엇이냐고 물을 때 선진국은 정직이 시스템이 된 나라라고 정의되는데 절대 선진국이라고 믿었던 미국은 9.11테러, 네오 콘의 독선, 금융파생상품의 신화 붕괴로 정직성을 의심받습니다.

우리도 정부가 경기반전 가능을 발표하면 웁스! 주가폭락, 북한 로켓이 발사되니 어라! 주가 상승. 긍정의 패러디보다 불신과 비하의 패러디가 더 자연스럽게 먹히고 공식매체보다 유비통신을 더 신뢰합니다.

◇나라島, 그 섬으로 가야지

광고, 홍보, 포지셔닝, 이미지, 스펙 만들기, 엽기, 막장... 실체와 유리된 그 성형의 커뮤니케이션들이 이제 불신의 부메랑으로 우리를 때립니다. 학력 인플레만큼이나 커뮤니케이션 인플레가 심해졌습니다.

통하라, 커뮤니케이션하라 했더니 이놈이 삐딱하게 크면서 진실을 캐려는 사회적 코스트가 꽤나 올랐습니다. 시청률, 조회 건수, 주목도를 노리는 자극적 콘텐츠나 오보가 많아지고 성형이 심해져서 뭐가 진실인지 모르겠고 넘겨짚기도 이젠 피곤합니다.

그래서 나라島, 섬으로 가야겠습니다. 조금 덜 꾸미고 조금만 덜 욕심내는 섬. 거기서 나라도 169.5라고 말하면서 살아야겠습니다. 170의 키가 부럽기는 하지만 0.5만 조금 정직해지면 169.5까지는 믿어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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