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 변양호…'유죄 추정'의 고통

머니투데이 박재범 기자 | 2009.01.15 16:00

[제비의 여의도 편지]

# 2005년 10월. 천정배 법무장관과 김종빈 검찰총장이 한 판 붙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은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구속 수사 여부를 놓고서다.

천 장관은 '불구속 수사 지휘권'을 발동, 검찰총장의 뜻을 꺾었다. 이례적 조치였던 만큼 여파는 컸다. 하지만 대립의 핵심이 '인권'은 아니었다.

이념 갈등이 주였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염두에 둔 천 장관의 행보란 정치적 해석이 곁들여지며 보혁간 대립이 심화됐다. 국가보안법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보수는 '구속'을, 진보는 '불구속'을 외쳤을 뿐이다.

# 2008년 4월. 삼성그룹 비리 의혹을 수사해온 조준웅 특별검사팀은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건희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돕기 위한 삼성그룹의 조직적 개입, 이 회장의 비자금 차명 관리 등을 주요 혐의로 나열했다.

그러면서 이 회장을 불구속 기소했다.(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이와 관련, 사회적 논란이 불거졌다. 진보는 "면죄부 주기"라며 구속 수사를 주장했다. 보수는 "검찰이 종전과 달리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맞섰다.

여기서도 한 사람의 '기본권'보다 '재벌'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구속과 불구속으로 갈렸다.

# 우리 정서가 그렇다. 보수건 진보건, 식자층이건 필부건 다르지 않다. "불구속=무죄, 구속=유죄"란 인식에 붙잡혀 있다. 구속이 수사의 '수단'이라기보다 '처벌'로 받아들여지는 탓이다.

'형사 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는 헌법 조항은 교과서에나 있는 얘기로 치부된다. '구속=유죄'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에선 오히려 유죄 추정의 원칙이 가깝다.

이 때문에 구속된 후 재판에서 무죄를 받더라도 돌이킬 길이 없다. '여론의 유죄 확정 판결'은 이미 난 터여서 평생을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 15일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변 전 국장은 현대차그룹의 '계열사 채무탕감 로비 의혹'과 관련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힘들게 '누명'을 벗었다.

그가 처음 구속됐던 게 2006년 6월12일이었다. 그 때 구치소에서 보낸 날이 145일이다. 2심 유죄 판결로 법정 구속된 이후 보석으로 풀린 이날까지 구치소에서 지낸 날도 147일이다.

구속기간만 모두 10개월에 이른다. 사실상 징역 1년에 가까운 형벌을 받은 셈이다. 그 기간 동안 그와 가족들이 받은 온갖 고통을 말할 다 표현할 수 없다.

# 더 큰 고통은 그에게 내렸던 '세상의 유죄 판결'이다. 대법원이 죄인 딱지를 뗐더라도 '구속'으로 남은 그 흔적까지 지워지진 않는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구속'은 법원의 판결보다 더 무겁고 무섭다. '주홍글씨'처럼 평생을 짓누른다. '무죄 추정의 원칙'에서 벗어나 구속을 신문 1면에 싣는 언론의 관행도 큰 잘못이다.

지난해말 구치소에 있는 그에게 편지로 "경제도 어렵고 세상사는 게 참 힘든 것 같아요"라고 푸념을 했다.

돌아온 답은 이랬다. "세상에는 어려운 사람도 많고 억울한 사람도 많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대로 '유죄 추정'을 받고 있는 이들이 많을 지 모른다. 이제라도 헌법으로 돌아가 '구속'에 신중하자. '구속'으로 본때를 보여주기보다 유죄 판결 이후 중형을 주는 게 법치 질서 확립에 더 맞다. 그게 선진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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