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래틀'의 희망 '두다멜'의 꿈

머니투데이 박종면 편집인겸 더벨 대표이사 부사장 | 2008.12.01 12:18
11월21일 밤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브람스 교향곡 3번과 4번 연주가 끝나고 있었습니다. 2000여 청중은 기립박수와 "브라보"로 열렬히 화답했습니다.
 
앙코르곡 연주 없이 베를린필 단원들과 지휘자 사이먼 래틀이 무대에서 떠난 뒤에도 한동안 남아 악기를 열심히 닦는 젊은 단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기 몸만큼이나 큰 더블베이스를 껴안고 제일 뒷자리에서 연주하던 청년 단원이었습니다.
 
악기를 닦던 청년 연주자에게 클래식 음악평론가 박종호씨가 다가갔습니다. 그는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운 채 당신 연주가 최고라며 청년 단원을 격려했습니다. 그 단원은 환하게 웃었습니다.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출신의 23세 청년 에딕슨 루이즈, 5년 전 베를린필 역사상 최연소 나이로 입단한 앳된 더블베이스 연주자입니다.

에딕슨 루이즈는 10년 전만 해도 하루 세끼를 먹는 것조차 어려웠던 카라카스 빈민가의 불우한 소년이었습니다.
 
그가 꿈을 키우게 된 것은 '엘시스테마'라는 저소득층 청소년들을 위한 음악교육 프로그램 덕이었습니다. 베네수엘라의 한 경제학자가 설립한 엘시스테마는 1975년 빈민가 청소년들에게 오케스트라 음악교육을 하기 위해 시작돼 지금은 220개 오케스트라에서 25만명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연간 예산만 3000만달러 정도 됩니다.

☞ 두다멜 지휘로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 4악장 듣기


엘시스테마가 배출한 인재에는 에딕슨 루이즈 외에 사이먼 래틀 같은 세계적 지휘자의 계보를 이을 젊은 차세대 주자 구스타보 두다멜이 있습니다. 두다멜이 이끄는 엘시스테마 출신으로 구성된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도 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두다멜과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의 최대 후원자는 사이먼 래틀과 베를린필입니다. 래틀은 이들에게서 클래식 음악의 희망을 봤다고 말합니다. 클래식 음악은 소수 부유층 영재를 위한 전유물임을 전면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소비하는 층도 중산층 이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두다멜과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는 클래식 음악의 이런 한계를 단숨에 극복하게 했습니다.
 
래틀과 베를린필이 두다멜과 시몬 볼리바르로부터 클래식 음악의 희망을 읽었다면 두다멜과 시몬 볼리바르는 래틀과 베를린필을 통해 꿈을 현실로 바꾸고 있습니다. 두다멜은 말합니다. "베네수엘라에서 가능한 일이라면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요. 희망을 읽고 꿈을 버리지 않는다면 극복하지 못할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는 메시지입니다.
 
시절이 몹시 어렵습니다. 혼란스럽습니다. 주역을 빌려 말하자면 '천지비'(天地否)와 '산지박'(山地剝)의 상황입니다. 사방이 소통되지 않고 막혀 있는 것이지요. 돈이 돌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정책당국간, 정책당국과 국민들 사이에 소통이 되지 않지요. 천지가 불통(不通)이고 만물이 불교(不交)하다 보니 진실을 가장한 거짓이 난무합니다. '미네르바 신드롬'은 별게 아니지요.
 
주역은 그러나 절망이 곧 희망의 단초임을 말합니다. 모든 걸 빼앗기고 이로울 것은 전혀 없는 '산지박'의 상황을 넘어 그 다음의 괘인 '지뢰복'(地雷復)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지뢰복'은 친구가 찾아오고 봄이 다시 시작되는 국면입니다.
 
두다멜과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가 이달 중순 2차례 내한공연을 갖는다고 하네요. 그들의 꿈과 희망읽기에 동참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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