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금융도 삼성한테 배워라

머니투데이 박종면 편집인겸 더벨 대표이사 부사장 2008.11.17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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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 외환위기와 그후 대우사태, 신용카드사태를 겪으면서 금융권에선 대대적인 인적 청산이 이루어졌다. 특히 은행의 경우 대란의 책임을 지고 토종 CEO가 무더기로 자리를 떠나야 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이들의 자리를 이은 게 외국계 출신, 투자은행(IB) 및 구조조정 전문가 등이었다. 금융권 요직은 이들이 대부분 차지했다.



10년이 흐른 뒤 다시 위기를 겪으면서 드러난 사실은 외국계 출신 중에, IB 전문가라고 목에 힘주던 경영자 중에, 구조조정 전문가라고 자랑한 CEO 중에 의외로 함량미달이 많다는 점이다.

환란을 불러일으킨 토종 경영자와는 차원이 다른 전문경영인이라며 거액의 연봉에 엄청난 스톡옵션까지 줬는데 지금 위기를 맞고보니 그저 아까울 뿐이다. 앞으로 점차 드러나겠지만 이들이 저질러놓은 천문학적 부실은 누가 치워야 할지 걱정이다.



위기는 거품을 걷어내고 진짜와 가짜를 가려낸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금융그룹별로도 이번 위기로 실력 있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가려지고 있다.

미래에셋금융그룹은 출범 10년 만에 한국금융업을 평정하는 듯했다. 지난해 '인사이트펀드'를 출시해 한달 만에 4조원을 모을 때는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꼭 1년 뒤 투자자들에게 시달리고, 감독당국으로부터 조사받고, 구조조정까지 각오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항룡유회(亢龍有悔), 하늘 끝까지 날아오른 용은 후회한다고 했다.

비금융 계열사와 분리돼 1등 금융그룹으로 도약을 꿈꾸던 한국투자금융지주도 리먼브러더스 파생상품 손실과 같은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있다.


위기를 겪으면서 진가를 제대로 보여주는 금융기업군도 있다. 신한금융그룹이 우선 그렇다. 계열 증권사 등에서 일부 문제가 없진 않지만 확실히 그들은 일류다. 개인적 호불호를 떠나 최고경영자로서 라응찬 회장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또 하나 주목할 곳이 있다.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증권 삼성카드 등 삼성계열 금융사다. 이들도 예전에는 국내 다른 금융사와 다를 게 없었지만 이젠 완전히 달라졌다. 위기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1등 금융그룹으로 탈바꿈했다.

외환위기와 대우사태 등을 겪으면서 삼성은 그룹 구조조정본부 지휘 아래 계열 금융사에 양적 팽창을 포기하는 대신 리스크 관리를 제1 경영원칙으로 삼도록 강제했다.

그 결과 삼성생명은 시장점유율이 크게 떨어져도 변액보험을 판매하지 않았다. 삼성화재도 최근까지 온라인 자동차보험에 진출하지 않았다. 삼성증권은 지난해 '인사이트펀드' 열풍이 불 때 영업맨들과 싸우면서도 지켜보기만 했다. 카드사태 때 혼이 난 삼성카드는 현대카드 등이 그렇게 외형을 늘려도 내실만 다졌다.

삼성 금융계열사들의 탐욕 억제와 정도경영은 이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삼성'이라는 브랜드파워에 건전성까지 갖추면서 돈과 고객이 몰려들고 있다.

금융은 오버하면 망한다, 잔치를 매일 하다보면 남는 건 비만과 빚뿐이라는 원칙을 충실히 지킨 덕분에 삼성은 제조업에 이어 금융업에서도 일류로 올라섰다. 제조업이 금융업을 하면 망한다는 통설도 보기좋게 깨버렸다.

얼마 전 해체된 삼성 구조조정본부 멤버가 다시 모여 국내 금융계 CEO들을 강남 신사옥으로 불러모아 금융업이란 이렇게 경영하는 것이라고 강의를 한번 하면 어떨까.

아예 이 참에 늘 위기의 진원지가 되는 은행업을 삼성이 한번 해보도록 맡기면 어떨까. 이젠 금융도 삼성에 배워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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