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순간을 조심하라

김기홍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 | 2008.12.16 12:31

[성공을 위한 협상학]'니블링'을 경계하라

"60일 어음으로 해도 괜찮죠?" 상대방과의 지리한 매매협상을 거의 마무리지었다. 그래서 당신은 느긋하게 협상 결과를 담당 상무에게 보고하려는데, 느닷없이 상대방이 한 마디 던져온다. 가격 조건에 합의했으니 이제 그 가격을 현금이 아닌 60일 어음으로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인다. "우리 업계에서는 늘 이런 식으로 하고 있으니 이해하셔야죠."

자 당신은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 1)상대방이 관행이라고 주장하니 어쩔 수 없이 들어주어야 한다. 2)한 마디로 절대 안된다고 거절한다. 3) 60일 어음으로 할 경우에는 계약조건을 수정해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말한다. 칼럼의 나머지를 읽기 전에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할지 한 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계약체결을 앞 둔 마당에 상대방이 대금지급 조건에 약간(?)의 융통성을 부여해달라고 부탁한다. 들어주자니 영 불편하고 들어주지 않자니 협상 자체가 무효로 될까봐 불안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무심결에 이렇게 묻는다. "정말 그거 관행 맞아요?"

만약, 당신이 이렇게 물었다면 상대방은 솟아오르는 스프링처럼 이렇게 답할게 틀림없다. "그럼요. 틀림없으니 확인해 봐요." 마음 약한 당신. 관행이라니 어쩔 수 없지, 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만다. 하지만, 담당 상무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 유리하게 계약했습니다. 단, 대금은 업계의 관행대로 60일 어음으로 받기로 했습니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이 아닌가. 그러니 당신의 부하가 이렇게 보고한다면 그 협상에는 무엇인가 문제가 있을지 모른다.

그 다음 두 번째 대응. 협상과정에서는 일언반구 말도 없이 가격조건에 다 합의해 놓고서는 느닷없이 60일 어음으로 하자니 이것은 말도 안되는 요구 아닌가. 그래서 당신은 단호하게, 한 마디로 거절한다. 자, 거절한 것은 틀린 행동이 아니다. 하지만, 협상이란 상대가 있는 법인데 비록 상대방의 요청이 다소(?) 어처구니 없더라도 지나치게 단호하게 말하는 것은 재고해봐야 하지 않을까.

더구나 곧 계약서에 서명을 앞두고 있는 판이니 말이다. 더 나아가 상대방과의 거래가 이번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질 것이라면 60일 어음으로 하자는 상대방의 제의를 무차별하게 거절한 것은 조금 지나치다. 다시 말해, 거절한 것은 맞지만 그 방법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그러니 답은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답은 세 번째다. 계약을 앞두고 대금지불 조건을 관행이라는 명분 하에 바꾸려 하는 것은 협상과정 자체를 부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니 당연히 ‘안된다’고 해야 한다. 하지만 만면에 웃음을 띄면서 말해야 한다. 웃으면서 만약 60일 어음으로 결제하려면 계약조건을 바꿀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해야 한다. 그게 협상이다.


이처럼 쉬운 사례를 드는 것은 이런 일이 협상의 마지막 단계에서 종종 일어나기 때문이다. 즉, 협상의 마지막 단계에서 상대방이 협상의 기본 골격은 바꾸지 않으면서 사소한 몇 가지를 자기에게 유리하게 바꾸려는 시도를 할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니블링(nibbling)이라고 한다. 사소하게 하나씩, 혹은 조금씩 합의를 갉아먹는 것이다.

양복을 사면서 느닷없이 넥타이 하나를 추가로 달라고 하는 것, 한 달 용돈이 5만원인데 아들 녀석이 느닷없이 이번 달은 휴일이 없기 때문에 차비로 5000원 더 달라고 하는 것 등이 이런 사례다. 더 크게 말하면 전투기를 사기로 약속하고선, 계약단계에서는 미사일 하나만 선물로 달라고 말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선의로 해석하는 사람이라면, 다시 말해 협상가가 착하고 좋은 사람일수록, 이 니블링은 치명적인 독약이 될 수 있다. 협상이 타결된 마당에 작은(?) 것 하나 정도야, 저렇게 요청하는데, 들어줄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결국에는 협상의 기본골격 자체를 무너뜨린다는 말이다.

떡을 가득해 놓고 어머니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자매의 방문 앞으로 호랑이가 와서 말한다. 떡 하나만 다오. 어머니가 오기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자매는 당연히 호랑이에게 떡을 준다. 호랑이는 자꾸 요구하고 자매는 자꾸 떡을 주고ㆍㆍ. 자매가 떡을 다 주고나면 마지막에는 무엇을 주어야 하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협상의 쟁점에 기분 좋게 합의한 마지막 순간, 상대방이 혹시 니블링을 하지 않을까 조심해서 살펴야 한다. 무슨 제의를 하건, 그것이 니블링의 냄새가 나거든 가급적 이빨이 훤히 보일 정도로 (이게 참으로 중요하다) 웃어라. 그러면서 말하라. ‘그건 곤란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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