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가 외동딸과 결혼하고 싶다면

김기홍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 2008.10.10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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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을 위한 협상학]협상의 ‘과정’과 ‘구조’에 대해

명문가 외동딸과 결혼하고 싶다면


어떻게 하면 협상을 잘 할 수 있습니까? 협상에 대한 강의를 하거나 개별적인 상담을 할 때 흔히 나오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에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협상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 이상의 비법은 없습니다.’

진부한 말이기는 하지만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 다음과 같은 한 마디를 더 보태는 것이 정말 옳은 답일 것이다. ‘협상을 잘하기 위해서는 현재 진행 중인 협상이 ’과정‘의 성격이 강한 것인지, ’구조‘의 성격이 강한 것인지 파악해야 한다.’ 머리 아프게 웬 과정, 웬 구조?



과정(process)으로서의 협상이란 협상 상대방과 가격을 주고 받는 과정, 혹은 협상을 진행해 나가는 과정을 말하며, 자신의 몫은 그 과정에서 자신이 발휘하는 협상력에 의하여 결정된다. 다시 말해, 자신의 협상력과 상대방의 협상력이 이 몫을 결정할 뿐 그 외의 요인은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가령, 해외여행 중 당신은 선물을 사러 기념품 가게에 들어선다. 둘러보다 마음에 드는 수공예품을 발견한다. 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다. 협상을 강조하는 이 칼럼이 기억나 당신은 드디어 협상하기 시작한다.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당연히 이런 협상은 ‘과정'으로서의 성격을 띠게 된다. 그래서 당신은 다양한 협상전략을 구사한다. 상대방의 가격을 듣고 일부러 놀라는 표정을 지어도 좋고, 다른 곳에서는 더 싼 가격에 팔더라는 거짓 정보(?)를 흘려도 좋고(사실 거짓이 아닐 경우가 많다),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이 가격에는 살 수 없다고 말해도 좋고(가급적 퉁명스러워야 한다), 여러 개 살테니 깍아 달라고 해도 좋다(전형적인 패키지 딜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당신의 협상력이 이 수공예품의 가격을 결정할 따름이다. 물건을 파는 상인이 더 노련하고 협상에 능하다면 당신은 비싼 가격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

마음에 드는 여인을 발견했다. 저 여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당신은 신세대이니 우선 S전자 핸드폰을 선물할 수도 있고, 섹시 웨이브를 연출함으로써 그녀의 이목을 끌 수도 있고, 페라리 차를 렌트하여 ‘야 타!’ 하면서 귀여운 객기(?)를 부릴 수도 있고, 아니면 고전적인 꽃 선물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도 있다.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건, 그렇지 못하건 그건 전적으로 당신 하기 나름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협상 ‘과정’의 문제다. 선수 버금가는 협상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을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 그렇지 않은가? 오직 당신 만이 문제일 따름이다.

하지만 어떨까? 당신이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미국의 외교관과 자동차 시장개방 문제를 협상한다고 하자. 어떻게 생각하는가? 협상을 다룬 다양한 칼럼이나 책에서 다룬 현란한 협상전략을 발휘한다면 당신은 이 협상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물론이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

당신이 아무리 협상을 잘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과정’으로서의 협상에 대한 것일 뿐, 이 협상의 근본 ‘구조(structure)'를 바꿀 수 없다. 이 협상의 근본 구조는 ‘미국이 한국에 자동차 시장개방을 요청했고, 한국이 어떤 형태로든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그래서 미국이 한국에 자동차 시장개방을 요청하는 협상에서 당신이 아무리 ‘과정’으로서의 협상에 능란하다 하더라도 자동차 시장개방을 하지 않는 결과를 얻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할 수 있는 최대의 성과는 시장 개방의 폭을 가급적 우리에게 유리하게 조절하는 것 뿐이다. 한국과 미국의 자동차 시장개방이라는 ‘구조’가 당신이 협상의 ‘과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협상력의 효과를 제약하기 때문이다. 협상의 과정에서 당신이 사용하는 협상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 협상력마저도 협상 구조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것은 어떨까? 마음에 드는 여인을 발견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부유한 명문가의 외동딸이다. 자 당신은 어떻게 할까? 당신은 여자 문제에 관한 한 선수 버금가는 협상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과정’에는 자신있다. 하지만, 상대는 당신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영역에 있다. ‘구조’적으로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이 칼럼대로라면 당신은 ‘구조’적 제약 앞에 눈물을 머금고 돌아서야만 한다. 하지만, 인생살이가 그런 것처럼 협상에도 예술의 측면이 있지 않은가. 그 구조적인 제약에도 불구하고 간혹 그 구조를 뛰어넘는 사례가 발견된다. 미국과의 협상에서 한국도 드물게는 그 구조를 뛰어넘는 경우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당신이 그런 주인공이 되고 싶다면 그 구조를 뛰어넘는 힘이 무엇인지는 스스로 생각할 일이다. 그게 무엇일까?(협상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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