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소신정책' 2년만에 무죄

머니투데이 김익태 기자, 서명훈 기자, 심재현 기자 | 2008.11.24 21:26

법원 "외환은행 헐값매각 아니다" 판결

"국가 위기 상황인데 욕먹을 각오를 하고 나서는 후배들이 없어요."

경제부처 고위 관료를 지낸 한 인사는 최근 관료들의 '몸사리기'에 장탄식을 했다. 그렇다고 "후배들만 탓할 수도 없다"고 말한 그는 "변양호 사건은 공무원 사회에 평생 씻지 못할 '주홍글씨'가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금융관료들은 지난 2년간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 당하는 수난을 눈앞에서 지켜보면서 '소신 있게 일해봐야 나만 손해'라는 교훈을 익혔다.

론스타와 결탁해 외환은행을 헐값에 매각한 혐의(특경가법상 배임) 등으로 기소된 변 전국장이 2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이규진 부장판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아직 1심 판단이긴 하지만 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는 불법이 아니라며 '면죄부'를 준 것이다.

재판부는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 변 전 국장이 임무를 위배하거나 외환은행을 더 높은 가격에 매각할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려워 손해 발생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종선 변호사에게서 3000만원을 받은 혐의도 직무관련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2006년 벌어진 변 전국장의 기소는 한국 관료사회에 심각한 무기력증을 초래했다.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앓은 본인의 고초는 말할 것도 없다. 그는 "관료의 책무는 위기를 예방하고 위기가 발생하면 조기 진압하는 것"이라며 "외환은행 매각은 20년 공직생활에서 가장 잘한 일로 생각한다"고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검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일찌감치 장관감으로 꼽힐 만큼 유능했던 관료가 구속되자 후배들은 크게 움츠러들었다. "당시 상황으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강변했지만 감사원까지 가세해 금융당국을 탈법자로 둔갑시켰다.

관료들은 "과거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내린 정책적 결정에 사법적 책임을 묻는 게 말이 되느냐"며 허탈함을 넘어 분개했다.


이른바 '변양호 신드롬'이 만연하자 공무원들의 책임회피와 몸사리기 등의 부작용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임기 중 누구 하나 민감한 결정을 내리려 하지 않았다. 관료들끼리 불신의 골도 깊어졌다. 부하들은 상관의 지시를 꼼꼼히 기록하는 습관을 갖기 시작했다. 변 전국장처럼 욕 먹을 각오를 하고 소신껏 일을 처리했더니 책임만 뒤집어쓰는 것을 목격한 탓이다.

추후 문책을 두려워해 책임질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경제정책의 타이밍이 늦어졌다. 정책 결정의 속도가 떨어지자 시나브로 경제 전반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최근 금융위기 상황 속에서 쏟아지는 정부 정책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는 것도 '변양호 신드롬'의 연장선으로 봐야 한다.

금융당국 내부에서 조차 "어느 누구하나 총대를 메지 않으려 한다"는 푸념이 나오고 있다 외환은행 매각을 둘러싼 논란과 진통으로 국력을 소비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론스타 문제는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헐값' 매각 논란은 결국 외국 투자회사가 큰 이익을 남겨 고깝다고 재산 처분을 막아야 한다는 사고에서 출발한 측면이 크다. 일각에선 최근 외환은행 주가를 보면 '헐값'도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주가하락과 환율급등으로 론스타가 챙길 수 있는 몫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이런 결론을 예상은 했지만 도대체 2년간 한 일이 뭐냐"고 허탈해 하면서도 "앞으로 기업 구조조정을 포함한 정부 정책의 발목을 잡아온 큰 짐을 덜게 됐다"며 크게 반겼다.

한편 법원은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과 이달용 전 외환은행 부행장의 배임혐의에 대해서도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외환은행 헐값매각 사건 관련자들의 무죄 판결에 대해 항소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즉각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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