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판매, '시장의 보복'이 두렵지 않은가?

박영암 시장총괄데스크  | 2008.11.12 11:47

[마켓와치]美 금융사 "고객신뢰 잃으면 모든 것 잃는다" 엄격관리

지난 2006년11월 자산운용협회의 주선으로 미국 현지 피델리티와 메릴린치를 방문했다. 2004년부터 국내 시중은행에서 펀드를 대량 판매하면서 사회문제로 부상한 '불완전 판매(Misselling)'를 미국 금융사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취재하는 자리였다. 당시 만난 피델리티와 메릴린치의 고위 임원들은 한결같이 "회사의 가장 큰 자산인 고객의 신뢰성을 훼손하는 어떠한 불완전 판매에 대해서도 단호히 반대한다"고 이구동성으로 강조했다.

뉴욕 메릴린치 본사에서 만난 로버트 자켐 웰스 매니저먼트 담당 전무(당시 직위)는 “미래 기대수익률이나 펀드안정성에 대한 과장된 선전은 고객과의 합리적 공감 형성을 중시하는 회사방침과 배치되기 때문에 엄격한 제제조치를 가한다"고 밝혔다. 특정 조건을 충족하면 연 몇%대의 수익률은 가능하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자체가 고객이 잘못된 기대를 갖게 한다며 엄격히 금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불완전판매를 하다가 적발될 경우 경고 정직 해고 등 사내 징계조치는 물론 전미증권업협회에 통보, 재취업 기회를 원천 봉쇄한다"고 말했다. 불완전 판매로 고객이 피해를 입을 경우 판매지원 뿐만 아니라 회사까지 피소당할 수 있어 엄격한 사전사후 조치를 취한다는 설명이었다.

피델리티도 불완전판매에 대해 엄격한 통제를 가하고 있었다. 당시 알 리비조 피델리티인베스트먼트 뉴욕지역총괄 마켓매니저는 “피델리티의 가장 큰 자산인 고객의 신뢰성을 유지하기 위해 불완전판매를 엄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즉 지배구조가 불투명한 운용사의 펀드를 추천하거나 판매보수를 올리기 위해 고객의 재무상황을 무시한 펀드추천 등을 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판매직원이 고객에게 제공한 투자컨설팅정보는 문서 또는 음성으로 반드시 기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씨티은행도 불완전판매 예방책에 적극적이었다. 국내은행과 달리 투자와 예금업무 종사간 업무영역을 확실히 구분했다. 즉 예금당당 직원들이 펀드가입을 권유하지 못하게 했다. 투자상담은 증권관련 자격증 소지자로 한정하고 있다.

당시 여인창 뉴욕소재 코리아타운 금융센터 투자담당 지배인은 “고객의 투자성향을 무시한 채 단기 인기에 영합한 펀드를 추천하는 한국 은행이나 증권사의 펀드판매정책은 미국식 기준으로 보면 '불완전판매'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 '시장의 보복'이 불완전판매의 핵심 근절책
이들 금융사들이 직원들의 불완전판매를 엄격히 제재하는 것은 '시장의 보복'을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고객과 시장의 신뢰를 잃으면 그동안 쌓아올린 영업기반과 명성을 한순간에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시장의 힘의 강하게 작동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실제로 뮤추얼펀드업계 5위를 기록했던 푸트남이 단 한번의 불완전 판매로 힘들게 쌓아올렸던 명성과 영업기반을 잃었다. 이같은 일은 미국시장에서 다반사로 일어난다.

이처럼 '시장의 보복'을 누구보다 두려워하는 이들은 우수인력 확보를 통해 불완전판매 근절책을 찾고 있다. 한국과 달리 재무상담사를 통한 펀드판매 비중이 58%(2005년말)에 달하기 때문에 우수인력 확보에 심혈을 기울인다.

메릴린치는 입사후 최소 5년간 도제식의 엄격한 투자상담 교육프로그램 과정을 이수시킨다. 이수자중에서 증권관련 자격증을 취득한 소수만이 펀드 판매 및 자산관리 컨설팅 영업에 나설 수 있다.

피델리티는 근무경험에 따라 상담고객들을 차별화한다. 갓 입사한 신참들은 각 영업점 프론트데스크에서 고객들과 상담케 한다. 영업경험이 축적될수록 거액고객들이 늘어난다.


씨티은행의 여 지배인도 "판매직원의 자질향상과 펀드수수료 인하 등을 통한 고객위주의 판매정책만이 '불완전판매'를 예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아직 한국현실과 상당한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얘기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반드시 정착돼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금융지식에 대한 전문지식과 고객자산을 내돈처럼 관리하는 고도의 윤리의식이 국내금융상품 판매직원들에게 아쉽다.

◆ "댁의 고객을 얼마나 아세요"
11일 금융감독원은 기존 펀드판매 관행에 일대 변화를 가져 올 조정결정을 내렸다. 우리CS자산운용의 '우리파워인컴펀드'가 불완전판매됐다며 판매사인 우리은행에 고객손실의 50%를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금융감독원은 "펀드 가입경험이 없는 고객에게 복잡한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상품을 판매하면서 원금 손실 가능성이 전무하다는 식으로 권유해 원금보장상품인 예금으로 오해하게 했다"며 불완전판매의 책임을 인정했다.

이번 판결이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향후 불완전판매 관행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감독당국의 새로운 태도변화를 예고한다는 점에서 시장의 관심을 끌고 있다. 12일에도 금융감독당국 수장들이 증권사ㆍ운용사 대표들을 모아놓고 “불완전 판매를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블과 1년전만 해도 감히 생각도 못할 일이다.

사실 그동안 감독당국은 투자자 보호보다는 간접투자시장 성장에 좀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전문지식 투자경험 투자목적 연령 등에 상관없이 판매사가 위험과 수익률 등을 설명하고 고객이 상품약관에 자필로 서명했으면 불완전판매로 보기 어렵다는 게 금융감독당국의 입장이었다. 즉 현행 간투법상의 '설명고지의무’에 충실했으면 불완전판매가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하지만 이번 결정으로 입장선회가 예상된다. 판매사가 투자자의 투자목적 투자경험 자금용도 투자기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가장 적합한 금융상품을 판매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한마디로 고객을 충분히 알고(Know your Customer) 판매하라는 게 이번 결정에 담겨진 금감원의 본심이다. 자통법에서 명기한 '적합성의 원칙'이 향후 불완전판매여부를 결정하는 잣대로 활용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적합성의 원칙'이 보편화 될 경우 앞에서 언급한 미국 금융사의 완전판매방식이 국내에 조기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고객과 충분히 상담한 후 가장 적합한 금융상품을 판매하면 비생산적인 금융분쟁도 예방가능하다. 나아가 국내 자산관리업이 선진국수준으로 발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고객정보를 기반으로 일대일 맞춤형 자산관리 서비스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비록 때 늦은 감은 있지만 이번 결정으로 은행과 증권사 등의 펀드판매방식이 한단계 도약하길 기대해 본다. 특히 2006년 방문당시 부럽기만 했던 미국 금융사들의 펀드판매방식이 국내에서도 조기에 뿌리 내리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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