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아시아통화기금(AMF), 동북아개발은행 등이 만들어진다면 우리나라에 본부를 유치하고 기구 운영을 주도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새로운 국제금융기구의 설립은 필연적으로 '달러화 기축통화 체제'를 떠받치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의 기능 축소를 뜻한다는 점에서 미국의 반대가 최대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새 국제기구 창설" MB의 야심= 이 대통령은 이날 쉐라톤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매일경제신문 주최 '제9회 세계지식포럼' 축사에서 "(금융위기를 맞은) 지금이야말로 세계가 함께 겪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공동의 해법을 찾아내야 하고, 필요하다면 더 나은 질서를 창출해야 한다"며 "새로운 국제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는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의 상황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온 IMF, WB를 보조 또는 대체할 새로운 국제금융기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 대통령은 이 국제금융기구의 창설과 운영에서 우리나라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염두해두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가능하다면 국제기구를 한국에 유치하고 싶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국이 국제금융기구의 본부를 유치하고, 창설과 운영을 주도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13위으로 10위권 밖이고, 3대 준 기축통화(유로·엔·파운드) 경제권 중 어디에도 들어있지 않다. 게다가 세계금융질서를 주도할 만큼의 '지적 권위'(Intellectual Authority) 또는 '지적 리더십'(Intellectual Leadership)도 갖추지 못했다. 지금껏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하나 배출하지 못했음이 이를 말해준다.
◇ AMF 또는 동북아개발은행= 그렇다고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한중일과 아세안(동남아 국가 연합)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아시아 다자간 공동기금'의 조성이 성사되고, 기금 운영기구에 금융감독 기능까지 주어질 경우 사실상 아시아판 IMF, 즉 AMF가 만들어지게 된다.
공동기금 800억달러 가운데 80%인 640억달러를 한중일이 부담하게 되는데, 우리나라는 한중일이 각각 3분의 1씩 출자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한중일이 중심이고, 중국과 일본은 상호견제하는 관계라는 점에서 AMF 창설만 이뤄진다면 우리나라가 주도력을 발휘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 다른 가능성은 북한 개발 등을 목적으로 한 동북아개발은행이 설립되는 경우다. 다만 이는 북한이 세계질서에 온전히 편입돼 스스로 개혁·개방을 서두르기 시작할 경우에나 가능하다. 게다가 동북아개발은행이 설립될 경우에도 그동안 북한에 천문학적인 규모의 지원을 펴온 중국과 주도권 다툼을 벌어야 할 수 있다.
◇ 최대 걸림돌은 미국= 설령 우리나라가 AMF 또는 동북아개발은행의 설립 논의에서 주도권을 갖게 되더라도 실제 창설까지는 넘어야 할 '큰 산'이 있다. 바로 미국이다.
특히 AMF는 사실상 아시아에서 IMF의 역할을 대신 하는 것인데, IMF의 최대주주인 미국이 달가워할리 없다. 동북아개발은행도 WB그룹의 핵심인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의 역할을 일부 대체할 수 있어 미국 입장에서 껄끄럽다. 지금도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있지만, 이 역시 최대주주인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다. 그러나 동북아개발은행은 중국이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점이 미국에게 부담이다.
IMF와 WB는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 출범과 함께 달러화 중심의 통화질서를 유지하지 위해 창설된 기구다. IMF와 WB의 기능축소는 미국의 가장 두려워하는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 상실'을 가속화할 수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국익 차원에서 새로운 국제금융기구의 창설을 주도하고 새로운 통화질서 구축에 참여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며 "그러나 그 과정에서 최대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를 훼손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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