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병칼럼]쇠고기매니아

머니투데이 강호병 증권부장 | 2008.05.08 11:58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로마의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역사를 바꿔놓은 우연을 설명할 때 잘 인용하는 말인데 요즘에는 이렇게 바꿔놓고 싶다.

 "영국인들이 쇠고기를 싫어했더라면 지구촌이 소천지가 되는 일도, 광우병으로 전전긍긍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 소가 단순 가축 범주를 넘어 지구촌 식탁과 토지를 점령하게 된 것은 대영제국의 유산이다. 19세기 대영제국은 동에서 서까지 유니언잭이 나부낄 정도로 최강국이었다. 그런데 '우연히도' 영국인은 쇠고기를 무척 좋아했다. 영국인은 쇠고기 중에서도 꽃등심처럼 기름이 촘촘히 박힌 쇠고기를 너무 좋아했다.

그런 쇠고기를 얻기 위해 막강한 군사력ㆍ자본력으로 세계를 정벌해 가는 곳마다 쇠고기 생산단지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를 목축기지화하고, 그것으로 감당이 안되니 나중에는 미국 호주 중남미 등 초지가 널린 지구촌 곳곳을 목축기지화해 나갔다. 오늘날 미국에서 볼 수 있는 대단위 목축단지도 19세기 영국 대자본이 직접투자한 결과다.

 당시 영국인들이 돼지고기나 닭고기를 좋아했더라면 세상은 돼지천지나 닭천지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옥수수 절반 이상을 소가 먹어치울 정도라는 엄청난 에너지 포식자인 소를 대량 소비하는 것 자체가 비극이다. 쇠고기는 처음부터 부나 신분의 상징으로 통했다. 지금도 소득수준이 높아진 나라에선 어김없이 쇠고기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


 세상의 수레바퀴가 이만큼 와버린 시점에서 쇠고기에 중독돼버린 우리의 쇠고기 소비취향을 되돌리기는 너무 늦었다. 지구촌의 쇠고기 소비는 과잉이요, 매니아다.

 그러나 과잉은 늘 탈이다. 광우병이든 환경파괴든 비만이든 그 대가를 치러야할 것이다. 그리고 늘 그렇듯 과잉 속에 있는 대상에 대한 진실이 선명히 대중에게 드러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지구촌 모든 소와 쇠고기를 감별하는 전수조사가 불가능한 과학적ㆍ물리적 한계 때문만은 아니다.

 상품치고 자본의 수레를 타지 않은 것은 없다. 쇠고기도 자본의 힘으로 퍼져나갔고 지금도 자본의 논리로 움직인다. 그런 만큼 안전성에 대한 논리 또한 자본의 힘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양심 있는 전문가들이 쓴 보고서에는 쇠고기 자본의 힘 속에서 미국 정부가 쇠고기 안전성에 대한 진실규명을 소홀히 하거나 외면하려 해왔다는 것을 폭로한 것이 적지 않다. 미국에서 키우는 소가 1억마리라는데 이 중 1%인 100만마리를 샘플조사한다고 해서 광우병 위험이 어느 정도나 신뢰성 있게 검증될지 의문이다. 치매로 사망한 사람 머리를 일일이 열어보지 않는 한 광우병에 노출돼 있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성 있는 데이터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미국 소의 광우병 노출에 대한 진실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쇠고기를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모르는 진실이 수입 금지 이유는 못된다고 해도 수입에 최대한 보수적으로 접근, 국민건강 위험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일관성 있게 보여야 한다. 지금 정부는 그것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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