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IB 육성? 제도보다 연봉!

머니투데이 성화용 부장 | 2008.03.28 08:20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최근 증권사 사장단과의 상견례에서 "글로벌 금융그룹이 출현하도록 유도하겠다"고 강조했다.

맞는 얘기다. 진입장벽을 낮추고 규제를 늦춰 금융투자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데 굳이 꼬투리를 잡을 이유가 없다.

금융투자산업의 핵심 장치가 바로 '투자은행(IB)'이다. 여기서 주제를 '투자은행(IB)육성'으로 좁혀보면, 전위원장의 언급은 '총론'이며 '거대 담론'이다. 현실의 모든 문제를 포괄하는 해법을 담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만 하면 한 방에 해결된다.

그러나 거기에 총론의 한계가 있다. 모든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한다는 것은 어떤 문제도 정확하게 해결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맞는 말이긴 한데 왠지 공허하게 들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제도와 시스템을 들여다 보면 셀 수 없는 각론들이 등장한다.

어떤 순서로 손을 대야 하는지, 그렇게만 하면 되는 건지, 하나 하나의 요구와 주장들을 선별하고 판단해 정책에 반영하는 일은 결코 녹록치 않다. IB의 규모를 키우는 건 단숨에 되는 일도 아니다. 전위원장은 해외 IB와의 제휴ㆍ합병을 말했지만 그건 규제 개혁보다 더 어렵다.

이렇게 어려운 일 말고 훨씬 쉬우면서도 중요한 일은 없을까.

IB는 자본주의 최첨단에 서 있어 대단한 장치산업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람 장사다. 돈과 신용을 갖추고 나면 나머지는 모두 '사람'에 의존하는 전형적인 네크워크 비즈니스다.

그런데도 한국 자본시장에는 사람을 제대로 쓸 수 없는 태생적 제약에 자포자기하는 사례가 흔하다.

가장 맨파워가 좋다는 산업은행. 외환위기 훨씬 전부터 '국제투자은행'을 지향했던 곳이다. 한국에서 글로벌 IB가 등장한다면 산업은행이 첫번째라고들 했다.


그런데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산업은행은 '후보'일 뿐이다. 기껏 쓸만한 '선수'를 키워놓으면 해외 IB들이 불쑥 채간다. 연봉 7천만원 받던 과장이 2억원에 직장을 바꾸고, 2년후쯤 몸값이 100만달러(약 10억원)로 뛴다.

그렇게 옮겨간 사람들이 한국시장은 물론이고 홍콩과 런던의 코리아 데스크를 휘젓는다. 산업은행은 십몇년전 그자리에 머물러 있고 산업은행 출신들은 펄펄 날라 다닌다.

대체투자나 금융주선 업무를 통해 100억원쯤 벌어도 '팀'에 떨어지는 건 기껏 '격려금' 명목의 몇백, 몇천만원. 100억원 벌면 적어도 20억원은 가져가는 글로벌 IB들과는 아예 비교할 필요도 없다. 실적급으로 100만달러 이상을 버는 '프로페셔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국내 증권사들에 비해서도 낯부끄러운 수준이다.

수조원, 수십조원의 투자재원을 운용하는 연기금, 공제회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업태는 다르지만 특정 부서의 업무만 분리해 놓고보면 사실상 IB와 같은 업무를 한다. 이들의 연봉은 일반 제조업 수준에 불과하다. 실적급은 편차가 있지만 가장 많은 곳이라야 산업은행 보다도 적다.

공통점은 'IB조직을 운영할 수 없는 곳이 IB 업무를 하고 있다'는 것과 '정부의 예산통제를 받는다'는 것. 결국 유능한 사람은 떠난다. 물론 적게 먹고 길게 살아 남겠다는 보수적인 선택도 있겠지만, 그건 IB의 속성에 근본적으로 반한다. 단언컨대, 이런 조직은 경쟁력있는 IB를 만들 수 없다.

시스템과 제도를 갖추는 게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이런 구멍들은 금융정책의 초점에서 벗어나있다.

잠재력 막강했던 외환은행은 주인이 론스타로 바뀐 후 IB를 포기해 버렸다. '선수'들의 보고였던 장기신용은행은 망해 버렸다. 증권사 중에서 글로벌 IB 할만한 곳은 서너개 정도, 그나마 규모를 키우는데 시간이 오래걸릴 것 같다.

그나마 규모와 노하우를 갖춘 잠재적 글로벌 IB는 몇 안되는데, 사람을 제대로 쓸 수 없도록 방치하는 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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