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유가의 비밀은 석유메이저

머니투데이 김경환 기자 | 2007.09.21 08:09

투자보다 배당·자사주매입에만 신경

국제 유가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유가 상승 배경에 관한 논란이 뜨겁다. 특히 어느때보다 석유기업들의 역할론이 부각되고 있다.

석유기업들이 증설 투자 보다는 오히려 이익을 통한 배당, 자사주 매입 등에만 관심이 있으며, 고유가를 누리기 위한 정치적 영향력 확대에만 신경쓰고 있다는 비난도 커지고 있다.

그리고 석유기업 경영진들의 우려섞인 목소리 대신 고유가 이익을 지속적으로 향유하려는 석유기업들의 상반된 인식도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석유 산업 경영진들은 "유가가 배럴당 80달러 이상으로 오를 어떠한 이유도 없다"고 지적하며 과도하게 높은 현유가 수준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 석유메이저, 경영진-회사 입장 판이하게 틀려

제로엔 반 델 비어 로열더치셸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원유 생산에는 문제가 없지만, 유가에는 많은 심리적인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렉스 틸러슨 엑손 모빌 CEO는 지난달 초 "유가가 어떻게 배럴당 70달러 이상을 기록하고 있는지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 원유를 찾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다. 고유가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경영진들의 이러한 발언과 회사측 입장은 판이하게 다르다. 엑손 모빌은 틸러슨 CEO의 발언을 애써 감추려 시도했으며, 로열더치셸 역시 이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할 수 없다고 입을 다물었다.

이를 두고 존슨 라이스&코의 애널리스트인 켄 캐롤은 "고유가에 대해 침묵시키려는 많은 정치적인 의도들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 메이저, 정치적 영향력 통해 고유가 이익 향유 시도

최근 정가 분위기도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앞서 유가가 급등할 당시에는 석유 기업들의 순익에 특별 세금을 매기고 세금 우대 조치를 폐지해야 목소리가 크게 나왔다. 그리고 대형 석유메이저들을 소규모 단위로 쪼개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러한 주장들이 잠잠하다. 유가가 배럴당 80달러를 훌쩍 넘어 고공 비행을 지속하고 있음에도 의회에서는 별다른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있다.

더욱이 석유기업들은 정부의 추가적 규제를 피하는 것은 물론 원유생산 및 정제 시설 증설에 소극적이란 비난을 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석유기업들이 직접적으로 유가를 통제할 수는 없지만, 이들은 석유수출국기구(OPEC)과 더불어 원유 공급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석유기업들은 원유 공급과 함께 원유를 경유, 휘발유, 등유, 나프타 등 석유제품으로 바꾸는 정제시설을 확충하는 책임도 갖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애널리스트는 "1976년 이후 미국 정제시설의 증설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석유기업들은 정제마진 축소로 정제시설 보다는 석유시추 및 생산 시설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전미석유협회(APC) 대변인은 "더욱 엄격해진 환경 관련 법안과 지역 주민들의 반대 때문에 정제 시설을 확충하기 어렵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그리고 1990년대 유가가 배럴당 10~20달러선에서 머물때에는 별다른 투자 노력도 진행되지 않았다.

◇ 석유기업, 투자보다 배당·자사주 매입에 관심

석유기업들은 최근 고유가 상황에서 투자를 늘리기 보다 오히려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제공하고, 자사주를 매입하면서 주식 띄우기에 더욱 혈안이 돼 있다.

전문가들은 "석유기업들의 경영진들이 배럴당 80달러 수준의 유가는 너무 높다고 아무리 외쳐봤자, 이미 고유가는 정당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2000년대 이후 공급은 여전히 제한적인데 반해 글로벌 경제 성장에 따른 수요 급증은 유가를 끌어올리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유가는 2002년까지 20달러 수준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80달러선을 훌쩍 넘어섰다.

이러한 유가 급등은 투기세력도 원유 시장으로 부르고 있다. 캐롤은 "유가 급등에는 금융 투기 자본의 역할이 컸다"면서 "현수급 상황 하에서 배럴당 80달러 유가는 정당화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투기 수요자들이 유가를 끌어올렸다는데 대해서는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 고유가 투기수요 역할 놓고 논란 분분

뷰텔은 뉴욕상품거래소(NYMEX)에서 투기 세력들의 장기 계약 비중은 18%에 불과하며, 실제로 원유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75%로 원유 시장의 절대 다수를 차지했다고 분석했다.

또 그는 "NYMEX 전체 원유 거래에서 투기 세력들이 실제로 차지하는 비중도 9%에 불과하다"면서 "투기세력만으로 유가가 초래됐다는 주장은 확실하지 않다"고 밝혔다.

피츠패트릭은 "유가에서 투기 프리미엄은 배럴당 4~5달러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나머지는 모두 펀더멘털에 따른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과 인도가 새로운 원유시장의 블랙홀"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실제 수급의 불일치가 큰 상황일까.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전세계는 하루 8600만배럴의 원유를 소비한다. 그러나 이러한 소비를 충족하고 남는 잉여 생산 능력은 217만배럴에 불과하다. 잉여 생산 능력은 하루 270만배럴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늘어나는 수요를 지지하기에는 아직 미흡한 수준이다.

그러나 EIA의 이코노미스트인 탄크리드 리더데일은 "잉여 생산은 OPEC 국가들에 달려 있다"면서 "이들은 언제든 생산량을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세계 원유 수요는 비OPEC 산유국들의 증산보다 빠르게 늘고 있으며, 이는 최근 4년간 유가 급등을 이끌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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