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에세이] 과거를 묻지 마세요

머니투데이 김영권 정보과학부장겸 특집기획부장(부국장대우) | 2007.08.30 13:23

'과거 분식'의 포로는 오늘을 망친다

신정아씨 가짜 학위 파문이 자꾸 복잡해져서 이제는 뭐가 어디서 꼬인 것인지, 뭐가 진실인지 잘 모르겠다. 등장인물이 계속 늘고, 그들마다 말이 엇갈려 누구 말이 진짜인지 가늠이 안된다. 이래저래 헷갈리는 세상이다.

이명박씨 도곡동 땅 의혹도 이씨 땅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니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의심에 의심이 꼬리를 무는 세상이라 모든 게 다 의심스럽다.

그래서 사위와 며느리감의 학적부를 들추고, 장차관이나 대선 후보들의 주민등록지를 추적한다. 어디 그뿐인가. 병적부도 보고, 전과기록도 조회해야 한다. '병역필'에도 엉터리가 있으니까 병역특례자라면 회사 출근계까지 챙겨봐야 한다.

사생활도 세세히 엿보아야 한다. 유력 인사쯤 되면 심심찮게 숨겨진 자식들이 있다고 하니 유전자 검사도 하자고 해야 할 판이다.

이렇게 불신으로 가득찬 세상, 미움과 질투와 증오를 키우는 세상, 과거를 묻고 들추고 파헤치고 까발리는 세상, 서로 속고 속이며 사는 세상이다 보니 어디 한 곳 믿고 의지할 데가 없다. 그 외로움에 각박한 세상을 탓한다. 나 또한 각박한 기운을 퍼뜨리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설령 알아도 어찌 할 도리가 없으니 스트레스만 쌓일 뿐이다.

무조건 남을 제치고,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최후의 1명이 남을 때까지 선수들을 탈락시키는 '서바이벌 게임'처럼 세상은 돌아간다. 이런 게임에서 지면 큰일이니 절대 양보는 없다. 내 것은 남이 얕잡아 볼 수 없도록 더 멋있게, 더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게 어려우면 겉모양이라도 그럴 듯하게 포장해야 한다.

실력이 있어도 뒤통수를 맞을 수 있고, 더 센 사람이 덤빌 수도 있으니까 방심하면 안된다. 마음을 열고 정을 나누는 사람은 몇명일 뿐이다. 그밖의 사람에게는 실력 이상으로 보이도록 학벌 족벌 지위 재력 외모 등등 모든 외형을 화려하게 꾸며야 한다. '강자의 면모'만 드러내야 한다.


30, 40년 전 가난한 농부의 자식들이 성장신화를 쌓을 때는 모두 "과거를 묻지 말라"고 했다. 너도나도 내일의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렸다. 그 레이스가 갈수록 거칠고 험악해지자 이제는 과거사까지 끌어들여 경쟁자들을 낙마시키려고 안달이다.

'나를 앞선 자의 과거에 무엇가 흠집이 있을 것이다. 그걸 찾아 그의 발목을 잡아야 한다. 그를 쓰러뜨려야 한다.' 이렇게 남의 과거를 들출 때 나의 어두운 과거는 더욱 은밀하게 숨어든다.

그러나 과거에 집착하고 성공 욕망에 사로잡히면 가장 중요한 오늘을 망치게 된다. 오늘도 남의 허물을 탓하고 내 껍데기를 치장하면서 하루를 허비하게 된다. 내가 과거에 사로잡혀 있는 한 나도 '과거 분식'의 위험자군에 속한다. 과거의 포로는 결코 과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러니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과거를 묻지 말자". 시시콜콜한 과거를 따지는데 그 귀한 삶의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자. 누구의 시구처럼 "껍데기는 가라". 나만의 승리를 위한 끝없는 욕심에 남의 전과를 물고 늘어지지 말자. 대신 오늘을 묻고 얘기하자.

'나는 오늘에 충실한가. 과거에 매여 있는가. 당신의 오늘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흘러간 옛날을 보고 있는가.'

지금 이 순간의 본질에 집중하면 과거는 힘을 잃는다. 그래야 과거의 낡은 껍데기를 벗고, 과거를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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