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도, 검찰도 스스로에게 질문할 때다

머니투데이 심재현 법조팀장(차장) 2024.10.2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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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젊은 시절 스티브 잡스의 다큐멘터리 영화 인터뷰.젊은 시절 스티브 잡스의 다큐멘터리 영화 인터뷰.


3년 반 전에 '삼성의 전성기가 오늘일까 봐 두렵습니다'라는 칼럼을 썼다. 삼성을 비롯한 국내 대기업을 취재하던 때였다. "삼성의 전성기가 오늘일까 두렵다"는 말은 당시 교류가 잦았던 삼성전자 한 임원의 얘기를 그대로 옮긴 것이었다. 삼성전자 실적이 매년 사상 최대를 찍던, 백번 양보하더라도 큰 문제는 없어 보였던 때라 칼럼을 쓰고나서 오해 아닌 오해를 꽤나 받았다.

출입처를 서초동으로 옮기고나서 얼마 있다가 검찰 출신 한 법조인, 이른바 전관(前官)을 만났을 때도 비슷한 느낌의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2년 전이었으니까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한 지 반년 정도 흐른 때였다. 그땐 TV를 틀면 채널을 돌리기가 무섭게 검사와 법조인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나왔다.



"지금이 검사들 주가가 제일 좋을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보다 더 올라갈 수 있을까요." 복에 겨운 소리로 들릴 만했지만 뒷얘기가 3년 반 전 그때처럼 자못 무거웠다. 그는 검찰의 책임과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고 했다. "기대와 실망은 한끗 차이지 않습니까." 한발만 삐끗해도 검찰이 설 곳이 마땅찮아질 것이란 얘기였다.

새삼 삼성과 검찰에 대한 옛얘기를 꺼내든 것은 요새 부쩍 드는 기시감 때문이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는 자리면 어김없이 나오는 삼성 반도체 위기설과 5만전자론을 보면서 그때 그 임원의 통찰을 곱씹게 된다. 삼성만이 아니다. 막바지를 향해가는 국회 국정감사 내내 논란의 중심에 섰던 검찰의 모습 뒤로도 그날 그 전관의 심각했던 표정이 아른거린다. '어쩌면 전성기가 지났을까' 무참한 불안이 엄습하는 까닭이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생전 다큐멘터리 영화 '더 로스트 인터뷰'에서 혁신기업이 망하는 과정에 대해 펩시와 제록스의 사례를 들면서 이렇게 얘기했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진 기술기업에서는 매출을 늘리는 게 마케팅팀이 됩니다. 결국 독점적 지위를 만들어낸 천재적 개발자들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죠. 그렇게 회사는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잊어버립니다. 좋은 제품과 나쁜 제품의 차이를 전혀 모르는 운영진에 의해서요. 그게 제록스에 있었던 일입니다. 제록스는 컴퓨터 산업 전체를 지배할 수도 있었어요. 컴퓨터 산업에서 거대한 승리를 했는데도 발목이 잡혔던 거죠."

어느 기업이든 생존의 핵심 비결은 근본적인 기술 경쟁력이다. 잡스가 제품 감수성이라고 말한 이 원초적 장인 정신 없이는 아무것도 얻어낼 수 없다. 전성기로 올라가는 사다리도, 전성기에서 내려오는 계단도 여기에 달렸다. 삼성도, 검찰도 그렇다.


고 이건희 회장 시절 삼성은 불량품을 모조리 태워버렸던 '애니콜 화형식'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곤 다 바꿔야 한다"는 일갈도 흥망의 갈림길에서 삼성을 끌어올린 정신으로 남아있다.

더 흔들릴 순 없다. 시대 변화를 이끄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그리고 사회정의를 바로세우겠다는, 삼성과 검찰의 진의를 마냥 의심할 수도 없다. 이젠 다시 삼성과 검찰이 좋은 제품, 좋은 수사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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