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스티브 잡스의 다큐멘터리 영화 인터뷰.
출입처를 서초동으로 옮기고나서 얼마 있다가 검찰 출신 한 법조인, 이른바 전관(前官)을 만났을 때도 비슷한 느낌의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2년 전이었으니까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한 지 반년 정도 흐른 때였다. 그땐 TV를 틀면 채널을 돌리기가 무섭게 검사와 법조인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나왔다.
새삼 삼성과 검찰에 대한 옛얘기를 꺼내든 것은 요새 부쩍 드는 기시감 때문이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는 자리면 어김없이 나오는 삼성 반도체 위기설과 5만전자론을 보면서 그때 그 임원의 통찰을 곱씹게 된다. 삼성만이 아니다. 막바지를 향해가는 국회 국정감사 내내 논란의 중심에 섰던 검찰의 모습 뒤로도 그날 그 전관의 심각했던 표정이 아른거린다. '어쩌면 전성기가 지났을까' 무참한 불안이 엄습하는 까닭이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진 기술기업에서는 매출을 늘리는 게 마케팅팀이 됩니다. 결국 독점적 지위를 만들어낸 천재적 개발자들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죠. 그렇게 회사는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잊어버립니다. 좋은 제품과 나쁜 제품의 차이를 전혀 모르는 운영진에 의해서요. 그게 제록스에 있었던 일입니다. 제록스는 컴퓨터 산업 전체를 지배할 수도 있었어요. 컴퓨터 산업에서 거대한 승리를 했는데도 발목이 잡혔던 거죠."
어느 기업이든 생존의 핵심 비결은 근본적인 기술 경쟁력이다. 잡스가 제품 감수성이라고 말한 이 원초적 장인 정신 없이는 아무것도 얻어낼 수 없다. 전성기로 올라가는 사다리도, 전성기에서 내려오는 계단도 여기에 달렸다. 삼성도, 검찰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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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건희 회장 시절 삼성은 불량품을 모조리 태워버렸던 '애니콜 화형식'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곤 다 바꿔야 한다"는 일갈도 흥망의 갈림길에서 삼성을 끌어올린 정신으로 남아있다.
더 흔들릴 순 없다. 시대 변화를 이끄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그리고 사회정의를 바로세우겠다는, 삼성과 검찰의 진의를 마냥 의심할 수도 없다. 이젠 다시 삼성과 검찰이 좋은 제품, 좋은 수사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