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2' 정해인, 정신건강 위협하는 공포의 눈동자 [인터뷰]

머니투데이 한수진 기자 ize 기자 2024.09.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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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 / 사진=CJ ENM정해인 / 사진=CJ ENM


배우 정해인이 영화 ‘베테랑2’(감독 류승완)에서 새로운 얼굴로 관객 앞에 섰다. 해사한 미소와 맑은 이미지로 사랑받아온 그는 이번 작품에서 신선하고 충격적인 변화를 줬다. 사랑을 한가득 품었던 그의 로맨틱했던 두 눈이, ‘베테랑2’에선 마주칠까 두려운 광기로 반짝인다. 낯설지만 매력적인 변신이다. 정해인의 재발견이라 할 만큼 그의 연기 스펙트럼에 놀랄 수밖에 없다.

‘베테랑2’는 베테랑 형사 서도철(황정민)이 팀의 막내 형사 박선우(정해인)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연쇄살인범을 쫓는 이야기를 그린다. 줄거리만 보면 황정민과 정해인이 함께 범인을 잡는 정의의 편처럼 보이지만, 이 영화의 뚜껑을 열면 정해인은 황정민과 반대편에 서있는 신념이 일그러진 인물이다.



박선우는 시위 현장에서 우연히 강력범죄수사대 서도철의 눈에 들어 그의 팀에 막내 형사로 임시 합류한다. 박선우는 서도철의 지난 이력을 줄줄이 꿰고 능력을 높이 사며 존경하는 모습을 보인다. 강력범죄수사대가 맡은 임무에도 목숨 걸고 달려드는 열정을 보인다. 하지만 이 모습은 페이크다. 박선우가 바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연쇄살인범 ‘해치’다. 정해인 스스로도 “스크린에서 제 모습을 볼 때 매우 낯설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베테랑2’의 박선우는 맑은 눈을 지닌 광인처럼 극 속에서 공포스럽게 존재한다.

“스크린에서 제 모습을 볼 때 되게 낯설었어요. 저도 처음 접한 제 모습이라 이질감이 들었거든요. 박선우라는 인물은 나르시시즘이 강한 인물이에요. 소시오패스 기질도 다분해요. 그래서 촬영 전부터 소시오패스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어요. 소시오패스는 기본적으로 우월감에 빠져있어서 그런 것들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사실 인물에 체화되고 동기화가 되어야 하는데 이 배역은 이해하기가 어려웠어요. 이해되지 않은 지점들이 많았거든요. 정상인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안 되는 인물이었죠. 철저하게 제가 원했던 목적 위주로만 갔어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도구로 보고 연기했죠.”



정해인 / 사진=CJ ENM정해인 / 사진=CJ ENM
박선우는 정해인에게 새로운 도전이었고 캐릭터를 통해 자신의 연기 스펙트럼을 확장하는 기회로 삼았다. 그러나 정해인은 역할의 심리적 영향을 받아 일상에서 캐릭터를 벗어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촬영할 때 어머니가 저를 보고 낯설다고 말하기도 했다”라며 캐릭터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런 역할이 정신 건강에 그렇게 이롭지는 않은 것 같아요. 자주 하면 안 될 것 같아요.(웃음)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까지 가장 오래 걸렸던 작품이에요. 일상과 일을 분리시키려고 하는 편인데 촬영 시간이 길다 보니까 자꾸 박선우가 제 삶에 묻어나오더라고요. 촬영할 때 가족들이 저보고 낯설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저도 그걸 느껴서 그때 사람들을 멀리했어요. 생각하는 회로가 정상인 범주에서 살짝 틀어져 있었거든요.”


류승완 감독은 ‘베테랑2’에 대해 “선과 악이 아닌 정의와 신념이 충돌하는 구도”라고 말한 바 있다. 박선우를 단순한 악인이 아닌 그릇된 신념으로 점철된 인물로 서사를 쌓으며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박선우를 연기한 정해인도 관련해 심도 있는 사유를 털어놓았다.

정해인 / 사진=CJ ENM정해인 / 사진=CJ ENM


“일단 박선우에게 정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의 신념은 하고 싶은 걸 무조건 하는 거죠. 자기 욕심에 가득 찬 인물인 거죠. 그게 절대적으로 인물에게 투영됐다고 봐요. 보통은 하면 안 되는 것들이 있는데 박선우는 그런 선을 넘는 욕심이 과잉된 인물이에요. 그래서 가장 중점적으로 뒀던 부분은 소위 말하는 마녀사냥에 포인트를 뒀어요. 박선우의 해치라는 별명은 언론에서 만들어주고 띄워주잖아요. 박선우는 미친놈이자 관종이기 때문에 그런 여론 반응에 ‘그래서 너네가 원하는 거 한번 해줄게’ 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박선우가 무고한 사람까지 죽이려고 해요. 해치는 사회적 현상이 만들어낸 상징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마녀사냥의 심볼이요. 사냥의 집행인인 그의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서 관객분들이 생각할 수 있게끔 한 것 같아요.”

정해인은 ‘베테랑2’에서 던지는 질문들에 더 공감할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다. 그가 2021년 출연했던 JTBC ‘설강화’의 역사 왜곡 논란이다. 정해인은 당시 겪었던 감정들을 류승완 감독과 이야기하며 문제의식을 대면했고 ‘베테랑2'가’ 갖는 메시지가 왜 중요한지를 더 깊이 깨달았다.

“‘베테랑2’를 준비하면서 감독님과 ‘설강화’ 이야기도 했어요. 그때 드라마가 가졌던 논란의 주제 의식이 영화에도 녹아있다고 봐요. ‘설강화’ 때 사실 많이 슬펐죠.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걸 그때 배운 것 같아요. 그렇게 무심결에 누른 ‘좋아요’ 하나, 댓글 하나가 모여서 해치라는 괴물을 만들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정해인 / 사진=CJ ENM정해인 / 사진=CJ ENM
‘베테랑2’에서 함께 호흡한 황정민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정해인보다 먼저 영화 인터뷰를 진행했던 황정민은 그 자리에서 “국화 같은 아리따운 얼굴”, “연기를 너무 잘했다”, “상을 받아야 한다” 등 정해인을 향한 특급 칭찬을 쏟아냈던 바. 정해인 역시 황정민의 칭찬 지옥에 지지 않겠다며 강한 애정을 드러냈다.

“황정민 선배는 조금 들꽃 같아요. 되게 거칠고 불모지에서 자랐는데 역경과 시련을 딛고 일어난 꽃이요.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면 되게 연약한 느낌도 있죠. 황정민 선배가 되게 츤데레예요. 후배, 스태프들에게 툴툴대면서도 엄청 챙겨줘요. 영화계에서 대단한 위치에 계시다 보니 처음에는 어느 정도 겁을 먹었는데 너무 따뜻하고 섬세하셔서 촬영을 잘할 수 있었죠.”



‘베테랑’ 1편은 1,341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대흥행한 영화다. 유아인이 연기한 1편의 악역 조태오는 극 중 대사와 장면이 ‘밈’으로 대량 생산되며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다. 2편의 악역인 정해인은 전편의 후광 때문에 부담을 느낄 법 했지만 책임감으로 ‘베테랑2’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에 적극 기여하겠다는 각오다. 정해인은 “할 수 있는 홍보는 다 할 것”이라며 열정적인 각오를 드러냈다.

“제가 추석 연휴까지 연달아 무대인사가 있고 그 이후에도 지방 무대인사가 있어요. 홍보하는 것도 영화 만드는 과정에서 배우가 끝까지 책임지고 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짧게나마 ‘서울의 봄’ 때 정우성 선배의 무대인사 보면서 느낀 게 많았어요. 이번에 황정민 선배가 영화를 위해 열성을 다하시는 걸 보고도 그랬고요. 스코어도 스코어지만 할 수 있는 건 다하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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