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대출 받는 사람이 죄인?

머니투데이 배규민 기자 2024.09.10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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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최근 금융권의 대출 규제를 보면 대출을 받는 사람은 모두 죄인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은행 대출이 막히자 어쩔 수 없이 다른 금융권의 문을 두들기는 수요를 빗대어 '2금융권이 뚫렸다, 막아야 한다'는 식의 표현만 봐도 그렇다. 가계대출이 폭증했고 이를 조절하겠다는 금융당국의 의지는 잘 알겠다. 하지만 처음부터 기준을 갖고 실수요자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 방안까지 같이 고민한 후 이뤄지지 않은 점은 많은 혼란을 야기한다.

금융당국 수장의 말 한마디에 5대 대형 은행은 지난 7월부터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20차례 이상 올렸다. 대출금리 상승을 바란 게 아니라고 지적하자 이번엔 경쟁적으로 대출 문턱을 높였다. 이직 등 개인 사정으로 현재 집을 팔고 다른 집을 사서 이사하려는 수요자의 대출도 막혔다. 신한은행은 10일부터 기존주택 처분 조건이더라도 유주택자의 주택구입자금 목적의 주담대는 전면 금지한다. 실수요자를 외면한다는 비판이 거세자 우리은행은 결혼을 앞두고 있다면 1주택자도 주담대, 전세자금 대출 제한에서 제외한다는 등의 예외 조항을 다시 뒀다.



실수요자는 은행마다 시시각각 다른 규제에 대출 난민으로 몰리고 있다. 부동산 관련 커뮤니티에는 잔금대출 신청을 받는 은행, 보험사 등이 어디인지 묻는 글이 쏟아진다. 잔금을 치르지 못하면 계약자는 어쩔 수 없이 계약을 파기하고 매매가의 10%인 계약금을 포기해야 한다. 전세대출 규제도 마찬가지다. 1주택자가 자녀의 교육 문제 등으로 본인 집에 세를 주고 다른 곳으로 전세를 얻어 가는 경우 전세대출이 막혀 신용대출을 받거나 월세로 거주해야 한다. 풍선효과를 우려해 금융당국은 신용대출, 카드론까지 들여다보고 옥죌 준비를 하고 있다.

과연 대출받지 않고 집을 사거나 전세보증금을 마련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는 약 12억3000만원이다. 실수령액 월 400만원인 직장인이 26년 동안 한 푼도 사용하지 않고 모아야 가능한 금액이다. 월 400만원은 2022년 기준 대한민국 직장인 평균소득(353만원)보다 높은 금액이다. 물론 아파트가 아닌 빌라, 서울이 아닌 경기도에 집을 산다면 이 기간은 줄어든다.



은행들은 이미 주택담보대출이라도 상환 능력과 금리변동까지 반영해 대출 한도를 설정하는 등 깐깐하게 대출을 실행 중이다. 대출 규제는 정책성 대출을 대상으로 필요할 정도다. 올해 7월까지 늘어난 주담대의 80%가 신생아특례대출, 디딤돌·버팀목 등 정책대출이다. 최저 연 1%대의 신생아특례대출 출시 때 대출 증가는 예견돼 있었다.

최근 정책은 체계적인 가계대출 관리보다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두더지 잡기식 규제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실수요자 피해 우려와 함께 오락가락 정책에 대한 비판이 거세자 정부는 대출 자체는 금융기관이 자율적으로 하되, 실수요 여부를 구분하는 가이드라인을 내놓겠다고 했다. 지금이라도 시장에 일관된 시그널을 보내고 실수요자가 피해를 보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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