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왜 그들은 컬처핏(Culture Fit)에 꽂혔을까?

머니투데이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 2024.09.10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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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


한국 조선산업의 성장동력은 현장 중심의 조직문화였다. 대표적으로 조선업 가족문화가 있었다. 여기에서 가족은 혈연적 가족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선다. 조선소 노동자 공동체, 혹은 직원 공동체 문화를 뜻했다. 조선소 작업복은 자부심의 상징이었고 작업복을 중심으로 하나의 공동체가 형성됐다. 피가 섞이지 않았어도 생산현장에서 가족처럼 똘똘 뭉쳐 응집했기 때문에 위기를 돌파하고 좋은 성과를 낳았다. 술자리를 중심으로 회식문화는 물론 목욕도 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우정을 넘은 끈끈한 의리의 문화까지 있었다.

그런데 2008년 서브프라임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이러한 문화가 달라졌다. 수주급감 속에 많은 현장 노동자가 이탈했고 조선사들이 해양플랜트 수주로 돌파하려 하면서 하청 노동자가 대거 유입됐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소통과 연대가 더 힘들어지게 됐다. 이는 위기의 심화를 가져왔다. 이런 지적을 하게 되면 예전이 좋았다는 말로 들릴 수 있다. 가족 공동체 문화가 퍼져 있을 때도 문제는 있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남성 중심적이고 경직돼 있었다. 이러한 조직문화는 변화하는 상황에 유연하지 못하고 위기대응에 능동적이지 못했다. 더구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작업이 덜했다.



이 때문에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이후 수직적 문화에서 수평적 문화로 달라지면서 성과도 보였다. 조선업과 비슷한 자동차업계도 마찬가지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수평적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IT업계일수록 이런 수평적 조직문화가 더 보편적인 것은 산업적 차이에서 비롯됐다. 이런 기업에선 작업복, 즉 유니폼을 중심으로 "하면 된다!"는 구호는커녕 우정과 의리가 덜하다. 비록 창의적인 성과는 더 나올 수 있지만 개인주의적이고 보이지 않는 내부 경쟁이 더 심해진다. 이런 사례는 산업별, 기업별 조직문화가 달라져야 하는 점을 말해준다.

요즘 기업들은 '컬처핏'(Culture Fit)에 큰 관심을 둔다. 이는 조직 구성원을 기업의 조직문화에 맞게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이다. 문화적 성향이나 기호가 우선하는 컬처핏의 기준 적용은 성적이나 이력, 자기소개보다는 면접을 통해서다. 본래 컬처핏은 소수가 일하는 스타트업이나 정체성이 분명한 유니콘기업이 중시했다. 아무리 성적이나 스펙이 좋아도 기업문화에 맞지 않는다면 다른 기업에서 뛰어난 성과를 냈어도 오히려 갈등요인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조직의 성과는 혼자서 뛰어난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협업을 통해 가능하다. 새롭게 도전하는 분야나 매우 창조적인 결과물을 내야 하는 조직에서는 더욱 혼연일체의 과정이 필요하다. 대기업이라도 계열사 등과 협업과 조율을 해야 하는 곳이라면 더욱 컬처핏이 중요해진다.



기업과 지원자가 유념할 점도 있다. 드라마 '낮과 밤이 다른 그녀'에서 계지웅(최진혁 분) 검사는 시니어 인턴으로 들어온 임순(이정은 분)에게 나이 많은 사람은 필요 없다면서 본인이 그만두게 하려고 무리한 업무를 지시한다. 하지만 임순은 유약하지 않았고 서류업무 처리는 물론 노련한 지혜를 발휘하는가 하면 여성 특유의 장점을 살려 사건도 해결한다. 이런 일을 겪고 나서 계지웅은 임순에게 공식적으로 사무실의 직원으로 받아들이며 같이 일하자고 제안한다. 임순이 조직문화에 맞는다는 것을 인정한 순간이다.

어쨌든 계지웅 검사도 컬처핏을 적용하고 임순과 같이 일할 생각이 든 셈이다. 계지웅 검사는 물론 기업이 명심할 점은 자신의 조직문화가 무엇인지 그 정체성을 먼저 확립하는 일이다. 또한 개인들도 기업의 컬처핏에 억지로 맞추기보다 자신의 본래 문화적 정체성에 따라 유연하게 지원해야 한다. MBTI처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재구성한다면 기업과 본인에게 다 바람직하지 않게 된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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