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처럼 응급실 진료비 폭탄?…"의식 있다면 경증" 발표에 의사들 반박

머니투데이 정심교 기자 2024.09.04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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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처럼 응급실 진료비 폭탄?…"의식 있다면 경증" 발표에 의사들 반박


응급이 아닌 환자가 응급실에 몰려드는 상황을 막기 위해 정부가 경증·비응급 환자에게 총진료비의 90%까지(기존 50~60%) 부담하게 하겠다는 개정법안을 입법예고한 가운데, 일반인이 자기 증상이 '경증'인지 아닌지 알기 힘들어 자칫 응급실에 갔다간 '진료비 폭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잇따른다. 특히 올 추석연휴 기간, 정부가 '문 여는 병·의원'을 강제로라도 지정하겠다고 하자, 대한의사협회의 반발이 거센 가운데, '문 연 데가 없어서' 할 수 없이 응급실에 가더라도 환자는 기존보다 '웃돈'을 내게 생겼다.

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가 경증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지표로 삼은 건 '케이타스'(KTAS·Korean Triage and Acuity Scale)라고도 부르는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도구'다. KTAS는 2012년 캐나다 응급환자 분류 도구인 '씨타스'(CTAS·Canadian Triage and Acuity Scale)를 우리나라 의료상황에 맞게 바꾼 것으로, 원래는 응급실에 온 환자의 진료 순서를 정하기 위한 가이드로만 활용됐다. 정부는 KTAS 4~5급에 해당할 때 경증·비응급으로 분류해 본인부담률을 90% 받겠다는 것이다. 5등급의 경우 '긴급해도 응급은 아닌 상태'를 말하는데, 환자가 스스로 긴급한 상태라고 느껴도 응급까지는 아닐 수 있단 얘기다.



이날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경증과 중증을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구분하느냐, 당장 아픈데 환자나 보호자들이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본인이 경·중증을 판단해서 갈 수는 없다"면서도 "본인이 전화해서 (경·중증 여부를) 알아볼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 자체가 경증이라고 이해하면 된다"고 답했다.

아픈 정도와 상관없이 '의식이 있다'면 경증이라는 것이다. 박 차관은 "중증은 거의 의식 불명이거나 본인이 스스로 뭘 할 수 없는 마비 상태에 있거나 이런 경우들"이라며 "그렇지 않고 열이 많이 나거나 배가 갑자기 아프거나, 어디가 찢어져서 피가 많이 난다면 경증"이라고 밝혔다.



미국처럼 응급실 진료비 폭탄?…"의식 있다면 경증" 발표에 의사들 반박
하지만 KTAS가 환자를 경증이냐 중증이냐로 나누는 정확한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게 응급의학과 의사들의 주장이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은 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4~5등급을 경증·비응급으로 분류하는 게 틀린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100% 다 맞는 것도 아니"라고 언급했다. 이 회장은 "응급실에서 환자를 처음 봤을 때 (당장 처치가) 급한지 아닌지 정도만 분류하려는 기준"이라며 "처음에 4등급이었다가 진료 후 2등급으로 바뀌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설명했다. 같은 환자여도 적용 시점에 따라 KTAS 등급이 달라질 수 있단 얘기다.

예컨대 췌장암으로 등 통증이 생겨 응급실에 환자가 찾아와도 당장 5분 이내에 진료하지 않아도 되면 4·5급으로 분류될 수 있다. 또 칼에 베였는데 얼마나 깊이 파였는지, 피가 얼마나 많이 나는지에 따라 1·2·3급일 수도, 4·5급일 수도 있다. 이런 환자가 만약 4급으로 경증으로 분류될 경우 본인부담금을 총진료비의 90%를 내야 한다. 이 회장은 "외국에서는 환자 수에 비해 의사가 적어, 이 응급환자 분류 도구를 응급실에 온 환자가 기다려도 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활용할 뿐 경증이냐 중증이냐를 나누는 데 적합한 도구는 아니"라고도 언급했다.

그는 "응급실에 온 환자를 경증인지 중증인지 나누는 건 지난 30여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과제"라며 "본인부담률을 올린다고 해결되는 문제라면 지난 30여년간 왜 올리지 않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30여년 동안 모두가 편하게 응급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 왔는데, 이제 와서 경증 환자는 이용하지 말라 하면 국민의 반발이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본인부담률을 90%로 올릴 때 건보공단만 이득 볼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진료총액은 같은데 본인부담률을 높이면 건보공단을 병원에 줄 돈을 아끼겠지만, 경증으로 구분된 환자는 내가 왜 경증이냐며 의사와 실랑이를 벌일 수 있다. 책임은 국민이 지고, 욕은 의사가 먹고, 이득은 정부만 보는 시스템"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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