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과학적인 전기차 화재 예방 대책이 필요하다

머니투데이 이태성 기자 2024.09.0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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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전기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 중 상당수는 안전, 특히 화재를 우려해왔다. 배터리에 충격이 가해졌을 때, 혹은 주차 중 모종의 이유로 전기차에 불이 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인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는 이를 크게 증폭시켰다. 사고 이후 전기차는 친환경차가 아니라 주변에 피해를 줄 수 있는 '민폐 덩어리'가 됐다.

정부는 그동안 보조금을 지급해가며 전기차 보급에 앞장섰다. 그러나 전기차 화재에 대해서는 명확한 대책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인천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에야 설익은 대책이 갑자기 중구난방으로 쏟아지는 이유다. 충전량을 제한하고 지하주차장에는 주차를 못하게 하는 등 자동차 제조사와 전기차 소유주는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마저 대책으로 나오고 있다.



통계를 따져보면 전기차 화재에 대한 걱정이 지나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전기차 화재 발생 비율은 비전기차에 비해 30% 낮다. 자동차 1만대당 화재 건수는 지난해 기준 비전기차는 1.86건, 전기차는 1.32건이다. 배터리 외부에 충격이 가해져 발생하는 열폭주에 대한 불안감도 과도하게 부풀려졌다는 지적이다. 최신 전기차에는 열폭주 전이를 지연시키는 기술이 탑재돼있기도 하다.

지하주차장에 주차된 차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피해를 키우는 것은 스프링클러의 작동 여부다. 인천 화재 사고 당시 아파트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는 것은 이미 확인됐다. 한국화재소방학회가 지난 4월 발행한 '지하주차장 내 전기자동차 화재의 소방시설 적응성 분석을 위한 실규모 소화 실험' 논문에 따르면 스프링클러 작동만으로도 인접 차량으로 불이 번지는 것을 차단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충전률 또한 화재와는 크게 연관이 없다는 것이 자동차 업계의 항변이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전기차 배터리를 100% 완전 충전해도 충분한 안전범위 내에서 관리되도록 설계했다. 고객에게 보여지는 시스템 상의 100%가 실제로는 100%가 아니고, 만에 하나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BMS가 과충전을 차단하고 제어하고 있다는 게 전기차 제조업체의 입장이다. 현대차·기아는 자사 전기차 중 과충전으로 화재가 발생한 경우는 아예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각종 통계와 연구에도 불구하고 현재 전기차 화재 안전 정책으로 언급되는 내용은 반대로 가고 있다. 서울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배터리 충전량 90% 이하의 전기차만 공동주택 지하 주차장 출입을 허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일부 관공서와 병원, 아파트 등에서는 전기차의 지하주차장 출입을 막거나 충전기 전기 공급을 차단하기도 했다.

정부가 이 현상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앞으로 전기차를 살 사람은 사라질 것이다. 전기차 산업은 성장 동력을 잃고,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그동안의 노력도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정부가 조만간 발표할 전기차 화재 관련 종합 대책이 중요한 이유다. 정부는 이 대책에 과학적이고 실효성 있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
[우보세]과학적인 전기차 화재 예방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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